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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코로나블루’에도 어김없이 나에게 전하는 인사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BOOK] 삶의 희망 찾으며 깨닫는 나의 소중함, 세상의 모든 앤에게...너라서 참 다행이야

입력 2020-06-09 17:00 | 신문게재 2020-06-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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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요즘 너를 위해서 뭘 해주니?”

지난달 막을 내린 신원호 사단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신경외과 부교수 채송화(전미도)는 병원일과 육아, 후배들 및 지인들의 카운셀링으로 자신의 온 시간을 보내는 99학번 의대동기 간담췌외과 조교수 이익준(조정석)에게 이렇게 묻는다.

신간 에세이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을 발간한 백영옥 작가는 드라마의 이 장면을 언급하며 “힘들어하는 친구나 자존감이 낮아진 내 아이에게 우리가 해주었던 바로 ‘그 일’을 나에게도 해줬으면 한다”고 집필의도를 전했다.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캐나다 소설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가 1908년 발표한 데뷔작이자 1979년 제작된 니폰애니메이션(Nippon Animation)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잘 알려진 ‘빨강머리 앤’(Ann of Green Gables)에서 건져 올린 희망과 힐링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2018)의 두 번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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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 백영옥 지음(사진제공=밀리의서재)

백영옥 작가는 주근깨투성이의 빨강머리 고아소녀 앤이 실수로 독신인 커스버트 남매에 입양되기 전의 이야기를 담은 프리퀄(오리지널 콘텐츠에 선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속편) ‘안녕 앤’을 체화해 에세이로 엮었다.


‘안녕 앤’은 버지 윌슨의 2008년작으로 캐나다정부와 앤 협회가 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소설로 이 역시 니폰애니메이션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사랑받았다.

전작과 더불어 니폰애니메이션의 애니메이션 삽화들을 곁들인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그 출판 형태도 남다르다.

전자책을 기반으로 하는 독서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 이달 초 선출간됐다. 전자책과 종이책 결합 구독 서비스인 ‘밀리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의 5번째 책이자 첫 에세이로 리듬체조 전 국가대표 선수 손연재가 읽은 오디오북도 동시 출간됐다. 서점 출간은 8월로 예정돼 있다.

전작이 희망을 잃고 지쳐버린 이들에게 앤의 무한긍정 에너지로 웃음과 위로를 전했다면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고통과 상실을 희망으로 바꾸는 ‘고집스러운 기쁨’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더 나답게 만들기’ 등을 아우르며 ‘그래, 앤이어서 다행이었다’로 마무리된다.

작가는 잭 길버트의 시 ‘변론의 취지서’에서 발췌한 ‘고집스러운 기쁨’을 빨강머리 앤을 정의하는 문구로 꼽았다. 풍요롭고 안정적인 환경이어서가 아니라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기필코 발견해내는 ‘기쁨’이다. 딸을 일찍 여읜 민튼 할머니의 “인간은 가장 소중한 것일수록 죽을 때 겨우 깨닫는다”는 말에 “다행이에요. 죽기 전에 깨달아서”라는 앤은 타고난 낙천적 기질이 아닌 훈련된 낙관성의 소유자다. 앤을 통해 배우는 고집스러운 기쁨과 훈련되는 낙관성은 “행복해지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라는 백영옥 작가의 인생철학과도 맥을 같이 한다.

책에는 “돈이 없는 게 무섭다”와 “돈이 없어도 무서울 게 없다”의 차이처럼 언덕을 달리다 넘어져 네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물 긷기 심부름에 늦었다는 타박에 “벚꽃이 너무 예뻐서 지나칠 수 없었다”며 웃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기필코 살아내는 다양한 앤의 이야기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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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신작 에세이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손연재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북을 동시 출간했다(사진제공=밀리의 서재)

 

최근 최고 이슈몰이 중인 ‘내일은 미스터 트롯’ 출신의 가수들이 그렇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진선미를 거머쥔 임영웅·영탁·이찬원, 아이돌멤버였던 장민호, 성악가로 성장한 천재소년 ‘트바로티’ 김호중 등은 실패와 절망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고집스러운 기쁨’을 추구하는 용기를 지닌 이들이다.

30대부터 “은퇴하면…”을 버릇처럼 되뇌던 51세 지인을 통해 전하는 ‘지금’의 소중함과 가치, 백 작가가 ‘빨강머리 앤’ 만큼이나 좋아하는 소설로 알려진 ‘키다리 아저씨’의 차곡 차곡 쌓이는 ‘작은 행복’, ‘72년에 걸친 하버드대학교 인생 관찰 보고서’라는 부제의 ‘행복의 비밀’ 속 방어기제, 행복과 불행 사이에 존재하는 ‘다행’, 일상다반사의 기쁨을 일깨운 영화 ‘일일시호일’(매일매일이 좋다), 혼밥을 하면서 깨달은 거울로 보는 나와 창문으로 보는 나의 차이, 꽃의 이름과 이름 철자의 마지막 “E”를 강조하는 앤 마음 속의 그리움 등 소설, 애니메이션 속 앤과 수많은 현실의 앤들이 교차되며 위안을 전한다.

백영옥 작가는 밀리의 서재 회원들에게만 공개되는 챗북 인터뷰에서 유해한 물질이 무해농도에서 생체에 미치는 유익한 효과를 일컫는 ‘호르메시스’(Hormesis)를 마음에 새기며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백 작가는 ‘호르메시스’를 “지금 슬픔과 고통의 터널을 힘들게 건너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중요한 건 정도, 약으로 치면 복용량”이라고 강조했다. 가혹한 환경과 고통 속에 있었지만 많은 이들의 따뜻한 도움과 보호 아래 보낸 어린 시절이 무한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는 지금의 앤을 만들었듯 ‘호르메시스’ 효과의 방점은 ‘무해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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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에세이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을 출간한 백영옥 작가(사진제공=밀리의 서재)

 

이번 책의 집필과정에서 백 작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역시 팬데믹(전세계적인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코로나19) 쇼크다.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코로나블루’(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 극복은 전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백 작가는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는 혼란을 헤쳐나갈 “언택트 관련 이야기가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책에는 “위안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일에 가깝다”고 쓰여져 있다. 백 작가는 이에 대해 “슬픔이 끝나는 건 슬픔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라 내 눈물을 닦아줄 친구가 옆에 있을 때 뿐”이라고 적었다. 결국 나의 모든 것은 나에게서 비롯된다. 백영옥 작가는 독자들에게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라”고 조언한다.

“소확행이란 말도 있고, 나를 위한 쇼핑이란 말도 있지만 저는 이것보다 한 단계 넘어서는 일을 나에게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것 밖에 못해? 왜 이렇게 한 거야? 다음 주까지는 이렇게 하지 말자! 이렇게 나를 쥐어박는 말만 하지 말고 좀 쉬었다 해, 밥은 제대로 먹었니? 같은 말을 나에게 해주라고 말이죠.”

그렇게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앤이 앤이어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네가 너여서 다행이지 않냐?”고 되묻는다. 이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내가 나라서 참 다행이라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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