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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설 명절, ‘화차’ 작가 초기작 읽어볼까

[책갈피] 日 미스터리 거장의 빛나는 초기작

입력 2022-01-25 18:00 | 신문게재 2022-01-2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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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 ㅣ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문학동네 | 1만 5000원

최근 호사가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책이 일본 미스터리 거장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다.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진 약혼자 세네키 쇼코, 그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구리사카 가즈야와 그런 그의 부탁으로 쇼코를 추적하는 형사 혼마의 이야기다. 가즈야가 알고 있던 쇼코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실들이 드러나는 과정을 담은 ‘화차’는 일본에서 제6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했고 한국에서는 지난 2012년 이선균, 김민희 주연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입길에 오른 야당 대선후보 배우자의 과거가 흡사 이 책의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다시금 서점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차’ 뿐 아니라 미야베 미유키는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소설가다. 그의 대표작인 ‘모방범’은 일본에서만 280만부가 팔렸고 국내에서도 10만부 이상 판매됐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책으로 단숨에 국내 팬들 사이에서 ‘미미 여사’라는 애칭을 얻었다. 그의 또다른 대표작 ‘솔로몬의 위증’은 지난 2016년 김현수, 장동윤 주연 JTBC 드라마로 제작됐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힘은 사회 구조의 문제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취재력에 기인한다. ‘화차’는 채무와 신용불량 문제를, ‘솔로몬의 위증’은 청소년 자살 문제를 짚었다. ‘모방범’은 연쇄살인범 문제를 3권에 걸쳐 다뤘지만 쫄깃한 긴장감에 책을 놓기 힘들다. 

사회문제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의 관심은 초기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문학동네가 출간한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 ‘오늘밤은 잠들 수 없어’(1992)와 그 후속작 ‘꿈에도 생각하지 않아’(1995)는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유쾌한 미스터리 활극이다. ‘솔로몬의 위증’을 통해 청소년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표명한 작가의 초창기 저서답게 10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문제를 접할 수 있다.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는 고도성장기와 거품경제를 거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인 1990년대 초반 작가의 고향이자 도쿄의 대표적 서민가인 후카가와에 거주하는 2명의 남자 중학생 콤비가 주인공이다. 평범한 중학교 1학년 축구부원인 마사오의 집안에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에게 5억 엔(한화 52억원)이라는 거금이 유증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앉은 자리에서 로또 복권이 당첨된 셈이지만 너무 큰 돈이 오히려 가정불화를 불러일으켰다. 식구들은 매일같이 벌어지는 취재 전쟁, 이웃들의 시선, “도와달라”는 친인척들의 전화와 생판 모르는 이들의 협박에 시달린다. 급기야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리자 마사오는 절친인 장기부원 시마자키 도시히코와 함께 어머니에게 거액을 남긴 사와무라 나오아키의 과거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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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생각하지 않아ㅣ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문학동네 | 1만 5000원

이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최근작들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안기기보다 유쾌한 소년탐정물을 읽는 느낌이다. 당시 도쿄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의 관찰력 덕분에 흡사 ‘응답하라 도쿄’ 같은 인상을 안긴다. 시리즈물에 능한 작가는 3년 뒤 이 책의 후속작 ‘꿈에도 생각하지 않아’를 선보인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아’는 마사오와 친구들의 1년 뒤 이야기다. 중학교 2학년이 된 마사오가 짝사랑하는 반 친구 구도를 만나기 위해 공원에서 열리는 한 모임에 나간다. 하필 그곳에서 발견된 젊은 여성의 시신이 구도의 사촌언니로 밝혀지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아’는 당시 일본에서 큰 문제로 대두된 ‘미성년자 성범죄’라는 묵직한 주제를 통해 작가의 특기인 사회문제 고발영역으로 한발 더 깊숙이 들어간다. 인터넷은커녕 휴대전화도 상용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작가는 꼼꼼한 취재와 탁월한 집필력으로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풀어나간다. 미야베 미유키의 팬이라면 작가의 성장과정을 접하는 재미도 톡톡하다. 

30년 전 일본 이야기지만 2020년의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상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무례한 취재 열기와 타인의 시선에 대해 작가는 “우리 가족이 두려워했어야 할 대상은 봉화가 보이는 범위에 있는 미지의 사람들”(‘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라고 표현한다. 익명성에 기댄 사회에 대해 “우리는 지금 모두 익명으로 뭘 해도 상관없는 ‘익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꿈에도 생각하지 않아’)라고 적었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변하지 않는 인간본성에 대한 작가의 예리함을 접할 수 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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