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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헌법조차 무시하는 난폭한 부동산대책

입력 2019-12-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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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김정호(Creator, 김정호의 경제TV: 서강대 겸임교수)

12월 16일, 부동산종합대책이 또 나왔다. 이 정부 들어서 열여덟 번째 대책이라고 한다. 그 많은 대책들의 내용을 기억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아예 몇 번째인지 세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내용을 간략히 따져보자. 시가 15억 원 주택은 대출금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과표에 따라 0.1-0.8% 인상, 공시지가 반영률 인상,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거의 서울 전역으로 확대 등이다. 이 들 중에서 시가 15억 원 이상 주택 대출 전면 금지가 가장 강력하고 충격적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 대책을 발표한다며 TV에 나와 “불로소득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경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의 이런 모습에서 문재인 정권의 심리 상태를 엿보았다. 마치 주먹 좀 쓰는 아이가 약한 애를 상대로 이러는 것 같았다. “까불지 마. 너 더 까불면 가만히 안 둘거야!” 집 안 팔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 분명했다.

15억 원 이상의 주택은 대출 전면금지, 집값 좀 오르는 지역은 모두 분양가상한제 적용…. 이런 식의 정책은 너무나 난폭해서 자유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나라라면 용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 정책에 대해서 강력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은 이미 자유 시장 경제를 포기해 버렸음이 분명하다. 부동산 정책에서는 시장경제 원리를 지키라는 주장이 너무나 생뚱맞아서 그런 목소리를 내기조차 민망하다.

불완전하기는 해도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시장경제와 재산권을 지켜주는 것은 헌법이다. 그런데 부동산대책들은 그 불완전한 헌법조차 무시해 버린다. 이번 12.16 대책도 헌법을 어기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 기준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과잉금지의 원칙이다. 법령 또는 정책이 추구하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더라도 수단이 적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수단이 목적에 맞지 않거나 대책이 과도하면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일종의 비용편익 분석을 하는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대출금지 정책, 특히 15억 원 이상의 주택에 대한 대출 금지가 적절한지 따져보자. 고가 주택 가격이 선별적으로 더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이 대책이 터무니없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수요 측면부터 살펴보자.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가 다른 주택들보다 더 많이 느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득이 늘기 때문에 고급 주거지에 대한 수요도 증가한다. 소득 증가와 함께 벤츠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늘 듯이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자연스럽다.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또 하나 요인은 소위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다. 다주택 보유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니까 부동산 보유 수요가 똘똘한 한 채, 즉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로 전환되고 있다. 이처럼 수요 측면에서는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데 공급 측면에서는 고가 주택의 공급을 계속 막아왔다. 공급 정책의 거의 모든 힘을 ‘서민 주택’ 공급을 늘리는 데에 쏟아 부었고 고가 주택의 공급은 차단해왔다. 강남의 재건축도 규제하거나 마지못해 허용했다. 신도시를 통해 공급되는 택지들은 모두 ‘서민 주택’용으로 지어진다.

분양가 상한제는 그나마 이뤄지던 강남 재건축을 통한 고가 주택 공급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는 느는데 공급은 줄어드니 얼마 안 되는 기존 고가 주택의 가격이 더욱 뛰게 되었다. 결국 고가 주택만 골라서 가격이 오르는 현상은 정상적 수요 공급의 작동을 가로 막는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책도 고급 주거지의 공급을 늘리고 다주택에 대한 규제를 풀어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 문재인 정부는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을 금지해 버렸다. 고가 주택 사는 것을 범죄인 듯 간주해버렸다. 그야말로 땜질식 처방이고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이다.

이 조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당장 충격을 받는 것은 시가 15억 원 이상 주택을 사려고 마음먹고 있던 소비자들일 것이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사려 했던 사람이라면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올 듯하다. 첫째 아예 집 구입을 포기하고 현재 집에 눌러 살기로 결정할 수 있다. 둘째 15억 원 미만 집을 구매하는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매 시장의 반응도 양분화될 것 같다. 15억 원 넘는 집은 가격 상승이 멈추거나 내릴 것이다. 하지만 보유 수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소위 ‘풍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시가 15억 원 미만이지만 대출 규제를 받지 않는 차상위 가격대의 주택은 오히려 값이 오를 것이다. 전세 가격도 상승 압박을 받을 것이다. 제법 큰 주택의 전세는 가격이 상당히 오를 것 같다. 15억 원 이상 주택을 구입하려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전세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치로 인해서 반사 이익을 얻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큰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15억 원 이상 주택을 상대적으로 싼값에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현금 부자들에게 최고의 기회를 가져다 준 정책인 셈이다. 조금만 길게 보면 15억 원 이상 고가 주택의 가격도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다. 대출 금지라는 난폭한 정책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겠는가. 머지않아 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분양가 상한제 확대로 웬만한 동네는 다 묶어 버렸으니 고가 주택의 공급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고가 주택의 가격은 더욱 오를 것이다. 이래저래 이 대책은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임이 분명하다.

한편 이 조치는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 조항을 위배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헌법 제2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로 정한다고 한 것은 국민의 재산권을 공무원 마음대로 빼앗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가 15억 원 이상 주택의 대출금지 같은 조치는 심각한 재산권 침해임에도 불구하고 법률적 근거가 분명치 않다.

행정부가 헌법상의 재산권 조항을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재산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안국법률사무소의 정희찬 변호사가 이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만약 이 헌법소원이 패소한다면, 즉 이 정책을 합헌으로 판결한다면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시장경제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격이 될 것이다.

착한 얼굴을 하고 출발한 이 정부가 갈수록 난폭해지고 있다. 적폐청산으로 그 폭력성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정책들까지 난폭해졌다. 나약한 글로 푸념이나 늘어놓고 있는 나의 처지가 안타깝다.

 

김정호(Creator, 김정호의 경제TV: 서강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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