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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성’으로 무장하고 내면 짚어보기!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고연옥 작가·김정 연출 ‘처의 감각' , 경민선 작가·조현산 연출 ‘손 없는 색시’ , 이성열 연출 ‘에어콘 없는 방’
갈량원 연출 ‘그믐, 또는 당신이 기억하는 방식’, 윤한솔 연출 ‘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공옥진의 병신춤’
최치언 작·연출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김수희 연출 ‘두 번째 시간’, ‘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

입력 2018-01-21 18:30 | 신문게재 2018-01-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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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열린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기자간담회(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그간 사회 당면문제에 대한 목소리와 작가들의 발언이 거셌다면 2018년 키워드는 성찰, 내면에 고개돌리기입니다.”

17일 시즌 프로그램 8편과 공모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우연 극장장은 2018년 남산예술센터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올해 역시 드라마센터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바라보며 진행된 기자간담회에는 우연 극장장과 서울문화재단 주철환 대표이사를 비롯해 시즌 프로그램 8편의 창작진들이 참석했다.

“우리 세계의 기반이 약한 건 아닌지 우리가 겪은 파국, 역사가 해결하지 못한 잔재, 블랙리스트 등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작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내면적 진상조사입니다.”

우연 극장장의 말처럼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면적 진상조사에 나선 이들은 ‘처의 감각’(이하 공연시기 순)의 고연옥 작가·김정 연출, ‘손 없는 색시’의 경민선 작가·조현산 연출, ‘에어콘 없는 방’ 이성열 연출, ‘그믐, 또는 당신이 기억하는 방식’ 강량원 연출, ‘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공옥진의 병신춤 편’의 윤한솔 연출,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의 최치언 작·연출, ‘두 번째 시간’ 이보람 작가·김수희 연출 그리고 한국·일본·홍콩이 공동제작하는 ‘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가제) 이경성 연출이다.


◇키워드 1. 세계관의 차이 고연옥 작가·김정 연출 ‘처의 감각’(4월 5~15일)

[저용량]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포스터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포스터(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기쁘다기 보다 무서웠습니다. 연약한 운명을 가진 이 희곡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관객과의 소통에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위태롭고 불안한 길을 가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래의 문을 여는 작품은 고연옥 작가·김정 연출의 ‘처의 감각’이다. 고연옥 작가가 무대화가 무서웠다고 표현한 ‘처의 감각’은 벽산희곡상 수상작으로 2016년 7월 고선웅 각색, 연출로 선보인 ‘곰의 아내’ 원작이다.

이에 대해 우원 극장장은 “작가·연출 사이의 세계관 차이로 당시에는 ‘곰의 아내’가 공연됐다”며 “고연옥 작가도 창작 대본을 각색으로 초연하기는 처음이었고 고선웅 연출도 생존작가의 각색본으로 첫 공연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극장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을 다시 올리는 이유는 제작과정에서의 경험들을 관객과 평단, 연극계에 오픈해 토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고선옥 작가는 “(고선웅) 선배가 어떻게 보실까 걱정이 됐는데 기꺼이 응원해 주셨다”며 “삼국유사의 웅녀신화가 내 이야기, 열심히 살지만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자각했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현재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지만 결국 강자, 약자 모두가 살아남기 어려운 생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절반은 곰이고 사라진 웅녀처럼 가장 약한 사람 혹은 성질이 도덕적인 것이고 사라져야할 감각이 돼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죠. 복원해야할 것은 약자의 감각, 곰의 감각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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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처의 감각’ 고선옥 작가(왼쪽)와 김정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이어 “남편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엄마를 용기 내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내 안의 소중한 무언가를 죽이는 걸 피할 수 있지 않을가 생각했다” 집필 의도를 설명하며 “연약한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공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미완의 과정 중인 텍스트를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출범한 ‘서치라이트’ 낭독공연 당시 함께 했던 김정 연출은 “이 대본이 얼마나 연극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인간의 근원적 힘에 대한 회복, 빈 무대를 가득 채울 연극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와 닿았습니다. 연극적, 아날로그적 놀이를 통해 해결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대본은 이미 깊고 큰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배우들과 남산에서 재밌게 놀아야 극복될 것 같아요.”

김정 연출의 말에 고선옥 작가는 “김정 연출은 희곡을 진지하게 통찰하고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면서 독특한 연극, 놀이로 발전시키는 감각을 가진 연출”이라 평하며 “연극 ‘처의 감각’은 유쾌한 블랙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처의 감각’은 한국 공연을 거쳐 하이델베그르 극장에서 독일어로 번역돼 독일배우들의 리딩공연으로 첫 선을 보인다.

