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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10년만에 ‘드라큘라’ 미나로 돌아온 정선아 “늘 도전인 선택, 후회는 없어요!”

[人더컬처]

입력 2024-02-05 18:00 | 신문게재 2024-02-0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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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아
초연 이후 10년만에 뮤지컬 ‘드라큘라’ 미나로 돌아온 정선아(사진제공=오디컴퍼니)

 

“10년 전에는 저도 어리고 철없고 말괄량이 같아서 ‘내가 왜 미나지? 루시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창법도, 스타일도 미나 보다는 루시가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긴 하거든요. 그때는 미나를 이해하기가 좀 어렵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미나가 너무 재밌고 저한테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4년 초연 이후 10년만에 뮤지컬 ‘드라큘라’(3월 3일까지 샤롯데씨어터)로 돌아온 정선아는 “미나는 힘없고 약한 여성상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약혼을 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휘몰아치는 전생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에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따뜻하면서도 단단한 여성”이라고 밝혔다.

 

드라큘라 정선아
뮤지컬 ‘드라큘라’ 미나 역의 정선아(사진제공=오디컴퍼니)
◇미나, 솔직하고 단단한!

“미나는 누구보다 솔직한 여자 같아요. 2막에서는 온 정신을 쏟으며 모든 것들이 드라큘라로 향하거든요. 당신과 함께 그 세계로 갈 수 있다, 죽어서도 당신 곁으로 가겠다…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참 이전에는 없었던 사랑이야기 같아요. 그런 사랑을 얘기하는 ‘드라큘라’가 고맙기도 하고 너무 이해가 돼서 매일을 울어요.”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드라큘라’는 400년을 한결같이 한 여인을 사랑한 드라큘라 백작(김준수·전동석·신성록,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과 그 여인 엘리자베사의 환생체인 미나(정선아·임혜영·아이비)의 이야기다.

‘지킬앤하이드’ ‘데스노트’ ‘엑스칼리버’ ‘웃는남자’ ‘시라노’ ‘몬테크리스토’ 등의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넘버를 꾸려 2001년 미국 샌디에고 라호야 플레이하우스(La Jolla Playhouse)에서 첫 선을 보인 후 2004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한국에서는 2014년 논레플리카(원작과 똑같지 않은)로 동방신기 출신의 김준수·류정한, 정선아·조정은 등이 초연을 함께 했다.

“10주년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고는 고민 없이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지금이라면 나만의 성숙한 미나를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0년 전에는 음악, 넘버 등이 너무 좋아서 소리로 잘 표현하려고 했어요. 날 것의 열정으로 임했다면 지금은 제대로 된 연기로 노래의 가사 하나하나에 메시지를 담아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가 10년 만에 ‘드라큘라’의 미나로 돌아올 용기를 내게 한 건 무엇 보다 “정선아의 미나를 보고 싶다”는 관객들의 염원이었다. 정선아는 “그에 힘입어 10년만에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었다”며 “기억을 더듬으면서, 새로운 배우들과 함께 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초연 때는 미나에서 엘리자베사로 들어가는 게 좀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안에 엘리자베사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초연 때 제가 어려워 하는 부분에 대해 (미나 역에 더블캐스팅됐던 조)정은 언니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어요. 기량은 10년 전이 더 좋았을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은 미나가 드라큘라를 보내기까지의 그 여정 중 어느 한 부분도 이해 안되는 데가 없어요.”


◇미나와 드라큘라의 첫 단추 ‘She’

정선아
초연 이후 10년만에 뮤지컬 ‘드라큘라’ 미나로 돌아온 정선아(사진제공=오디컴퍼니)

 

“모든 장면이 중요하지만 특히 1막의 기차역 신이 드라큘라와 미나를 이어주는 첫 단추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첫 단추를 잘 끼우려고 집중하고 있어요. 여러 차례 마주치고 만나지만 서로가 영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여기서 시작돼 끝까지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 기차역에서 드라큘라가 부르는 ‘쉬’(She)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빠져들거든요. 전생의 드라큘라와 엘리자베사 이야기가 컴팩트하게 들어있어서 그 신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했죠.”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미나에 집중하고 있다는 정선아는 “드라큘라를 연기하는 배우들마다 전혀 다른데다 라이브다 보니 같은 배우라도 그날그날 템포도, 대사 간 텀도 달라진다”며 “저마다의 감정에 빠져있고 그에 집중해서 하다 보면 매회 느끼는 것들도 조금씩 달라진다”고 밝혔다.

