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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풍미 제대로 느끼려면 ‘드라이에이징’

단백질 분해효소 ‘카텝신’, 저온서 활발히 움직여 … 마트·정육점 고기는 대부분 ‘웨트에이징’

입력 2016-05-0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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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에이징 소고기의 실제 식육 부위는 겉 표면을 잘라낸 속살로 처음의 절반에 불과해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최근 스테이크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드라이에이징’(Dry Aging, 건조 숙성)이다. 드라이에이징 소고기는 숙정 과정을 거쳐 풍미가 깊어지는 게 장점이다. 굳이 지방이 촘촘히 퍼져 있는 상위 등급의 고기를 먹지 않아도 충분히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스테이크 전문점들은 경쟁적으로 드라이에이징을 도입 중이다. 백화점에서도 프리미엄 식품관 내에 별도의 드라이에이징 코너를 마련해 소비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동물은 죽은 뒤 사후강직, 자가숙성, 부패 등의 과정을 거친다. 사후경직은 근육이 수축해 딱딱하게 굳는 현상으로 아직 근육세포는 살아있고 동물성 다당류인 글리코겐도 일정량 들어있다. 이때 근육세포는 글리코겐을 젖산으로 바꿔 에너지를 얻어 살아간다. 글리코겐이 줄어들면 근육조직 고유의 단백질 분해효소가 활성화되면서 자가숙성이 이뤄진다. 자가숙성을 거치면 아미노산과 지미(旨美)성분이 증가하고 육질이 연해진다.


소고기의 숙성 과정은 크게 웨트에이징(Wet Aging, 습식숙성)과 드라이에이징으로 방식이 나눠진다. 웨트에이징은 고기를 덩어리째 진공 상태로 포장한 후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냉장 상태에서 숙성하는 방법이다. 육즙이 풍부하고 신선한 게 특징이다. 마트나 정육점에서 판매하는 고기는 모두 웨트에이징을 이용한 것이다.


드라이에이징은 진공 포장하지 않고 공기가 순환되는 저온 저장고에 걸어 자연적으로 숙성시킨다. 이 과정에서 고기 수분이 날아가고 지방과 육즙의 풍미가 고기에 농축된다. 웨트에이징에 비해 고기 풍미가 진하고 식감이 부드럽다.


드라이에이징은 온도, 습도, 통풍 등 세 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한다. 온도는 1~2도 가량이 적절하다. 습도는 70~85%이면서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4~6주간 숙성을 거쳐야 드라이에이징 소고기가 만들어진다.


드라이에이징 소고기의 맛을 살리는 것은 세포 곳곳을 누비며 맛과 질감을 높여주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카텝신(Cathepsin)의 역할이 크다. 50도가 넘으면 활동을 멈춰 저온에서 숙성시키는 게 중요하다. 만약 저온조리 과정에서 50도 이하로 온도를 48시간 유지했다면 고열을 가해 카텝신 활성이 멈춘 고기에 비해 카텝신 활동 시간이 48시간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맛과 질감의 변화가 이뤄진다.


일부에서는 겉 표면이 말라붙어 까맣게 변한 드라이에이징 소고기를 꺼린다. 하지만 실제 식육 부위는 겉 표면을 전부 잘라낸 속살이다. 따라서 실제 판매하는 분량은 처음의 절반 가량에 불과하다. 자연히 가격도 고가가 될 수밖에 없다. 대략 일반 스테이크의 2배 가격이다.


드라이에이징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사용한 방식이다. 조상들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고기를 서늘한 창고에 넣었더니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맛있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고기를 부위별로 나눠 짚에 싸 주로 서늘한 동굴 등에 보관했다.


스테이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고기를 잡아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거꾸로 매달아 놓은 건식 숙성을 했다. 이탈리아식 햄인 ‘프로슈토’(prosciutto)나 스페인 ‘하몬’(Jamon)도 드라이에이징을 거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최근에는 집에서 드라이에이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키친타월로 핏물을 닦아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3일에서 2주일 정도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다. 채반 위에 올려둔 생고기를 냉장고 안에서 바람이 나오는 쪽에 두면 고기 표면이 꼬들꼬들하게 마르면서 숙성된다. 이때 숙성된 향이 고기 안쪽까지 배어 맛있는 드라이에이징 고기를 즐길 수 있다.


드라이에이징 고기는 부위에 따라 굽는 법도 약간씩 다르다. 질감이 부드럽고 지방이 약간 있는 부위는 그릴이나 차콜을 이용해 직화로 굽는 게 좋다. 기름기가 적은 부위는 팬에 오일을 살짝 두른 뒤 조리해야 맛이 배가된다. 오일은 고기를 부드럽게 하고 숙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드라이에이징이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몇몇 전문점이 생겼고 새로운 음식 문화를 갈구하는 미식가들에 의해 맛이 알려졌다. 드라이에이징은 소고기뿐 아니라 돼지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돼지, 오리, 닭 등은 소에 비해 근육이 쉽게 상해 조심스럽게 드라이에이징을 시도해야 한다.



정종우 기자 jjwto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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