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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도시락을 싸오지 않자, 선생님이 말했다… "학교 다니지 마"

[#OTT] 웨이브·티빙 '스탠리의 도시락'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으로 첫 선
실제 부자 관계인 감독과 주인공 깜짝 연기 앙상블 재미 더해

입력 2023-05-17 18:00 | 신문게재 2023-05-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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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의 도시락6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 상영된 이후 공감대를 형성하며 조용한 입소문에 성공한 ‘스탠리의 도시락’. (사진제공=타임스토리)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지난 15일은 1963년 이후 교권존중과 스승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교원의 사기진작과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지정된 법정기념일인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은 그림자조차 ‘밟아서는 안되는’ 신성한 존재였다. 한때는 학창 시절 꿈꾸던 직업 1순위가 교사였지만 이제는 기피 직업의 순위에 등장하며 무너진 교권의 현실을 증명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한 ‘2022년 교권 보호 및 교직상담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교사노동조합연맹이 1만 137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8명은 최근 1년 새 사직ㆍ이직을 고민했다고 한다. 최근 5년 새 10명 중 3명은 교권침해로 정신과 치료ㆍ상담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교직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3.6%로 설문조사가 시작된 2006년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교사의 87%가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교사노조연맹의 설문조사도 나왔다.

스탠리의 도시락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영화 특유의 음악과 춤이 살짝 가미된 것도 국내 관객들의 이질감을 줄였다. (사진제공=타임스토리)

 

그렇다면 진정한 교사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학생이란 특권 안에서 애어른이 돼버린 괴물들과 그들을 키운 일부 몰지각한 부모들의 행각이 뉴스를 장식하는 세상에서 꿋꿋한 멘탈을 지닌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 인도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학교를 중심으로 ‘진정한 스승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주인공 스탠리(파토르 A 굽테)는 누구보다 일찍 등교한다. 춤도 잘 추고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인 그는 타고난 쇼맨십으로 늘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가끔 얼굴에 멍이 들고 입술이 터져 오지만 워낙 개구진 탓에 아무도 신경 쓰질 않는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가다 동네 싸움에 휘둘리고 아이들과 축구를 하다 넘어지는 게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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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자 주연, 각본까지 맡은 아몰 굽테는 자신의 실제 아들을 스탠리 역에 캐스팅해 톰과 제리같은 호흡을 이끌어냈다. (사진제공=타임스토리)

 

그의 스트레스는 자꾸 책상을 넘어오는 짝꿍과 아이들 사이에서 ‘식탐대마왕’으로 불리는 베르마(아몰 굽테) 선생님 뿐이다. 왼손잡이인 자신과 오른손잡이인 짝꿍의 자리를 바꾸며 평화적인 해결에 나서는 담임교사(디비아 더따)만이 학교생활의 유일한 안식처다.

‘스탠리의 도시락’에는 다양한 교사가 나온다. 동료들이 싸온 음식을 얄밉게 뺏어먹는 베르마를 필두로 남을 헐뜯고 뒷담화하지만 정작 워킹맘으로 고단한 선생님, 약혼자와 행복한 결혼을 앞두고 들떠 있는 담임, 학교의 교장이자 주임 신부님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선생님 등 국적과 연령, 성별만 다를 뿐 어딘가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가득하다. 영화는 뒤쳐진 진도를 보충하기 위해 보충수업에 나선 학교의 결정으로 고난에 빠진 주인공의 일상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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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배를 채우는 건 수돗물이다. 그나마도 학교 수위한테 구박받고 눈치밥을 먹는 탓에 배불리 먹을 수도 없다. (사진제공=타임스토리)

 

사실 스탠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다. 점심 한끼는 친구들이 나눠준 음식으로 때우기도 하고 가끔 매점으로 달려가기도 하지만 그 돈이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이제는 보충수업까지 도시락을 싸와야 하는 탓에 곤란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보충수업 전까지 집에 다녀 올 수 있어서 스탠리는 매번 “엄마가 맛있는 거 해놨다고 먹고 가래”라며 달려나간다. 