“그래서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가 공을 잘 받아서 넘겨줘야 하기 때문에 ‘왕자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죠’라는 잠깐의 대사로 시작해 음악이 들어가기까지 엄청난 집중을 하면서 공연에 임하고 있어요.”


◇‘드라큘라 장인’ 김준수, 다른 작품에서 만나고 싶은 신성록, 성장해 다시 만난 전동석

뮤지컬 드라큘라
뮤지컬 ‘드라큘라’ 드라큘라 역의 김준수(왼쪽부터), 신성록, 전동석(사진제공=오디컴퍼니)

 

“(김)준수 배우는 드라큘라 장인이죠. 10년 전 초연에 비해 기량도, 내공도, 연기도 너무 늘었어요. 준수 배우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지금 당장 죽을 것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저렇게 열정을 토하면서 할 수 있는지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에요.”

2014년 초연을 함께 만들면서 고민하고 고생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이번 시즌 김준수와의 첫 공연에서 “엄청 울었다”는 정선아는 “연습할 때는 노래를 못부를 정도로 울었다”고 전했다.

“드라큘라와 미나로서가 아니었어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면서 우리 너무 고생했다, 대견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냥 준수 배우랑은 마음이 저릿하면서도 안정적이에요. 준수 드라큘라와 함께 하면 서로를 믿는 마음이 크다 보니 편안하고 안정감이 들죠.”

첫 호흡을 맞추는 신성록에 대해서는 “이렇게 노래를 잘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라며 “타고난 재능, 끼도 있지만 항상 일찍 오고 노래 공부를 하는 등 노력하는 배우”라고 밝혔다.

“게다가 너무 멋있잖아요. 감정이입하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다른 작품에서도 만나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전)동석 배우는 ‘모차르트!’에서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로 둘 다 아기일 때 만났는데 이제는 서로를 격려하는 나이가 됐어요. ‘드라큘라’를 여러 시즌 하면서 엄청나게 발전했더라고요.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모차르트’ 이후로) 또 다시 사랑하는 역으로 만났구나 싶어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선아
초연 이후 10년만에 뮤지컬 ‘드라큘라’ 미나로 돌아온 정선아(사진제공=오디컴퍼니)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던 ‘이프덴’

 

영생, 전생, 영원불멸의 사랑, 400년을 이어져 온 순정 등 ‘드라큘라’의 극단적인 설정이 아니라도 누구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정선아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선택한 게 ‘이프덴’(If Then)”이라고 털어놓았다.

“대본을 미리 봤지만 그렇게까지 무대에 계속 나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도 한 체력하는데도 걱정이 될 정도였죠. 그럼에도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제 얘기 같았어요. 이런 작품을 언제 또 해볼까 싶었고 그때의 제가 엘리자베스에 최적화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 상황들, 감정들 등을 연기하지 않고 관객들께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뮤지컬 ‘이프덴’은 출산 후 그의 복귀작으로 퓰리처상, 토니상 등을 수상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작가 브라이언 요키와 작곡가 톰 키트 그리고 ‘디어 에반 핸슨’ ‘렌트’ 등의 연출가 마이클 그리프가 의기투합해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서른아홉이 되던 그때 저에게 딱 맞는 배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다’의 암네리스, ‘위키드’의 글린다 등 많은 분들께 사랑받은 ‘인생캐릭터’가 결혼과 출산 후 인생 2막을 맞으면서는 ‘이프덴’의 엘리자베스 같아요. 

 

그의 말처럼 선택에 따라 달라진 엘리자베스의 삶을 보여주는 ‘이프덴’은 막 출산을 하고 무대로 돌아온 정선아의 삶,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정선아는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저 스스로 성장하고 엘리자베스를 통해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겠다 싶어 선택했는데 음악이 너무 어려웠어요. 제가 배웠던 박자와는 전혀 다른 음악이었죠. 대본과 음악만 가져온 라이선스 초연이었기 때문에 창작처럼 준비를 했어요. 애 낳고 오더니 정선아 기량이 줄었다는 평가를 받을까봐 그 어떤 때 보다 떨렸는데 관객분들께서 너무 좋아해주셔서 감개무량했어요.”

