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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aly 인터뷰] 연극 ‘킬롤로지’ 이석준·이율·장율 “지금 이 시기에 꼭 해야 할 이야기”

2018년 영국 올리비에 어워드 작품상 수상작으로 2017년 영국 로얄코트에서 초연된 게리 오웬 작 '킬롤로지'
알런 이석준·김수현, 폴 이율·김승대, 데이비 장율·이주승 세 사람이 독백으로 끌어가는 이야기

입력 2018-04-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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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배우 이율,장율,이석준 인터뷰
연극 ‘킬롤로지’ 폴 역의 이율(왼쪽부터), 데이비 장율, 알란 이석준(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전체가 ‘트리거’이고 시간도 뒤죽박죽돼 있어요. 독백 형식이고….”

26일 개막을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연극 ‘킬롤로지’(4월 26~7월 22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의 알런 이석준은 극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연극 ‘킬롤로지’는 2018년 영국 올리비에 어워드 작품상 수상작으로 2017년 영국 로얄 코트에서 초연됐다. 영국에서 주목받는 게리 오웬 작품으로 그는 개인의 삶을 관통해 사회 시스템 문제를 파고드는 작가다.

‘킬롤로지’ 역시 알런(이석준·김수현), 폴(이율·김승대), 데이비(장율·이주승) 세 사람이 독백으로 이끌어 가는 작품으로 미디어 폭력, 학교 폭력, 부모의 역할 등 다양한 이야기를 부자 관계에 녹여내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까지 확장시킨다.


◇각자의 독백, 복잡다단한 메시지…최신 아이폰과 8비트 컴퓨터 사이
 

배우 이석준 인터뷰3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이석준(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작품에서 담고 싶어 하는 게 너무 많아요. 가족에 대한 이야기, 부성에 대한 결핍, 미디어 폭력을 비롯한 요즘 사회 이슈가 되는 부분들이 교묘하게 얽혀 있죠. 그 사이에서 성장하는 아이들과 사람들 이야기예요. 대본을 보고 깜짝 놀란 건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까지 건드려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하는 경우들이죠.”

그래서 “쉽지 않다”는 이석준은 극 중 살인게임 ‘킬롤로지’ 개발자인 폴과 아버지의 관계를 예로 들었다. 폴은 부유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지극한 관심 아래 성장했다.

“굉장히 좋은 아빠를 뒀다 싶어요. 그런데 폴은 그 아빠에게서 결여를 느껴요. 올바른 방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거죠. 표면적으로는 저 정도면 감사하게 살아야지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랑을 주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다,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봐줘야 한다 등의 문제를 은연 중에 깔아요. 드러내 주질 않으니 그걸 찾아야 하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거든요.”

배우들이 극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하기에 앞서 한숨에 가까운 심호흡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빠와 아들, 엄마와 아들, 남편과 아내 등 관계에서 스쳐 지나가는 말들 속에 많은 것들이 내포돼 있어요. 사회와의 관계, 아이들이 자라는 데 무엇을 줘야하는지, 무엇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만들어 고통받는지 등이 전반적으로 녹아있죠. 예를 들어 ‘너의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았는지 알아? ’라는 말 한마디를 던졌는데 사람마다 ‘서브텍스트’(대사로 표현되지 않은 생각, 느낌, 판단 등)가 생겨나고 부딪히게 되죠.”

‘킬롤로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이석준은 “관계에 직면하기까지 쌓아야 하고 주고받아야 할 서브텍스트가 너무 많다”며 “실제로 감정을 넣어 읽다보니 아무 것도 모르고 읽었을 때보다 두배의 시간이 걸렸다. 하고 싶은 얘기나 던지고 싶은 감정이 다 전달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무엇을 덜어내고 첨가할지, 쉽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우 장율 인터뷰4
연극 ‘킬롤로지’ 데비이 역의 장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홈버튼 없는 아이폰 같아요. 정말 많은 메시지와 이야기를 ‘독백’이라는 단순한 형식으로 풀어내죠. 아이폰 안에 홈버튼도 없애버릴 수 있는 매우 복잡한 기술과 메커니즘이 들었기 때문에 단순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요.”

극의 어려움을 아이폰에 비유한 이석준은 “저희(배우들)의 기술력은 초창기 8비트 컴퓨터인데 대본은 홈버튼 없는 아이폰인 셈”이라고 토로했다.

