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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2080] 이 시대 아버지들이 배워야 할 손흥민 오타니 아빠들의 인성교육

입력 2024-04-0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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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1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에서 주장 겸 스트라이커로 맹활약 중인 손흥민.

 

한국과 일본의 스포츠계를 대표하는 ‘인성 갑(甲)’ 베스트 플레이어로 축구의 손흥민과 야구의 오타니 쇼헤이가 꼽힌다. 두 사람 모두 경기장 안팎에서 두루 사랑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모, 특히 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과 진정성 있는 솔선수범 훈육이 만들어낸 결정체라는 평가도 함께 듣는다. 두 사람의 아버지가 행했던 가르침을 짚어보면, 이 시대 우리 아버지들이 해야 할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게 된다.



◇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선수이기 전에 사람”


손웅정 씨는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에세이를 통해 손흥민을 월드 클래스로 성장시킨 비결을 공개한 바 있다. 그는 우선, 축구 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이 되라고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가르쳤다. “상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 그 상황이 아무리 공을 툭 차면 골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챤스라고 해도 공을 바깥으로 차내라”고 했다.

손 씨는 남다른 스포츠맨십의 가치도 가르쳤다. 스포츠맨십은 ‘리스펙트’, 곧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고 했다. 같이 뛰는 선수들에 대한 존경심을 의미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그것을 초월하는 존중과 존경이 있어야 진정한 스포츠맨십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스포츠 선수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 “왜” 라는 질문을 늘 자신에게 던지라고 주문했다. 가르쳐주는 대로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 였다. 스스로도 혼자 양발 차기 연습을 하면서, 오른 발을 쓰지 않으려고 오른 쪽 축구화의 텅(혓바닥) 위치에 압정 핀을 자신의 발목으로 향하도록 꽂고는 슛 연습을 했다고 한다.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런 악발이 DNA가 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손웅정 씨는 가정에서는 아빠로서 솔선수범을 보여주려 부단히 애를 썼다. 가정은 최초의 학교이자 최고의 학교라고 믿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에 앞서서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먼저 보고 배운다고 생각했기에 말 하나 행동 하나도 조심했다. 유소년 축구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그는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뛰고 땀 흘려 “파이팅”을 외친다.

그는 “부모의 역할은 신뢰와 격려로 멀리서 지켜봐 주는 것, 딱 그것”이라고 했다. 아들이 욕심과 마음을 비우고,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기만을 바랬다. 패배를 끌어안을 힘과, 실패를 딛고 일어설 힘을 키우고, 다른 사람의 아픔도 내 아픔처럼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손흥민은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라며 아버지에게 한 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손웅정 씨는 “성공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말라”고 평소에 손흥민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그것이 곧 안주하는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성공’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성장’을 더 생각하라고 일렀다. 사람들의 환호와 칭찬에 손흥민이 만족하고 주저 앉을까 봐 두려웠다고 토로한다. “우리 흥민이는 절대 ‘월드 클래스’가 아니예요”라고 극구 부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 오타니 아버지 오타니 토루의 ‘자율 훈육’과 ‘교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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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 ‘이도류 열풍’을 몰고 왔던 오타니 쇼헤이. 사진=AP연합뉴스


2021년에 메이저리그에서 만장일치로 MVP를 수상하며 ‘이도류’의 성공담을 완성한 오타니 쇼헤이. 하지만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야구공을 손에 잡은 이후 한 동안은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야구 선수 출신이고 어머니는 배드민턴 선수 출신이라 운동 선수의 남다른 DNA가 있을 법도 했지만, 상당 기간 그는 빼어난 운동선수의 가능성을 보이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아들을 채근하거나 닦달하지 않았다. 하고 싶어하는 것을 즐겁게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데 주력했다. 심지어 당시 아버지는 리틀 야구 감독이었다고 한다. 그는 오타니에게 한 번도 “야구 하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즐기면서 하는 운동이길 원했던 것이다. 꾸짖거나 화를 내기 보다는 최대한 자율성을 존중해 주었다.

대신에 그는 최대한 열심히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아이는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란다’는 마음을 늘 새겼다. 그들 부부는 오타니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눈치를 보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신 가족들이 최대한 오래 같이 시간 보내도록 힘 썼다. 저녁 식사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같이 하는 규칙 아닌 규칙을 만들어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궤도에 오르고서도 그는 절대 집으로 야구를 가져오지 않도록 노력했다. 지나친 몰두가 자칫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학교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이야기, 친구들과의 에피소드 같은 것 들을 얘기하도록 유도했다. ‘인간미 넘치는 오타니’가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가정 교육이었다.

야구 선수 오타니를 위해 아버지가 한 거의 유일한 것은 아들과 ‘교환일기’를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서로 그 날 훈련장 혹은 야구장에서 있었던 사실들에 대해 피드백을 해 주면서 스스로 부족한 것을 깨우치게 하고, 잘 된 것을 더욱 잘 되도록 칭찬하고 포용해 준 것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습관을 들여준 것이 지금의 오타니를 만든 원동력이었다. 난관이 오더라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치게 한 것이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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