 

◇키워드 2. 시를 닮은 인형극, 경민선 작가·조현산 연출의 ‘손 없는 색시’(4월 26~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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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 ‘손 없는 색시’의 경민선 작가(위)와 조현산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여자 아이가 계모에 의해 손이 잘려 내쫓기는 민담에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계모 설화를 근간으로 하는 이 민담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아시아 ,유럽에 퍼져 있죠.”


공동제작 공모 선정작인 ‘손 없는 색시’에 대해 경민선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어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여인의 손이 더 이상은 하기 싫다고 도망가 버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며 “슬픔 때문에 아이는 이미 늙어버린 채 태어나고 어미는 그의 수의를 직접 지어주기 위해 도망간 손을 찾으러 떠난다”고 덧붙였다.

우연 극장장은 ‘손 없는 색시’에 대해 “공모 당시 심사위원들이 아름답고 시적인 희곡이라고 평가한 작품”이라며 “최근 우리 사회는 물리적으로 가슴 아픈 일을 겪었고 엄청난 죽음을 목도하기도 했다. 그 가슴을 쓸어내렸던 경험과 고민을 인형들과 공유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왜 인형극이냐는 질문에 조현산 연출은 “신화를 바탕으로 상징이 많은 작품이 인형극이라는 형식에 매우 잘 맞았다”고 정리했다.

“인형극은 문학으로 따지면 시와 비슷합니다. 시적 압축처럼 자연스러운 표정을 만들 수는 없지만 결여가 주는 여백이 상상력을 자극하죠. 상상력 보다 더 좋은 표현 수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키워드 3. 현대사가 심은 무의식 속 불안과 공포, 이성열 연출의 ‘에어콘 없는 방’(5월 17~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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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없는 방’의 이성열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피터 현, 박헌영, 앨리스 현 등 실제인물들의 내면 불안감을 통해 현대사가 심은 무의식 속 불안과 공포를 논하고자 합니다.”

우연 극장장의 소개처럼 ‘에어콘 없는 방’은 고국을 찾은 70대 노인이 하룻밤 동안 겪는 일을 담고 있다. 피터 현은 독립운동가 현순 목사의 아들이자 한국인 CIA 요원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며 구설에 올랐던 앨리스 현의 동생이다. 이성열 극단 백수광부 대표 겸상임연출이자 국립극단 신임예술감독의 작품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재공연되는 ‘에어콘 없는 방’에 대해 “미진했던 부분, 극 중 극 등을 강화했다”고 귀띔했다.

“유신 직후 고국을 찾은 70대 노인이 하룻밤 동안 3가지 시대를 넘나들며 근대사의 여러 슬픈 여정을 담고 있죠. 꿈결처럼 시대를 넘나들며 뒤엉키면서 꿈과 행복을 위해 노력했던 젊은이가 어떻게 굴절되고 약·알콜 중독 등으로 초라하게 늙어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슬픈 자화상처럼 보여줍니다.”


◇키워드 4. 상실감. 강량원 연출, ‘그믐, 또는 당신이 기억하는 방식’(9월 4~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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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강량원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나무 위의 군대’ ‘해무’ ‘칼집 속에 아버지’ 등의 강량원 연출 신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표백’ 등의 소설가 장강명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긴 연극이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우연 극장장은 “상실감을 화두로 던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동급생을 살해한 소년이 15년 복역 후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기 위해 세상으로 나설 결심을 하게 돼요. 자신이 살해한 동급생 어머니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끝내 살해될 것을 알면서도 여자를 만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오죠.”

이렇게 설명한 강량원 연출은 “이 남자가 어떻게 동급생 어머니에게 살해당할 것을 알게 되는지가 소설의 핵심”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일어난 일이라기 보다 살해 후 어떻게 하면 자신의 행위를 가장 아름답게 끝낼 수 있을 것인가를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들죠. 전체 우주의 상징인 우주 알을 만들어 마음 속에 품고 자신이 살해한 동급생의 어머니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말이라 상상한 것 같아요. 즉 연극 자체가 어떤 한 사람의 꿈이거나 소설이거나 인생의 완결이죠. ‘브레인 컨트롤’의 정진세 작·연출이 각색하면서 젊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결합됩니다.”


