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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식탁을 지배한 종교와 음식 이야기 ‘성스러운 한끼’

[BOOK] 종교로 엮은 세계 음식문화 열전 '성스러운 한끼'

입력 2020-06-02 17:00 | 신문게재 2020-06-0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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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주제로 한 책은 TV의 먹방 예능이나 ‘먹방 유튜버’ 만큼 자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각 종교의 특성에서 유래한 음식을 다루는 콘텐츠는 흔치 않다. 

 

동서양의 음식 문화는 각 나라의 종교가 입맛을 지배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는 중동에서 탄생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서구 식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고 한중일의 불교문화는 각 나라의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독특한 음식문화로 발전해왔다. 이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를 통해 식문화가 태동하고 성장해왔다.


신간 ‘성스러운 한끼’는 이처럼 종교에 얽힌 39편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에 정성스럽게 차려냈다. 현직 일간지 기자인 저자가 직접 발로 뛰고 맛보고 찾아낸 자료가 담백한 필체로 펼쳐진다.

기독교 문화는 중세 서구사회 뿐 아니라 미국과 나아가 동아시아의 식문화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성찬식 때 포도주를 마시지만 개신교에서는 포도즙으로 대체한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를 한국에 처음 천주교, 개신교가 전파되던 시기, 대상 등 역사를 통해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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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한 끼’| 박경은 지음 | 서해문집 | 1만6,000원 |사진제공=서해문집

 

한국에 처음 전파된 천주교는 양반 대상이었지만 구한말, 조선 땅에 도착한 감리교 선교사는 비교적 청교도 정신이 엄격한데다 당시 조선의 서민들이 아편을 제외한 모든 유흥을 즐기는 모습에 ‘금주’를 강조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인도 즐겨먹는 일본의 튀김요리 ‘덴푸라’ 역시 기독교 문화의 산물이다. 포르투갈 선교사가 일본에 가톨릭을 전하던 16세기는 ‘금육’하는 가톨릭의 ‘사계재일’ 전통이 지켜지던 시기다. 이 기간 고기를 먹지 못한 선교사가 생선을 튀겨먹으면서 이같은 관습이 일본 가톨릭 신도들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포르투갈식 튀김이 두꺼운 튀김옷을 입히는 것과 달리 덴푸라는 속이 보일만큼 얇게 튀김옷을 입혀 바삭바삭한 예술작품으로 변형돼 지금까지 세계인의 입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있다.

현대인의 아침식사로 널리 알려진 콘플레이크는 미국 청교도들이 금욕을 강조하다 탄생한 음식이다. 19세기 미국 뉴저지의 장로교 목사인 그레이엄이 건강에 좋으면서 성욕 등 육체적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만든 음식인 ‘그레이엄 크래커’가 시초다. 이는 그레이엄 목사를 신봉한 의학박사 존 켈로그가 건강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만든 ‘콘플레이크’로 발전했고 존의 동생 윌이 대중도 즐겨먹을 수 있는 가공 식품으로 발전시키면서 시리얼의 대명사가 됐다.

저자가 직접 체험한 이국의 음식문화는 침을 삼키게 한다.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금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몰 뒤에는 성대한 만찬인 이프타르를 즐길 수 있다. 두바이에서는 아예 ‘이프타르 뷔페’가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저자는 터키문화원을 통해 직접 이프타르를 체험하며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꼽히는 터키 정찬을 맛봤다. 사브르, 차지키, 훈카르 베엔 등 이름조차 낯선 음식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세밀한 묘사로 펼쳐지며 절로 침이 고이게 만든다.

한국의 유대교 랍비 가정에서 체험한 유대인의 식문화 ‘코셰르’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코셰르 식품은 유대인의 율법에 기인한 카슈르트에 따라 만들어지는 음식이다. 저자가 직접 찾은 랍비 가정은 안식일의 전통 빵 할라, 감자전과 비슷한 레비바 등과 함께 ‘코셰르 김치’를 내놓았다. 이는 제조나 생산과정에서 랍비 혹은 그에 준하는 엄격한 인증절차를 걸쳐 만들어진다. 엄격히 그들만의 율법을 지키는 랍비 가정이 한국인의 김치를 즐기는 모습은 생경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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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 중인 정관스님(사진=화면캡처)

 

한국이 낳은 가장 유명한 셰프는 누구일까. 정답은 백양사 천진암 주지인 정관스님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을 통해 세계적인 셰프 반열에 오른 정관스님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의 요리인들이 백양사를 찾는다. 백양사에서 직접 정관스님과 푸른 눈의 요리제자들을 만난 저자는 “속세에서 날고 뛰는 요리사들도 특별한 계량법 없이 그때 그때 자연의 이치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지정스님의 요리를 통해 비법이 아닌 요리인의 자세를 배워간다”고 적었다.

저자가 직접 만난 지정환 신부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취재를 통해 지정환 신부를 만났던 저자는 신부 선종 한달 전, 자신을 언급했다는 이야기에 한달음에 임실로 내려갔다. 저자는 인터뷰 당시 “지난 60년간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묻자 “지금 이순간”이라고 답했던 지정환 신부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만 날이냐’고 살았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숭고한 음식이 때로 배척과 혐오를 낳는 낯섦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서로의 낯섦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는 낯선 질병으로 세계 곳곳에서 혐오와 오해가 짙어지는 지금, 이 책이 낯선 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위한 작은 발판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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