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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이국노 회장 “세계 검도의 뿌리는 한국, 제대로 알리겠다”

[브릿지초대석] 이국노 사이몬 회장

입력 2016-12-05 07:00 | 신문게재 2016-12-0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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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노 회장 인터뷰9
검도계의 입신(入神)이라는 국내 최고수 검도8단의 이국노 회장(70·검도 8단). 최근 한·중·일 3개국을 수없이 오가며 온몸으로 써 온 ‘실전 우리검도’(직지 간)라는 자신의 최근 저서와, 평소 애지중지하는 진검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검도경영’으로 유명한 태선(太仙) 이국노(李國老) 사이몬 회장(70)은 지난 2013년 10월 검도계 최고 경지인 ‘입신(入神)’으로 불리는 8단 승단시험에 합격해 화제가 됐다. 검도 입문 약 50년 만이자 7단 승단 이후 17년 만이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포기하지 않고 8번 도전 끝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 그가 최근엔 ‘실전 우리 검도’ 라는 책을 펴내 또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세계 검도의 뿌리가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운동을 하거나 기업경영을 할 때 항상 ‘진검승부’를 한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한다는 이 회장을 만나 그의 인생론과 경영철학을 들어 보았다.

- 우선 이 책의 출간 동기가 무엇인지.


사람에게 족보가 있듯이 검도인(劍道人)으로 살면서 검도의 뿌리를 찾고 싶었다. 기업경영에, 현장 고증과 답사를 하느라 10여 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를 위해, 또 미래 후손들을 위해 이론을 집대성한 책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세계 검도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게 돼 뿌듯하게 생각한다.

- 검도가 일본 고유무술이라고 대부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 한·중·일 3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면서 신라 화랑의 ‘본국검’과 한국 고유의 검법인 ‘예도’를 접하게 됐다. 이것이 중국과 일본으로 전파됐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1790년 정조대왕이 이덕무, 박제가 등 실학자들을 시켜 ‘무예도보통지’를 만들게 했다. 이 책을 해석하고 중국과 일본의 자료들을 비교, 분석해보니 중국과 일본의 무예는 우리나라 고유의 본국검과 예도를 많이 복사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검법의 뿌리는 한국이라고 확신했고, 그 역사적 과정을 이 책에 자세히 담았다.

- 자료 수집에 어려움은 없었는가.

후세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심정으로 국내 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외국을 수없이 돌아 다녔다. 중국과 일본의 고서점을 찾아 필요한 책을 구했고, 검도 고수들과 학자들을 찾아 전국을 헤매기도 했다. 중국에선 거래처 사장에게 필요한 검서를 요청했는데 그 회사 직원들로부터 2만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이메일로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자료들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은 책자는 없고 다만 글자로만 있는 게 고작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일본은 사무라이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검법들이 이론보다 몸으로 전승되고 있었다.

- 검도가 삶이나 기업 경영에 미친 영향이 있었나.

열다섯에 처음 죽도(竹刀)를 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약 40년 전이다. 1978년 사업 실패의 어려움을 겪었을 당시, 사무실 위층에 검도 도장이 하나 생겼다. 화풀이를 거기다 한 셈이다. 남들보다 10배는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시작한 검도는 내 삶, 그리고 기업 경영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검도 뿐 아니라 무술을 배우는 이유는 딱 하나다. 무술은 사람에게 용기를 심어 주고, 그 용기를 좋은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회사나 나라가 위급할 때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 검도는 바로 용기 있는 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앞으로도 한국 검도계를 위해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이번에 출간한 ‘실전 우리 검도’의 내용과 검법 하나하나를 직접 시연한 모습이 담긴 CD를 만들어 한국 검도를 제대로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려 한다. 내년 2월이나 3월 초에는 관훈클럽에서 ‘북 콘서트’를 준비를 하고 있다. 책을 팔아 돈을 벌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검도인으로서 주변 지인이나, 검도에 관심 있는 사람, 전문가 등을 초청해 직접 시범도 보이고 토론도 하는 자리를 가지려 한다. 또 현재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 애니골 지역에서 YMCA의 지원을 받아 내 호를 딴 ‘태선(太仙) 검도관’을 짓고 있다. 내년 6월에 개관할 예정인데, 이를 통해 후진을 양성토록 하겠다. 수제자(首弟子)가 없어 늘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부터라도 제자 양성에도 힘쓸 생각이다.

-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한 가지가 있다. 군인은 전쟁에서 싸울 때 총과 칼로 싸운다. 정조 때 우리나라의 훈련도감, 장용영 등 5군영 전군이 모두 무술을 훈련했다. 당시 총이 없었겠느냐? 있었다. 그런데도 무술을 했다. 우리나라도 경찰은 물론, 전 군인들이 검을 통해 무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아들이 내년 초 전방 부대 대대장으로 취임한다. 칼과 무술을 통해 검도가 조국을 지키는 국방의 초석이 되고 정신이 되었으면 한다.

- 생활 철학이랄까, 소신이 있다면.

평생 다음 세 가지를 다짐하며 살아왔다. 그것을 나름대로 ‘인생 3락’ 이라고 말하고 있다. 첫째, 자기가 하고 있는 본업에 최고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정의 화목을 위해 최고의 가장이 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는 취미생활에 최고가 되고 싶었다. 물론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나름대로 이제 세 가지를 거의 이룬 것 같아 기쁘게 생각한다.


대담=박운석 산업부장
정리=이혜미 기자 hm7184@viva100.com


◇ 이국노 회장은 누구?

1947년생인 이국노 회장은 국내 플라스틱업계에서 ‘대부’로 불린다. 충북 진천 출신으로 1973년 한양대 공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맨손으로 파이프업체 ‘지주’를 창업했다. 이후 사이몬, 유화수지, 오노 등 플라스틱 관련 회사를 잇달아 설립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과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 한국플라스틱재활용협회 초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기업인으로서 뿐 아니라 ‘진정한 검도인’으로도 칭송을 받고 있다. 2011년 ‘한국예도문화장학체육재단’을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원로 무도인과 학생들을 지원하며 검도계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용인대학에서 체육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무실에 들어온 도둑을 30센티미터 되는 대나무 자로 제압했던 일, 중국인 거래처 사장들이 보는 앞에서 나무젓가락으로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은 얘기 등등…. 그와 만나면 무용담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호탕한 성품에 의리를 중시해 사람들이 많이 따른다. 그는 최근 자기 회사를 위해 평생 일하고 떠나는 퇴직자들에게 사재를 털어 거액의 퇴직금을 쥐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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