“요즘은 독백에 대한 공연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킬롤로지’를 준비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얘기를 꺼내는 데 독백만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데이비 역의 장율은 대부분 독백으로 진행되는 연극 ‘킬롤로지’에 대해 설명하는 말끝에 “그래서 진짜 열심히 하고 있다”고 각오를 보탠다. 독백 형식, 세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 속에서 복잡한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배우 이율 인터뷰6
연극 ‘킬롤로지’ 폴 역의 이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어렵다고 했지만 사실 단순한 내용이에요. 어려운 말도 크게 없죠. 시작부터 잘 집중해서 보시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실 거예요.”

이율의 설명에 장율이 “사실은 단순한데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작품”이라고 부연한다.


◇가장 큰 고민, 이구동성 “무대 위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처음 대본을 받고 첫 부분을 읽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두장 분량을 읽는 데도 너무 어렵더라고요. 세명의 대사를 독백으로 얘기하는데 따옴표가 없어요. 누구의 말을 전하는 거라면 인용하는 따옴표나 ‘누가 말했죠’라는 대사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요. 대본을 읽으면서 누가 한 얘기인지 그 구분 자체가 어려웠죠.”

이석준이 호소하는 어려움에 한국 대본은 따옴표를 첨가하고 ‘누가 말했다’를 계획하는 등 구어체로 바꾸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어렵게 첫 대사를 읽었는데 (대본의) 20페이지까지 제(알란)가 안나와요. 무대 위에 있어야 하는데…저는 무대 위에서 단 한번도 이렇게 버텨본 적이 없어요. 앙상블 때도 엄청 뛰어다녔지 가만히 있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초반 40분 동안 뭘 할지, 어디 서 있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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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이석준(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첫 독백을 하자마자 40분 동안 무대 위에서 대사 없이 머물러야 하는 알런 역의 이석준은 “책을 읽어도 백과사전은 통독할 것 같고 난을 쳐도 일취월장할 것 같은데 피젯 스피너(Fidget Spinner)라도 돌려야 하나…완전 열어놓고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외국에서 했던 공연도 가이드 자료가 아무 것도 없어요. 외국에서 공연한 지 얼마 안되기도 했지만 완성품을 올린 것 같지도 않아요. 실험을 해본 느낌이랄까요. 저희는 그것보다 잘할 생각인데…문제는 공간도, 시간도 특정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인물들만 있을 뿐이죠.” 


이렇게 설명한 이석준은 “잘못하면 어렵고 난해한 작품이 나올 거고 잘 되면 단순한 형식으로 전하는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진짜 미니멀리즘 극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연극 '킬롤로지' 배우 이율,장율,이석준 인터뷰15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이석준(왼쪽부터) 폴 이율, 데이비 장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저 역시 (무대 위에) 어떻게 존재해야하는지가 제일 걱정이에요. 퇴장이 없기 때문에 다른 역할이 독백을 할 때 제가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감정, 동선, 대사, 타이밍, 상황 등 극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다른 역할이 넘겨주는 생뚱맞은 비즈니스를 받아서 전혀 다른 비즈니스를 연결해야 하다 보니 쉽지가 않더라고요.”

폴로 무대에 오르는 이율의 말에 장율은 “존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알란과 폴이 더 어려운 것 같다”며 “데이비는 그나마 이야기 흐름대로 얘기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제일 어려운 건 감정이 끊긴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알런은 자신이 아들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며 미쳐 발버둥을 쳐요. 발버둥은 잘 쳐지는데 그 감정을 전혀 생뚱맞은 시기와 감정의 다른 인물에게 넘겨줘야 해요. 그렇게 넘겨주고 나서 저는 계속 발버둥을 쳐야하는 건지 아니면 하던 걸 멈추고 다음을 준비해야하는 건지…마치 영화나 드라마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다음 편에 계속’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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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폴 역의 이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이렇게 호소하며 “막을 내려야 하나, 한 사람만 암전? 무대를 돌리든 밑으로 꺼지든 해야한다”고 아우성이면서도 이석준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결정적인 감정의 순간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어 “감정의 여운을 남기거나 마무리 짓는 게 없다. 감정도 단절되고 시간대로 연결돼 있지도 않는다. 단절된 감정 간의 연결고리, 이 대사를 먼저 하는 이유 등을 열심히 찾고 있다”고 덧붙인 이석준에 이율 역시 감정의 단절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감정이 툭툭 끊기니까 제 안에서 어떻게 호흡을 가져가야할지 모르겠어요. 감정에 너무 빠져서 취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겉만 훑을 수도 없고…머리를 싸매고 있어요.”


