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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다시 찾아본 ‘사회주의 계산 논쟁’

입력 2019-09-3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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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복거일(소설가)

1919년 노이라트(Otto Neurath)는 ‘전쟁경제를 통해서 현물경제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1919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 러시아의 경제 체제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때였다.

노이라트의 주장에 대해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이내 반론을 폈다. 미제스는 전쟁 수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 받는 ‘전쟁 사회주의(war socialism)’가 실은 전쟁 수행을 방해했고 “국가주의(statism)의 필연적 붕괴를 피하려 애썼지만 붕괴를 재촉했을 따름이다”라는 주장을 폈다.

1920년에 발표된 ‘사회주의 연방에서의 경제 계산(Economic Calculation in the Socialist Commonwealth)’에서 미제스는 사회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시장에선 수많은 개인들과 기업들이 끊임없이 방대한 정보를 처리해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룬다. 정부는 그런 정보 처리 능력이 없다. 그래서 사회주의 체제는 정부가 수집한 아주 적은 정보들로 거칠게 계산해서 만든 허술한 계획에 의지하게 된다.

“자유 시장이 없는 곳엔, 가격 기구가 없다. 가격 기구가 없으면, 경제적 계산이 없다.”고 미제서는 명쾌하게 설명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지만, 당시엔 아직 사회주의의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한 때였다. 미제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회주의 체제에 사망 진단을 내린 것이다.

20세기 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논쟁들 가운데 하나인 ‘사회주의 계산 논쟁(Socialist Calculation Debate)’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로 빈, 베를린 및 프라하 같은 독일어권에서 이루어지던 논쟁은 오스트리아에서 나치가 득세한 뒤 주로 영어권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유주의 진영은 영국에 정착한 하이에크(Friedrich A. von Hayek)가 대표하게 되었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가 정보에 관한 그른 가정에 바탕을 두었음을 지적했다. 사회 운영에 필요한 정보는 거의 다 개인들이 지녔고 정부가 이내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그런 정보를 모으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는데다가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므로, 정부는 늘 빈약하고 묵은 정보만으로 경제를 운영하게 된다.

아울러, 하이에크는 시장이 지식을 생산해내는 기구임을 지적했다. 자유로운 시장에선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려고 경쟁한다. 그래서 보다 나은 제품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시장은 가장 나은 제품들과 생산 공정 및 유통 경로를 찾아낸다. 그래서 하이에크는 경쟁을 ‘발견적 절차(discovery procedure)’라고 불렀다.

이런 발견적 절차를 지녔으므로, 시장은 빠르게 진화하고 사회도 발전한다. 시장이 본질적으로 정보 처리 기구이고 시장은 궁극적으로 지식을 생산해낸다. 진화가 환경에 맞는 지식의 습득이라는 깨달음이 생물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기 전에 하이에크는 진화의 본질을 깨달은 것이다.

논쟁이 진행되자, 사회주의자들도 정보 처리의 중요성과 시장의 효율적 정보처리 능력을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정부가 시장과 비슷한 기구를 만들어 정보를 처리하는 ‘시장 사회주의(market socialism)’를 제시했다.

하이에크의 반응은 간명했다. 시장 사회주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의사 경쟁(pseudo-competition)’이어서, 시장이 이미 존재하는데 ‘짝퉁 시장’을 일부러 만드는 것이다. 그것으로 ‘사회주의 계산 논쟁’은 실질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1990년대에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미제스의 예언이 증명되었다.

20세기에 나온 과학 지식의 발전에서 근본적 중요성이 부각된 개념들은 ‘정보’와 ‘진화’이다. 생명 현상은 정보 처리라는 깨달음에서 우주의 근본적 요소는 정보라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정보가 우주의 근본이라는 견해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생명체들만이 아니라 우주 자체도, 진화한다는 사실이 점점 널리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 두 개념들은 근본적 수준에서 연결된다. 진화는 환경에 적절한 정보들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정보도 진화의 과정을 거쳐 생성된다.

‘사회주의 계산 논쟁’을 살피면,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주장들은 정보와 진화의 근본적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인식에 바탕을 두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보 처리 능력에서의 우열이 시장경제와 명령경제의 성패를 결정하리라는 미제스의 단언과 정보의 존재 형태에 대한 하이에크의 통찰은 처음부터 그 논쟁의 결말을 예고한 셈이다. 그리고 ‘경쟁이 발견적 절차’라는 하이에크의 통찰은 진화가 본질적으로 지식의 습득이라는 사실을 가리킨 것이다. 이 점에서 하이에크는 당시 진화 생물학자들보다 앞섰다.

되살아난 사회주의가 점점 기세를 떨치는 지금, 꼭 한 세기 전에 시작된 ‘사회주의 계산 논쟁’을 다시 찾아보는 것은 뜻이 깊다. 정보와 진화의 근본적 중요성을 잊으면, 인류는 다시 그른 이념과 체제를 추구해서 혼란과 비참을 맞볼 것이다. .

다른 편으로는,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서, 이런 구도에 변화가 나올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개인들의 행태에 관한 정보를 집적한 ‘거대 자료(Big Data)’를 처리해서, 당사자들도 모르는 행태적 정보들이 생산된다. 그런 정보들을 ‘채굴한’ 기업들은 개인들의 행태를 미리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주로 대기업들이 이런 능력을 갖추었지만, 정부가 이런 정보들을 취합하면, 사회에 관한 전반적 예측이 점점 정교해지고 정책적 대응도 점점 정교해질 것이다.

이런 사정은 미제스가 제기한 전체주의와 명령경제에 대한 반론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제 자유주의자들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불러온 이런 가능성과 거기 담긴 함의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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