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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이 작품을 보면 당신은 결코, OO을 먹을 수 없다!

[#OTT]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 다른 종(種)과의 교감과 연대 다룬 다큐멘터리

입력 2023-07-05 18:30 | 신문게재 2023-07-0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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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잠수부 단체를 설립해 해양보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크레이그 포스터 감독은 ‘나의 문어 선생님’을 찍고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비롯해 다수의 상을 품에 안았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영민한 두뇌와 촉촉한 피부. 결코 남자를 시키지 않는다. 이사도 혼자서 척척. 집이 좀 지루하고 좁다 싶으면 불평보다 자기가 알아서 더 좋은 곳을 알아본다. 변신에도 능한데 결코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점점 남자(인간)의 마음은 애가 탄다. 눈 앞에서 살랑거리다가도 자신의 위치를 꼭꼭 숨기면서 슬쩍 표시를 남겨두는 식이다. 묘하게 흥분되는 신호를 따라가다 보면 수백 개의 빨판을 동원해 남자의 손을 터치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이 ‘암컷문어’를 잊지 못한 영화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는 아예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남아프리카의 해초 숲을 수영하다 특별한 문어를 마주치게 되면서 그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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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원적 인지나 문제해결 능력을 넘어 인간이나 고등 포유류가 갖는 정서까지 선보이는 문어.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은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남아프리카로 떠난 감독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어린 아들과는 소원해지고 아내와는 늘 다툰다. 오랜 해외 촬영에 지쳤던 그는 다시마 숲이라 불리는 케이프타운의 바다 밑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큰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해안가와 달리 이 곳은 늘 잔잔한 해류가 충만한 곳이다. 칠흙같이 매끄럽지만 어두운 다시마 사이에는 최강 포식자인 파자마 상어를 비롯해 각종 물고기가 저마다의 거리감을 유지한 채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곳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늘 존재하지만 그것은 자연의 섭리일 뿐. 감독은 그곳에서 조개껍질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한 암컷 문어를 발견한다. 자신이 흡사 모래나 해초인듯 포장하고 있지만 인간의 눈에 ‘그것’은 움직인다. 제주도라면 바로 잡아 문어 숙회를 만들었겠지만 해외에서 문어의 존재는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물컹한 식감과 기괴한 외모 탓에 식용으로 각광받지 않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문어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과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탓에 하등의 존재로 분류되던 문어가 자신을 알아본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늘 경계하던 문어는 감독이 자신에게 위험을 끼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경계를 푼다. 평소대로 행동하는 문어의 세상은 그야말로 신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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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가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나의 문어 선생님’의 한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두 생명체는 곧 교감을 넘어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포스터는 늘 문어의 행동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때때로 좀 더 큰 조개껍데기나 굴로 이동할 때는 감독에게 신호를 남기는 것도 문어의 몫이다. 신비한 문어의 세계는 그가 상당한 지능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희생의 아이콘으로 생태계의 섭리를 따른다는 것에서 화룡정점을 맞이한다. 

문어는 사냥을 하다 천적인 상어에게 한 팔을 물어 뜯기는데 금방 죽을 것 같던 문어에게 새 팔이 돋아나기까지는 채 한달이 걸리지 않는다. 끝까지 자신을 공격하는 포식자를 피해 문어는 물 속이 아닌 육지로까지 달아나는 영민함을 가졌다. 그의 카메라에는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해안가 바위 틈을 빛의 속도로 가로지르는 문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다.

무작정 피하는 것도 문어의 생존법은 아니다. 상어가 불리한 상황에서는 공격도 주저하지 않는다. 한 입에 뜯겨버릴 것 같은 연체 동물이 눈과 머리에 들러붙을 때 상어의 공격성은 바로 바닥을 보인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해양 다큐멘터리지만 한편의 사회생활 바이블이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한치의 양보도 없지만 약자끼리 연대한다. 산란을 위해 짝짓기를 한 암컷은 알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생명 유지 능력을 최소화한다. 수컷에게 의지하는 대신 독립적으로 번식에 집중한다. 먹지도 않고 사냥도 하지 않으며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에너지를 아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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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멘터리의 흥행에 일각에서는 “당분간 문어를 먹지 못하겠다”는 글이 쇄도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생태계를 약 1년간 따라다니면서 감독의 일상도 바뀐다. 모르는 세상을 탐사하면서 느끼는 피로는 그를 숙면으로 이끌었다. 문어가 새끼를 품는 모습을 본 후 아들과 함께 바다에 나선 것도 이 즈음이다. 문어는 알이 부화되기 직전까지 굶는 탓에 결국 산호초의 이웃이었던 청소동물들에게 몸이 분해돼버리고 만다. 흐느적거리는 몸통이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순간 그렇게 피해 다니던 상어가 그의 몸통을 집어삼킨다.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던 문어는 그렇게 자연의 섭리에 자신을 맡긴다. 흡사 “네가 몰랐던 세상은 이 어딘가에 존재하니 너무 아등바등 살지말고 자만도 하지 말라”는 듯.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마의 숲에서 깨알같이 떠다니는 작은 새끼 문어를 만나는 것으로 끝난다. 

감독은 대놓고 자연의 위대함이나 모성이 가진 희생을 극찬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종의 문어가 가족도 지인도 해주지 못했던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줬음을, 그리고 다시금 살아가게 해줬음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정작 가까운 관계가 할 수 없던 무언의 위로 말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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