◇ 키워드. 게임 ‘킬롤로지’와 ‘폭력성’ “잔인함과 고통 그 뒤의 기막힌 이야기” 

 

배우 장율 인터뷰12
연극 ‘킬롤로지’ 데비이 역의 장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대본은 늘 어렵지만 ‘킬롤로지’는 진짜 어려웠어요. 독백으로 이뤄져 있는 텍스트다 보니 적응시간이 좀 걸렸죠. 그러다 어느 순간 세명의 인물 이야기가 맞닿아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야기의 흐름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 느낌을 받으면서부터는 편하게 읽어나간 것 같아요.”

이렇게 전한 장율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며 “폭력이 어떻게 시작되고 폭력의 끝은 어디인지를 들여다보는 작품 같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마다 어떤 폭력성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사람들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데이비를 준비하면서 제가 당했던 폭력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물리적 폭력 뿐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폭력은 가해져요. 학원에 가기 싫은 아이를 8~10개 학원으로 돌리는 건 굉장한 폭력입니다. 폭력이에요. 어려도 하고 싶은 게 있는 하나의 인격체잖아요. 그렇게 제가 받았던 폭력에 대한 디테일한 감각들을 불러일으켜서 데이비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죠.”

그리곤 “우리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해주는 작품 같다”고 덧붙인 장율의 설명에 이석준은 “데이비는 누구 시점에서는 죽었고 다른 누군가의 시점에서는 살아 있다. 시점이 다 달라서 관객들이 시간을 조합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극 중 인물들과 관계들은 말이 안될 정도로 심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제가 자제력을 잃었던 건 폴의 아버지였어요. 옳다고 믿고 아들을 훈육했던 무언가가 이 아이에게는 옳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뜨끔했죠. 들어주는 척만 했지 내 것을 강요한 거잖아요. 요즘 아이들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배우 이석준 인터뷰12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이석준(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폭력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 이석준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바른 길을 주입시키려고 한다. 이에 아이들은 인정욕구가 강해진다”며 “인정욕구, 부성·모성의 결여 등을 느끼는 아이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부연했다.

장율 역시 “어떤 기계로 생각하고 공부 머신으로 만드는 것도 폭력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작품 안의 폭력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율은 자신의 삶이 “너무 부자고 똑똑한 폴과는 정반대였다”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학교 다닐 때는 아버지·어머니의 기대에 좀 많이 어긋났었던 것 같아요. 정확하게 방향성을 제시해주셨는데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 싫었어요. 제가 정하고 싶었거든요. 제 삶이니까요. 폴도 그랬던 것 같아요.”


◇키워드. 아빠와 아들, 단순한 듯 복잡한
 

배우 이율 인터뷰9
연극 ‘킬롤로지’ 폴 역의 이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처음엔 아마 게임이나 미디어 폭력에 초점이 맞춰질 거예요. 게임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 이야기처럼 보여지거든요. 저 역시 게임 중심으로 파다 보니 게임 외적인 얘기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왜 이 아이가 이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게임을 화두로 하지만 그런 게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 사람에 대한 이야기죠.”

게임과 더불어 세 사람을 하나로 묶는 화두 중 하나는 부자관계에서의 결핍이다. 이율은 이에 대해 “폴 역시 잘 나가는 CEO이자 세계적인 게임개발자지만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너무 완벽해요. 도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이라 어려서부터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인물이죠. 폴 스스로는 독특하고 싶고 일반적이기 보다는 튀고 싶은 아이였는데 갇혀서 성장했어요. 그에 대한 반항심으로 조금씩 변하면서 ‘킬롤로지’라는 잔인한 게임을 만든 거죠.”

이율의 말에 이석준은 “게임 묘사가 굉장히 잔인하다. 이 아이(데이비)가 겪게 되는 삶의 과정이 나오는데 들으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잔인하다. 그런데 그걸 풀어내는 뒤의 이야기가 너무 좋다”고, 장율은 “고통 뒤에 질문이 던져진다”고 말을 보탰다.

알런처럼 아이를 잃고 좌충우돌하며 폭주하는 아빠들은 영상 콘텐츠,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이에 이석준은 “저만의 아빠를 만들고 싶어서 고민 중”이라며 “어떻게 보면 평범하면서도 감정적인 인물이라 머리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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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데비이 역의 장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알런은 부족한 아빠예요. 이혼으로 아이를 놓쳤고 편모 슬하에서 자라게 만들었어요. 저소득층이다 보니 자기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9살 이후 아들을 한번도 찾지 않은 그런 아빠죠. 읽히기 쉽고 어디서 볼 법한 아빠들이 자꾸 나오는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에요.”

이렇게 털어놓은 이석준은 “부자 관계에서의 결여를 굉장히 섬세하게, 손댈 수 없을 만큼 묘사하고 있다. 이 작가가 실제로 아빠랑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디테일하다”고 전했다.