◇키워드 5. 공옥진과 키네틱 센서, 윤한솔 연출의 ‘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공옥진의 병신춤 편’(10월 4~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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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공옥진의 병신춤 편’ 윤한솔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전통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데모버전’ 작업 후 전통에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청사진을 하나 만들어 싶었어요. 그에 이은 연작인데 만들면서 전통 장르 안에서 간과하고 있던 것을 느꼈죠.”

그간 판소리, 여성국극, 가부키(歌舞伎) 등 동양 전통 장르에 현대적으로 접근하던 윤한솔 연출이 이번엔 ‘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공옥진의 병신춤 편’으로 故공옥진 선생의 병신춤 탐구에 나선다.

“막연히 지루해 하고 재미없어 했던 전통 안에서 공감지점을 포착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통 춤에 관한 자료를 공부하다 공옥진 선생의 병신춤을 만났고 생애사를 알게 됐죠.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키네틱 센서를 활용해 춤을 배우는 게임처럼 공옥진 선생의 병신춤을 배우고자 합니다.”

윤한솔 연출의 말대로 ‘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공옥진의 병신춤 편’은 키네틱(콘트롤러 없이 이용자의 신체를 이용해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는 기술) 센서를 활용한 병신 춤 탐구의 결과가 될 전망이다.


◇키워드 6. 용기. 최치언 작·연출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10월 25~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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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어쩌다, 어쩌나’의 최치언 작·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용기에 대한 제 나름의 통찰을 모두 같이 느껴보고자 썼습니다.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라는 말이 있잖아요. 시대는 항상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은 우리를 딜레마에 빠뜨리죠. 그리고 시대는 딜레마에 빠진 인간에게 용기를 발휘할 힘을 요구하죠.”

최치언 작·연출의 설명처럼 공동제작 공모를 통해 제작될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남산예술센터 키워드인 조사, 내면 짚어보기 등에서 주목하는 용어 중 하나가 ‘용기’예요. 시대가 질문을 던질 때 어떻게 딜레마를 극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죠.”

우연 극장장의 소개처럼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시대가 던진 거대 담론과 딜레마를 개인이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해내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에겐 영광인 일이 누군가에겐 수모가 되는 상황에 선 주인공 두 사람이 각자 살아가다 만나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따릅니다. 용기라고 하니 진지하고 거창할 것 같지만 일상 속에서 누구라도 맞닥뜨릴 수 있는 블랙한 코미디가 될 것 같습니다.”

억울하게 강도 누명을 쓰고 수감된 남자, 그 남자를 잡아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또 다른 남자는 웃음으로 무장하고 현시대의 폐부를 아프게 찔러댈 예정이다.


◇키워드 7. 사회고발·의문사, 이보람 작가·김수희 연출 ‘두 번째 시간’(11월 15~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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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간’ 김수희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故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저마다의 위치에서 정의를 구현하며 평화적인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소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준환 감독,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강동원 등 출연의 영화 ‘1987’은 누적관객수 600만 관객을 훌쩍 넘어서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를 뒤이어 故홍기선 감독의 사회고발 3부작 마지막 이야기 ‘일급기밀’, 2009년의 용산참사와 그 이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등 사회고발성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극장가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두 번째 시간’은 남산예술센터 상시 투고 시스템 ‘초고를 부탁해’에서 발굴된 작품이다. ‘소년 B가 사는 집’으로 호흡을 맞춘 이보람 작가·김수희 연출의 두 번째 의기투합작으로 독재정권 시절 의문사를 당한 남편을 둔 아내의 개인사를 다룬다.

“제대로 해결하고 지나간, 사이다 같은 사건은 없어요. 저희 공연이 그걸 해결하고 시원하게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의 아픔, 상황이나 힘들었을 당시를 절절하게 구현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기억의 경험치에 반하는 일이 될 수도 있죠.”

소재인 의문사에 대해 조심스레 의견을 밝힌 김수희 연출은 “최대한 사실에 기반하되 유족들, 조사가 진행 중인 의문사 사건들에 누가 되지 않은 범위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를 담아 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사 중 해결되지 않은 의문사를 다루지만 진실 규명이나 역사적 사건을 따르기 보다는 돌아가신 분 외에 남은 사람들이 반대세력, 권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감히 용서와 화해라는 말로 잊어도 되는지 등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희곡입니다.”

