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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흥행 뮤지컬 제조기' 장유정 "인간관계 따뜻함 이야기하죠"

[사람人] 극작·연출가 장유정

입력 2015-09-09 07:00 | 신문게재 2015-09-0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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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 '그날들', 연극 '멜로드라마'의 장유정 연출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는 휴머니스트다.(사진=양윤모 기자)

 

“종이 한장에 삶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일확천금이나 허황된 꿈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잖아요. 아버지의 유산을 통해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장유정 연출은 세심한 이야기꾼이다. 2008년 초연해 7번째 무대를 올린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속 아버지의 유산이 ‘로또’인 이유는 이렇게나 명확하다. 직접 취재했던 종손 집안의 보물급 서책, 금괴 등을 두고 장고를 거듭한 끝에 장 연출은 유산으로 ‘로또’를 선택했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과 효, 우정과 형제애, 사랑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다고 할 수 없는 것들, 그들이 떠나고 없어도 남아있는 것들의 가치를 로또로 흥미롭게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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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공연 모습.(사진제공=PMC)

 

‘형제는 용감했다’는 안동 이씨 종손집안의 이석봉·이주봉 형제가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벌어지는 가족사다.

‘무한도전’의 정준하·윤희석·최재웅이 형 이석봉을, 최근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광대승천 어릿광대’라는 이름으로 가창력을 뽐낸 김동욱과 뮤지컬 배우 정욱진, 아이돌그룹 보이프렌드의 동현이 동생 이주봉을 연기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석봉·주봉 형제가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엄마~”라는 대사 한마디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 제목의 ‘용감했다’는 단어 역시 반어적 표현으로 극명한 대비를 위한 장치다.

“형제가 전혀 용감하지 않잖아요. 비겁하고 지질하고 철없고 못됐고 저밖에 모르고….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조금은 철이 들고 용감해지죠. 안동 이씨 종손 뿐 아니라 우리 삶 자체가 그렇잖아요. 부모 슬하에서 보호받다가 자신의 세대로 바뀌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계기를 맞이하죠.” 그렇게 장 연출은 우리네 삶을 이야기한다.

“사람 때문에 상처 받고 사람 때문에 치유받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20대에 쓴 글이 있고 40대가 된 제가 쓴 글은 또 달라지겠지만 그 핵심은 언제나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희망이죠.” 



◇ 변화와 보존, 치열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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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연출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할지 뚝심 있게 지켜가야 할지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고민한다.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할지 뚝심 있게 지켜가야 할지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고민해요. ‘형제는 용감했다’도 7번째, 하물며 한국에서는 3년만에 무대에 오르는데 관객은 너무 많이 변해 있어요. 1막은 현재에 맞춰 경쾌함을 더하고 2막은 원형을 살렸죠. 형제 이야기를 다룬 1막이 지금의 흐름을 담았듯 부모세대 이야기인 2막은 그 시대의 흐름을 유지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출과 시절 무대에 올린 뮤지컬 ‘송산야화’로 주목받기 시작해 ‘연극명가’ 연우무대의 첫 뮤지컬 작품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영화로도 만들어진 ‘김종욱 찾기’, 故김광석의 노래를 엮은 ‘그날들’, 부모 세대 이야기로 형제애를 이야기한 ‘형제는 용감했다’, 드라마 같은 연극 ‘멜로드라마’ 등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했고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 바탕에는 이 같은 장 연출의 깊은 고민이 내재돼 있다. 현실감을 살리기 위한 취재와 자료조사, 원형을 지키면서도 현재를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과 고민이 관객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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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조사를 위해 3번이나 인도를 방문했던 '김종욱 찾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김종욱 찾기’ 자료조사를 위해 3번이나 인도를 갔었어요. 이 작품을 쓰려고 마음 먹은 게 2002년이에요. 자료조사, 인물구성, 이야기는 다 돼 있는데 지우(임수정)가 첫사랑 김종욱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찾는 이유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했어요. 무대에서 보여주지는 않더라도 작가인 저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 고민이 풀리는 순간 3일만에 대본을 완성했죠.”