“데이비는 어디든 있을 법한 이혼가정의 아이고 폴은 부유한 집에서 잘 자랐어요. 그런데도 둘 다 결여와 결핍이 생기죠. 아이들에게 그런 환경이 생기지 않게 해야겠지만 어쩔 수 없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게 돼요.”


◇키워드. 관계 “문제의 본질을 찾아서”

연극 '킬롤로지' 배우 이율,장율,이석준 인터뷰18
연극 ‘킬롤로지’ 폴 역의 이율(왼쪽부터), 데이비 장율, 알란 이석준(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맨 처음엔 드러나지 않다가 중반부터 슥슥 알게 돼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알런·데이비·폴 관계에 대한 장율의 설명에 이석준이 “그 관계를 찾아가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거든다. 그리곤 “데이비는 가정문제로 시작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변하는 인물이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나빠지기도, 좋아지기도 한다”며 “데이비는 아빠 뿐 아니라 마주치는 인물들이 다 중요하다. 데이비에겐 소통의 이야기이고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다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저(데이비)는 아버지의 부재가 있어요. 부모님이 어려서 이혼하면서 아빠를 거의 못 만나고 살아가죠. 어려서 아버지가 딱 한번 생일선물이라고 강아지 메이시를 주는데 유일한 친구예요. 아빠의 터치가 필요한 시기에 부재한 상태로 지내면서 일련의 사건들이 생겨요. 폭력 앞에서 강아지를 포기하고 죄책감 등을 가지게 되면서 엇나가기 시작하죠.”

데이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장율은 폴에 대해 “나(데이비)도 즐겼던 유명한 게임을 만든 개발자 이상은 아닌,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 가깝다. 게임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순간도 분명 있었겠지만 빠져 지낸 아이는 아닌 것 같다”며 “죽는 것도 게임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게임 속 형태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배우 이율 인터뷰3
연극 ‘킬롤로지’ 폴 역의 이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얽히면 안되는 인물들이 엮인 거죠.”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알런과 데이비, 폴이 얽히고설키면서 형성해 가는 관계에 대해 이석준은 이렇게 표현했다.

“폴과는 아들 데이비가 죽으면서 관계가 생겨요. (아들과의) 관계가 잘못됨을 통해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이 사람(폴)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 작품의 주제이고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죠.”

이율은 폴의 입장에서 알란이든 데이비든 “그냥 남”이라며 “폴에게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제가 만든 게임을 알고 있던 아이가 죽임을 당하고 복수하려는 아버지지만 저랑은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요. 동떨어진, 그냥 사람들이죠. 그런데 아들의 복수를 한다고 와서 난리를 치는 순간 폴에게 알란은 어이 없는 침입자죠.”

이석준은 알란에 대해 “저 살기에 바쁘고 지쳐서 아들 데이비를 돌보지 못했던 아빠”라며 “그런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폴이라고 생각하는 아빠”라고 설명했다 .

“이 작품이 단순하려면 피해자와 가해자 얘기를 해야하죠. 하지만 이 작품은 가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영향을 받은 사람을 찾아가요. 작가가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극단적인 불행이 닥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무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이유가 있다고 얘기하는 거죠.”

이렇게 말한 이석준은 “예를 들어 한쪽에서는 전쟁이 일어나 고통받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전쟁을 오락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무심코 한 어떤 일이 어느 나라에선 굉장히 심각한 일이거나 우리가 낭비하는 무언가가 어딘가에선 고통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극 '킬롤로지' 배우 이율,장율,이석준 인터뷰13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이석준(왼쪽부터) 폴 이율, 데이비 장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그래서 ‘킬롤로지’는 전반적인 인식, ‘이 정도면’ 하고 지나갔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폴은 ‘이 정도가 왜’라고 하지만 저(알란)는 ‘이 정도니까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얘기하는 거죠. 사실 그것도 (이 작품 메시지의) 전체는 아니에요. 흐름대로 따라가다 보면 깊은 내면에 있는 가족들과의 관계, 개인의 결여들이 묶여 있거든요. 표면적으로는 게임, 미디어 폭력에 의해 이런 사태가 벌여졌다고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 보면 진짜 시작은 더 밑에 있을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죠. 지금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파고 파고 또 파고 들어가게 결여된 인물들을 배치하고 있어요.”

이석준은 이에 대해 서로에게 “얘가 악당” “형도 악당” “이 형도 악당”이라고 장난을 쳤던 순간들을 예로 들어 “폴도, 알란도, 데이비도 다 악당 같다. 셋 다 악당 짓을 했고 서로에게는 가해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장율은 “데이비 역시 가해자이자 악당”이라고 말을 보탰다.