그리곤 동시대성의 가치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기도 했다. 김수희 연출은 “‘권리장전’을 3회째 준비 중인데 동시대성, 사회성, 정치 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굉장히 실험적이거나 재미없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며 “하지만 펼칠 장이 없어서일 뿐이다. 펼칠 기회와 장이 많아서 동시대성 주제가 보편화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키워드 8. 만국공통 세대격차. 한국·일본·홍콩 공동제작 ‘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12월 5~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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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가제)의 이경성 연출(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촛불집회와 태극기 부대, 아이러니한 대립각을 목도한 것처럼 한 지붕 안에있는 세대 간 격차가 너무 크다는 걸 발견하고 극장에서 제안한 프로젝트입니다.”

우연 극장장 말처럼 ‘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가제)은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이 동일한 현상을 겪고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한국·일본·홍콩 3국 공동 프로젝트다.

 

초고속 발전을 이끈 세대와 저성장 시대의 젊은이, 홍콩 반환 전후와 노란우산 혁명으로 급변화한 시대의 세대간 격차, 중국과의 관계에서 오는 홍콩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무궁무진한 경제발전 시대를 살던 세대와 모든 것이 무의미한 세대의 격차 등은 결국 같은 성질의 것이다.

애초 동아시아 세계전쟁으로 묵직하게 풀려던 프로젝트는 3국의 80년대생 젊은 연출자들이 뭉치면서 발랄한 제목의 ‘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으로 진행 중이다. 3년에 걸쳐 진행될 프로젝트에는 ‘워킹 홀리데이’ ‘비포 애프터’ 등의 이경성 연출, 일본의 사토코 이치하라, 홍콩의 웡 칭 얀 버디가 참여한다.

“지난해 12월 세 나라 예술가가 모여 워크샵을 하면서 굉장히 값진 시간을 보냈고 희망과 기대를 품게 됐습니다. 대부분 국제공동제작 프로젝트는 영어로 소통하는데 극장측 배려로 각자의 언어로 설명하면서 작업했어요. 언어에 의한 위계 없이 자기 의사를 적극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처음 극장에서 프로젝트 참여 제안을 받고 망설였다는 이경성 연출은 값진 경험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한 배우의 말처럼 소리가 먼저 도달하고 의미가 나중에 전달되면서 더 잘 들으려 하고 이해하려는 과정이 됐다”며 “안에 있으면 지금 나의 현실, 사회를 잘 들여다보기 힘든데 이번 작업에서 더 잘 보게 됐다”고 부연했다.

“세 나라 창작자와의 얘기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문화적으로 같은 시대에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재키 찬(성룡), 엑스재팬, 일본의 포르노 스타 등에 대해 물으며 대중문화, B급 문화 등을 공유한 지점이 있었죠. 반면 역사적 측면에서는 대립되기도 했어요. 일본은 제국주의적 과거 역사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무지한 상태여서 홍콩과 한국이 분노하는 지점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는 소통이 잘 안되기도 했죠.”

이어 “동시대를 논하는 데 내가 속한 사회 뿐 아니라 관계의 틀거리 속에서 이해하고자 했을 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며 응원을 당부했다.


◇에필로그. 우연 극장장 이 바라는 현대식 아고라, 고연옥 작가 “극작가 사라지는 한국 연극 제작 시스템 제고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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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열린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기자간담회(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한국 연극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대본, 극작가입니다. 좋은 극작가가 없는 이유는 극작이 쉽지도 않지만 제작 시스템이 연출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대본이 도구처럼 수정·변형·각색되는 게 당연시 여겨졌기 때문이죠.”

고연옥 작가는 최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던 작가들의 공연계 위상과 처우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 재능 넘치는 작가들이 1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며 “대본 수정이 절대 안된다는 게 아니라 극작가의 세계나 생각 자체가 상실되거나 배제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어 “자신만의 세계, 특별한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 작가다. 그 세계가 부정될 때 작가는 의미를 상실한다”며 “극작가가 사라지는 한국 연극 제작 시스템이 제고되기를, 무대 잃은 후배, 동료 작가들의 작품이 복원돼 공연되기를 바란다”고 염원을 덧붙이기도 했다.

“작가들도 공연을 하면서 배우고 실패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극장에서 작가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저의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한 토로도, 극작가로 존중 받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연극 속 한 사람의 작업자가 되기를, 제 희곡이 연극 속으로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우연 극장장은 남산예술센터가 “논쟁을 사랑하는 관객들, 우리 사는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촉수를 가진 작가들에게 활발한 논쟁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현대식 아고라 극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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