 

정선아
초연 이후 10년만에 뮤지컬 ‘드라큘라’ 미나로 돌아온 정선아(사진제공=오디컴퍼니)

 

“내가 박치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 정도로, 제가 만나본 작품들 중 가장 어려운 음악”이라는 ‘이프덴’에 이은 ‘멤피스’ 역시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저도 나름은 노래를 잘한다는 배우 중 하나인데 2, 3곡만 불러도 힘들 지경의 넘버였거든요. 게다가 움직임이나 춤도 엄청 격렬했어요. 그럼에도 음악의 힘이 너무 컸고 신나게 춤추면서 너무 행복해서 웃음밖에 안났죠. 저는 늘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출산 후에는 ‘드라큘라’ 빼고 초연작이었죠. ‘드라큘라’ 역시 10년만에 다시 돌아오다 보니 매순간이 도전이었어요.”

이어 정선아는 “어떤 날은 ‘내가 이렇게까지 도전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지만 그 작품들을 놓치기 싫었다”며 “‘이프덴’을 통해 연기적 깊이가 좋아졌고 ‘멤피스’로는 음악적 역량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조금은 일찍 온 슬럼프 “그 덕에 지금은 그저 행복합니다”

드라큘라 정선아
초연 이후 10년만에 뮤지컬 ‘드라큘라’ 미나로 돌아온 정선아(사진제공=오디컴퍼니)
“슬럼프가 좀 일찍 왔어요. 어린 나이에 덜컥, 너무 하고 싶었던 뮤지컬 배우라는 꿈의 직업을 가지게 됐죠. 너무 행복한 일인데 스물여덟 정도에 매너리즘에 빠졌고 현실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열여덟에 뮤지컬 ‘렌트’의 미미로 일찌감치 무대에 데뷔했던 정선아는 슬럼프도 부쩍 빨랐다. 정선아는 “열여덟부터 뮤지컬만 하다 보니 어려서부터 목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놀지도 못하고 신나게 큰소리로 떠들지도 못하고 술도 서른이 넘어서부터야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노래하는 사람인데 술을 마시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거든요. 내가 지금 정선아로 사는 건지 작품 속 캐릭터로 사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일이 잘 안되는 것도 아니고 부족함도 없는데 너무 안행복한 거예요.”

이유없는 우울감에 힘들어 하던 중 장애인을 위해 노래하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정선아는 “제가 봉사받는 기분으로 행복해졌다”며 “자신감만 있고 자존감은 높은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없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이 일(봉사)은 평생을 병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직업을 가지기 위해 피마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나는 벌써부터 이 자리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으면서 감사하지 못하고 불만만 가지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제 슬럼프나 매너리즘 그런 건 없어요. 그저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야지, 감사해야지 할 뿐이죠. 지금은 마냥 행복합니다.”


◇후회 없는 선택들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정선아
초연 이후 10년만에 뮤지컬 ‘드라큘라’ 미나로 돌아온 정선아(사진제공=오디컴퍼니)

 

“배우인 저로서는 작품 선택이 정말 중요해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작품을 선택할 때 제 촉을 믿는 편이에요. 이 작품이 나를 빛내줄 것인가, 이 작품이 나한테 어떤 것들을 가져다 줄 것인가, 내가 어떤 도전을 하게 해줄까, 음악적 혹은 연기적 역량을 키워줄 것인가…촉이 비켜나갈 수도 있죠. ‘이 작품을 할 걸’ 잠깐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선택한 작품들 중에 어느 하나도 후회한 게 없어요.”

여전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정선아는 “보상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하고 싶어서 선택해 최선을 다한 작품을 관객분들도 좋다고 해주시니 더 멋진 배우로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지금까지는 뮤지컬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저를 롤모델로 삼았었다면 이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돼 아이를 낳고도 안주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변함없이 잘 할 수 있고 기량이 더 높아질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그런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코로나를 비롯해 독감 등 전염병이 유행하는, 피치 못할 상황이 늘 존재하는 시대에 무대 위에서 책임감 있는,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그런 배우로 남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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