“메이시(강아지)에게도 가해자고 제(데이비)가 분에 못이겨 선생님들에게 하는 행동도 그렇거든요. 어린 나이에 억압과 폭력 안에서 끙끙대다가 말 못한 화를 저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표출하게 되는 거죠.”


◇이 한 마디 “내가 손잡아 줬더라면 될 수 있었던 그 아이의 모습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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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데비이 역의 장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대본을 읽으면서 느낀 이 작품의 매력은 독백에 익숙해진다 싶을 때 폴과 알란이 얘기하는 장면이 들어와요. 데이비가 일련의 사건을 다 겪은 후에 (관객들이) 알란이 데이비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알란과 폴이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쯤 데이비도 아빠를 만나요.”

이렇게 전한 데이비 역의 장율은 “그 만나는 장면이 제일 고민”이라며 “어떻게 아빠를 만나야할지, 감정을 연결시키는 게 되게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첫 대사가 제일 어려워요. ‘아빠 아직도 차에 설탕 세 스푼 넣어요?’라는 대사인데 어떻게 처리하면서 들어갈지 고민 중이죠. 극 흐름에서 중요한 장면이 될 것 같거든요.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 있었는데 사라진 대사가 있어요. ‘도대체 내가 어디에 있는건지 모르겠어요’라는 좀 감성적인 이 대사 한줄이 데이비를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대사처럼 감성적인 데이비와 잘 연결되게끔 말하려니 고민이 많아졌어요.”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알란 역의 이석준은 “내가 손잡아 줬더라면 될 수 있었던 그 아이의 모습을 꿈꿉니다”를 가장 인상적인 대사로 꼽았다. 이는 감정의 단절, 뒤죽박죽된 시간으로 진행되는 통에 관객이 느낄지도 모를 혼란을 불식시키는 대사이기도 하다.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고민 중 “피하고 싶지만 이 시대에 꼭 들어야 할 이야기”

배우 이석준 인터뷰9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이석준(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피하고 싶지만 이 시대에 꼭 들어야할 얘기라고 생각해요. 최근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다양한 운동들처럼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 지금도 애써 지나가고 있는 일들이죠.”

‘킬롤로지’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 이석준은 “미국에서는 총기난사가, 어느 나라에서는 전쟁이, 또 어딘가에서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들이 당연한 것처럼 혹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얘기들한다”고 부연했다. 할리우드에서 시작해 한국으로까지 확산된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 대한항공 조현민 여객마케팅부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불거진 재벌총수 일가의 상습적인 갑질 행각 등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지나왔던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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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폴 역의 이율(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그 모든 것들이 어중간해진 느낌이에요. 해결하지도, 들어올리지도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상태거든요. 해결할 것처럼 굉장히 달아올랐다가도 정체돼 어느 순간에 묶여 있는 것들이 많아요. 미디어 폭력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전부 그랬던 것 같아요. 그걸 드러내야하는 것이 연극이고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해요. ‘킬롤로지’는 그래서 이 시기에 던져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곤 “관객이 극장 문을 열고 나갈 때 고통스럽거나 취향이 아니라도 혹은 좋아서 할 얘기가 많은 작품이면 좋겠다”며 “너무 고통스러워 보기 싫다와 고통스러워도 들어야 한다는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만으로도 이 작품은 본연의 역할을 다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고 쓰여진 작품 같다”고 덧붙였다. 이석준의 부연에 장율은 “고통, 분노의 시작이 어디인지에 대한 이야기 같다”고 말을 보탰다.  

 

“끝까지 보시면 (고통과 분노의 시작이) 어디쯤 있을 거라고 작품이 얘기를 해줘요. 보물찾기처럼요. 어디쯤 있을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면서 극이 끝나거든요. 그걸 관객들이 (집으로) 돌아가시면서 찾아야 하는 훌륭한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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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폴 역의 이율(왼쪽부터), 데이비 장율, 알란 이석준(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장율의 설명에 이석준은 “어떤 내용인가를 설명하면 코끼리 코 만지듯 어렵고 말이 길어지는데 한번 보면 가슴으로 확 올 것”이라며 “스토리 자체가 그렇다”고 전했다.

“가족애, 미디어 폭력 등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게 아니라 얽히고설킨 얘기가 우리(알런·데이비·폴)거든요. 우리를 보면서 가슴을 치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대본을 읽으면서 채 분석되지 않고도 가슴을 치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래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처럼요. 제가 느꼈던 순수한 날 것의 그 무언가가 관객들도 툭 치기를 바라요. 저희는 그걸 따로 독백을 하면서도 한목소리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마지막 공연까지도 얘기하고 또 얘기하게 될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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