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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좋아하고 잘 하던 일을 포기한 사람들,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간절함! 10초의 '카운트'

[#OTT] 웨이브·티빙·왓챠·넷플릭스 '카운트'

입력 2023-07-19 18:30 | 신문게재 2023-07-2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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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운트1
1988년 서울 올림픽 4위라는 승부에 쐐기를 박은 박시헌의 금메달. 그는 선수로서의 아쉬움을 지도자로 꽃피우며 여전히 현역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사진제공=CJ ENM)

 

오른손이 부러진 권투 선수가 올림픽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국내에서는 발이 빠른 미들급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링에서 만난 미국선수 로이 존스 주니어는 힘과 스피드까지 남달랐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하고 ‘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상대방인 미국 선수의 승리를 자신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심판이 손을 든 건 고통과 지친 표정으로 일그러진 박시헌의 왼손이었다. 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획득한 12번째이자 마지막 금메달이었다. 개최국으로서 소련, 동독, 미국 다음으로 올림픽 종합 순위 4위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결정 지은 마지막 메달이기도 했다.

영화 카운트
실제 박시헌 선수의 아내는 이 영화를 당시 겪었던 상처와 슬픔으로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 일선 역할의 오나라. (사진제공=CJ ENM)

서슬퍼런 정권의 국제 행사에서 획득한 이 메달을 두고 당시 언론을 비롯한 국민들까지 ‘부끄러운 금메달’이라고 부르짖었다. 

 

고작 스물 세살이었던 창창한 권투 유망주였던 박시헌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은메달을 받았어도 아시아 최고의 복싱 실력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 터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카운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 리스트 박시헌이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들을 가르치며 겪는 감동의 드라마다. 

실제로 당시 서울 올림픽은 전무후무한 성적을 거뒀지만 그에게는 매국노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편파 판정이란 꼬리표, ‘메달을 반납하라’는 험한 말이 쏟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방송국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아나운서가 그를 지나치고 뺀 채로 인터뷰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인생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던 복싱도 그만두게 된 한 남자. 영화에서는 그런 상처보다 실제 주인공의 가족들이 겪었던 분노와 상처 그리고 끝까지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가 고향에 돌아가 자신의 모교이기도한 진해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평생 선수생활만 했던 그는 남다른 헝그리 정신으로 아이들을 훈육한다. 본드를 불고 틈만 나면 땡땡이를 치는, 호르몬 조절이 불가능한 10대 고등학생들에게는 무조건 매가 약인 시대였다. 학교 선배인 교장의 배려(?)로 학생주임을 자처하며 아이들을 잡다가 우연히 링 위에서 자신처럼 ‘복싱밖에 모르는’ 윤우(성유빈)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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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빈의 복싱 유망주 연기는 그야말로 ‘리틀 박시헌’의 빙의나 다름없다. (사진제공=CJ ENM)

  

다시는 글러브를 안 낄 것처럼 떠났지만 윤우의 경기는 자신도 모르게 복싱 스텝을 밟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다 이긴 게임, 윤우는 하필 지역 유지의 아들과 맞붙어 어이없이 K.O패를 당한다. 

박시헌은 윤우의 억울함과 독기 그리고 모든 걸 포기한 그 심정까지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래서 안정적인 선생 월급으로 아파트를 사는 게 꿈인 아내 일선(오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수가 아닌 복싱감독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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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박선규의 연기는 존경심을 넘어 진심이 넘쳐흐르는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데, 단독 주연으로서의 가능성 또한 차고 넘친다. (사진제공=CJ ENM)

 

‘카운트’는 여러 모로 착한 영화다. 실제로는 박시헌이 선생으로 진해고의 교편을 잡자 전국의 체육고등학교에서 복싱 좀 한다는 선수들이 모두 내려왔을 정도로 ‘복싱 엘리트 집단’이었지만 오합지졸 ‘핵아싸’ 제자들이라는 영화적인 설정은 되려 웃음을 더한다. 

천재적인 윤우는 겉돌고 복싱에 소질은 전혀 없지만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데려온 문제아들과 서울 샌님인 전학생의 불협화음이 반복되는 중에도 이들은 점차 복싱의 세계에 빠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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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운트’ 속 고필규의 존재감은 ‘범죄도시3’의 잭팟이 그저 운이 아닌 준비된 자의 것임을 극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극 중 시헌의 절친으로 나와 웃음을 책임진다.(사진제공=CJ ENM)

 

사실 ‘카운트’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연출을 맡은 권혁재 감독은 “정말 좋아하고 잘하던 일을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그 일에 뛰어드는 순간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며 “기득권과 어른들 때문에 상처받은 젊은 박시헌이 10년 후 체육교사가 되어 저마다 상처가 있는 학생들과 같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라고 소개했다. 

권 감독에 따르면 “영화화를 설득하기 위해 박시헌 감독의 집에 전화를 걸면 영화 속 일선과 이름이 같은 아내분이 ‘내 남편이 영화화를 허락하면 이혼할 것’이라며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였다"고 전해진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지만 결국 ‘카운트’는 세상의 빛을 봤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실제로 박시헌 선수의 주변에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편파 판정의 희생양으로 세상을 탓 하기 보다 공정성에 있어서 만큼은 만사를 제치고 덤비는 지도자로 거듭난 실제 박시헌의 삶을 다룬다는 사실에 제작진과 가족, 배우들도 마음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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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핵아싸 제자들을 만나 세상을 향해 유쾌한 한방을 날리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카운트’의 한 장면. (사진제공=CJ ENM)

 

진해가 고향인 덕분에 어린시절 박시헌 선수의 경기를 TV로 지켜봤고 이후 배우생활과 더불어 취미로 복싱을 즐겼던 진선규는 19년 만에 ‘첫 주연’이란 타이틀을 이 영화로 달았다. 35년간 불명예의 그늘에 시달렸던 복싱감독과 가족은 ‘카운트’로 위로받았다. 영화 속에는 “복싱은 다운됐다고 끝이 아니다. 다시 일어나라고 카운트를 10초나 준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 짧은 시간에 혼미해진 정신을 다잡고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건 순전히 정신력이다. 고려시대에나 있을 법한 수해피해로 국민의 목숨이 사그러들 때 전쟁난 남의 나라를 순방 중인 대통령이 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머문 것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이 당장 서울에 가도 상황을 바꿀 수 없었을 것”이란 답변이 돌아오는 시대다. 

닥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은 안될지언정 그 상황과 피해자들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 바로 그 ‘자세’를 되묻는 ‘카운트’는 웨이브, 티빙, 왓챠, 넷플릭스에서 지난 달부터 서비스되고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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