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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김윤신 개인전 “모두가 내 삶의 흔적, 동서남북 작가이고 싶어요!”

입력 2024-03-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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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40여년만에 한국으로 터전을 옮긴 후 처음으로 개인전을 여는 김윤신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제가 생각하는 제 삶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요. 삶의 흔적을 그대로 표현할 뿐 다른 걸 가미하거나 표현하는 게 아니거든요. 주어진 내 환경, 내 생활의 모든 것이 거기에서 맴돌고 있는데 딴 건 필요 없어요. 전부 다 내 삶이에요. 그렇게 내 삶 전체가 표현되는 거죠.”

88세. 개인전 ‘Kim Yun Shin’(4월 28일까지 국제갤러리 K1, 2)을 진행 중인 김윤신 작가는 예술 그리고 표현에 대해 “삶 전체”라고 했다. 삶을 기반으로 한 작품세계를 선보여온 그는 4월부터 시작되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에 공식초청될 정도로 지금에 발 딛고 있다.

 

그는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친구도 없이 종일 혼자서 놀았다”며 “울타리에 있는 나무들을 뽑아 안경도 만들고 소도 만들어서 물감칠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윤신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나무 조각을 모아 했던 작업들도 만날 수 있다(시진=허미선 기자)
“밤하늘의 별과 대화를 하며 이름을 붙여주고 꽃에 물을 주며 이야기를 나누죠. 자연이 모두 친구였어요. 그렇게 놀 던 때가 생각이 났어요. 그때 솟던 것들이 제 작품으로 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60세 이상은 절대 바깥에 나갈 수 없을 때도 (물감도, 재료도, 교육을 다로 받은 적도 없었지만 자연 모두를 친구 삼아 놀던) 그때가 생각났어요. 집에서 작업을 해야하는데 재료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주운 나무들을 잘라서 붙이는 작업을 했죠.”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거대한 나무를 구하기 힘들어진 그가 나무 조각을 모아 진행한 작업들도 이번 개인전에서 만날 수 있다.

40여년만에 한국으로 터전을 옮긴 후 처음으로 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1975년부터 그가 추구해온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철학이 스민 나무조각 연작과 남미의 토속색, 한국 오방색, 멕시코 여행에서 조우한 아스테카의 흔적 등이 담긴 ‘이루어지다’ ‘내 영혼의 노래’ ‘원초적 생명력’ ‘기억의 조각들’ ‘진동’ 등의 회화 만날 수 있다.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김윤신은 1969년 귀국해 10여년간 교단에 섰다. 김윤신은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조각가로 한국여류조각가회의 설립을 주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1984년 특유의 에너지와 생명력 넘치는 나무, 자연환경에 반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나무 조각, 석판화, 회화 등을 아울렀다.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에서 멕시코로, 멕시코에서 브라질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를 오갔던 그는 88세가 된 지금까지도 제 몸집만한 톱을 들고 활발하게 작품활동 중이다. 이는 그의 예술이 삶이자 끝이 없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김유신 전경
김유신 개인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제 예술은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끝이 없어요. 끝이 없고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요. 매일 아침과 저녁이 반복적으로 오잖아요. 그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죠.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몰라요. 오고 가는 건 아는데 어디로 가고 오는지는 모르죠. 똑같아요. 예술이라는 게 답이 주어지는 것도, 끝도, 완성도 없잖아요.”

그는 “그저 작가가 여기서 멈추고 싶다고 하면 멈추는 거고 더 하고 싶다면 더 하면 된다”며 “시작과 끝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그냥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라고 덧붙였다. 

 

김유신
김유신 개인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우리 삶 속에 창조가 돼 있어요. 우리는 길게 살지 않아요. 모든 삶의 여정 자체가 이 순간, 이 찰나에 살고 있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중요해요. 어떤 과학이나 논리로 되는 게 아닌 자연 그대로의 그것이 연장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죠.”

재료, 특히 나무의 물성과 성정 등을 중요시한 목조각 역시 그의 삶에서 기인하며 자연 그대로의 연장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 경찰들이 잡으러 오는 통에 도망치다 행방불명된 오빠를 위해 어머니는 새벽이면 산비탈로 가서 기원을 하곤 했다” 전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예술을 하면서 보이는대로가 아니라 내면에서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무를 깎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유신
김유신 개인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엄마가 자식을 위해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그 염원을 담아 (‘기원쌓기’) 형상으로 시작했어요. 저는 나무를 굉장히 좋아해요. 나무는 사람들이 잘 몰라요. 그냥 말없이 서있지만 살아 있거든요. 숨을 쉬고 있죠. 그 나무가 풍기는 향이 있고 근육의 질이 있어요. 우리도 사실 자연이잖아요. 자연과 자연 사이에서 형태만 다를 뿐 생명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건 똑같아요.”

그의 나무조각은 한국의 소나무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팔로산토(Palo-Santo)나 알가로보(Algarrobo)등은 한국의 토템 중 하나인 장승의 형상을 하고 있다.   

 

김윤신
김윤신 개인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알가로보는 물이 없고 단단한 자갈밭에서 성장하는 나무예요. 처음 신부가 되는 분들의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잘라 이 나무로 만든 상자에 보존하죠. 이 나무가 계속 숨을 쉬고 있고 생명력이 있어서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어 그는 “팔로산토는 돌같이 단단하다. 바닷물에 넣어도 가라앉을 정도”라며 “그래서 큰 배의 베어링으로 깎아서 쓰기도 한 아주 중요한 나무”라고 부연했다. 이 나무들은 그가 아르헨티나에 터를 잡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나무껍질은 그대로 살리고 속을 파내면서 조각의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취하는 그는 “생명이 있는 나무, 한국의 나무와는 다른 남미의 나무 등을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하곤 한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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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재료가 주어지면 며칠을 두고 봅니다. 나무의 상태, 질, 단단한가 연한가, 껍질, 향 등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완전히 파악되고 재료와 제가 하나되는 순간이 와야 잘라내기 시작하죠.”

그렇게 나무는 그의 손길로 변화를 맞이하고 또 하나의 생명으로 잉태된다. 이를 그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저는 동서남북 작가로 살고 싶어요. 동쪽으로 가나 서쪽으로 가나 남으로 가나 북으로 가나 작업을 하는 곳이 내 나라라는 마음으로 살아왔거든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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