이같은 고민은 ‘김종욱 찾기’ 뿐 아니다. ‘형제는 용감했다’를 준비하면서는 안동 이씨 집안을 찾아 수많은 이들을 만났고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대본을 쓰면서는 꽃동네에서 한 달 반가량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특히 ‘그날들’은 문외한인 군대·공무원·경호팀·남자들의 세계를 취재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던 작품이다.

“마음먹고 보면 세상 모든 게 소재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에너지를 줘요. ‘형제는 용감했다’ 2막 1장에는 삼베를 얼굴에 뒤집어 쓴 엄마가 등장해요. 초연에는 없던 장면이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처음 삼베로 덮인 얼굴을 보고 슬펐던 기억을 무대로 옮겼죠.”
그렇게 그의 삶과 경험은 고스란히 무대로 전이된다.


◇ 언제나 돌아갈 초심,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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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연출의 공식 데뷔작,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반신불수 주인공, IMF, 대안가족 등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경쾌하게 풀어간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장 연출의 공식적인 데뷔작이다.

 

연우무대의 첫 뮤지컬로 90석이 연일 사람으로 꽉 들어찰 만큼 흥행에 성공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제12회 한국뮤지컬대상 작가상과 최고작품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초연 후 엄청난 제안이 쏟아졌다. 그 가을 몇 달 동안 받은 제안이 2006년부터 현재까지 받은 의뢰보다 더 많았을 정도다.

“너무 두려웠어요. 저는 이제 막 200석 짜리 무대를 책임질 정도의 깜냥을 갖췄을 뿐인데 눈 뜨면 과한 촉망과 분에 넘치는 기대가 쏟아졌죠. 누구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제 수준을 뻔히 아는데 그 이상의 것을 덜컥 잡았다가는 저의 부족함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 분명했거든요.”

그래서 도망치듯 인도로 떠났다. 두 번째 인도행이었다. ‘김종욱 찾기’의 기초를 다지는 시기를 보내며 장 연출은 초심으로 돌아가 연극 대본을 집필했다. 오롯이 연극 대본을 쓰는 데만 집중해 1년만에 무대에 올린 작품이 ‘멜로드라마’다.

 

 “그때 도망가길 잘했다”며 웃는 그의 초심은 언제나 무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1년 6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쓰면서 경제적 안정을 찾았지만 그는 결국 무대로 돌아왔다.

“정말 뮤지컬이 하고 싶었거든요.”
답은 명쾌하다. 그리고 작품 하나가 걸음마를 뗄 때까지 지켜줘야 한다고 믿는 그가 작품을 대하는 마음은 애틋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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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주목받을 때 초심으로 돌아가 무대에 올린 연극 '멜로드라마'(사진제공=나무액터스)

 

“해를 거듭할수록 제작비용도 기대치도 올라가죠. 저희는 매일 공연하지만 관객 대부분은 처음 보시는 거잖아요. 누가 봐도 재밌게 초심으로 돌아가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더 다듬고 고민하고…. (뮤지컬 티켓비용)9만원이면 운동화를 한 켤레 살 수 있어요. 운동화가 주는 행복을 2시간의 공연으로 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죄책감에 시달리죠. 사실 초심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제가 초심으로 돌아왔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몸이 부서져라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김종욱 찾기’, ‘멜로드라마’ 등으로 영화, 연극으로 장르를 넘나들었던 그는 2016년 다시 한번 영역을 확장한다. 국립창극단과 판소리 ‘흥보가’를 무대에 올릴 계획이기 때문이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를 좋아했고 오래 전부터 함께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안맞아 못하던 일을 이제야 하게 됐죠. 너무 기대하고 있어요. 도전은 저 뿐 아니라 작품세계까지 성장시키니까요. 고전을 현대로 옮기기 위해서는 고전도 현대도 원형도 잘 알아야 해요. 국립창극단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여전히 사극이 주목받는 이유, 고전이 가진 힘인 동시대성을 공부 중이라고 표현한 장유정 연출의 고민이 또 다시 깊어진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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