그의 거짓말이 탄로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는 매점에 간다면서 늘 수돗물을 마셨고 보충수업 전까지 거리를 배회하다 학교로 돌아오곤 했다. 친구들은 스탠리를 놀리기보다 기꺼이 자신들의 도시락 양을 늘린다. 급식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나누는 우정은 순수하다. 4층 반합에 가득 채워 자식을 먹이려는 엄마들의 모성이 되려 베르마를 자극한다. 그는 동료 교사들이 나눠주는 음식에 만족하지 않고 아이들의 도시락을 노린다. 

스탠리를 비롯한 친구들은 베르마 선생님이 대놓고 뺏어먹는 도시락을 지키기 위해 매번 다른 장소에서 몰래 ‘그들만의 잔치’를 연다. 영화의 중반부는 강당, 운동장, 체육관, 중앙 계단 밑, 옥상에 이르기까지 스탠리의 친구들과 베르마 선생님의 추격전에 집중한다. 자신도 늘 도시락을 싸 오지 않으면서 제자가 빈손으로 오는 걸 못 견딘 베르마는 “도시락이 없으면 학교도 오지말라”며 대놓고 스탠리를 공개 저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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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와 도시락을 나눠먹기 위해 늘 선생님 따돌리는 아이들. 의외의 장소에서 까먹는 밥은 늘 맛있다. (사진제공=타임스토리)

 

사실 그런 말을 한 선생님의 입장에서 뻘쭘한 것도 사실이다. 10대 초반의 어린 제자들은 “도시락을 나눠 먹자고 한 건 우리가 먼저였다”며 원망하지만 스탠리는 그 이후 모습을 감춘다. 이 영화의 화두는 그저 스승과 제자의 ‘도시락 뺏기’가 아니다. 늘 활달하고 구김살 없는 모범생인 스탠리에게는 비밀이 있다. 오토바이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삼촌의 식당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얹혀살고 있다.  

불쌍한 조카를 거둔 삼촌은 표면적으로는 학교도 보내고 충실하게 보필하는 어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식당에서 노동을 하며 제대로 된 침대 하나 없이 한 곁에 몸을 뉘이는 게 스탠리의 현실이다. 

그를 불쌍하게 보는 건 카스트제도의 가장 밑바닥에서 노동력 착취가 당연한 식당 주방장 뿐이다. 그는 스탠리에게 “식당의 남은 음식은 다 버리는데 왜 말을 안 했냐”며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스탠리가 어른스럽게 “삼촌이 내 것이 아니듯 그 음식 역시 내게 아닌데 탐낼 수 없다”는 말에 수긍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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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학식’이라는 줄임말로 폄하되지만 한국인의 식판 혹은 한국 엄마들의 도시락은 세계최강이다. 다소 부실해 보이는 도시락이지만 맛있게 먹는 아이들. (사진제공=타임스토리)

 

영화는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과 도시락을 빗대 강제적으로 노동현장에 내몰린 인도 아이들의 현실을 그린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연간 약 1200만명의 아이들이 가족들에 의해 노동현장에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스탠리의 도시락’은 주인공의 현실은 끝까지 공개되지 않고 관객만이 알게 만든다. 베르마 선생은 식탐대마왕이었지만 학교에 나오지 않는 스탠리의 단호한 결정에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리고 학교를 영원히 떠나며 스탠리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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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에게 스승의 존재와 어른의 격을 보여주는 담임선생님. 어쩌면 소년이 갑추고 있는 가슴아픈 비밀을 끝내 눈치 못 챈다는점에서 무능해보이지만 스탠리가 유일하게 기대는 존재기도 하다. (사진제공=타임스토리)

 

영화의 마지막까지 11살 소년이 가진 귀여운 허세는 계속된다. 삼촌 식당에서 버려진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와 그간 자신을 위해 음식을 나눈 이들에게 “엄마의 특제비법”이라며 자신의 불행을 천진난만하게 포장한다. 친구와 학교 선생님들은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며 엄지를 치켜든다. 끝까지 명랑함을 잃지않기에 더욱 눈물이 앞을 가리는 ‘스탠리의 도시락’은 웨이브와 티빙에서 볼 수 있다. 극 중 늘 앙숙으로 나오는 스탠리와 베르마 선생님이 사실은 실제 부자 사이임을 알고 본다면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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