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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通] 파편화 사회에 대한 단상

입력 2023-08-02 06:48 | 신문게재 2023-08-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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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네 식구가 거실에 함께 자리한 적이 있다. 일상 대화 몇 마디가 오고 간 뒤, 국가대표 축구경기 생중계를 보기 위해 TV를 켰다. 이내 대화는 끊겼고, 축구 중계는 시작됐다. 얼마쯤 지났을까. 우리 국가대표팀이 골을 넣었다. “골~~” 손뼉 치며 벌떡 일어나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분위기가 싸해 졌다. “조용히 보면 안 돼?” 아내의 한 마디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세 개의 눈빛. 순간, 머쓱해져 안마기 의자에 걸터앉았다. 어색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같이 즐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관전할 맛이 뚝 떨어졌다.

주위을 훑어봤다. 쇼파에 비스듬히 앉거나 기대어 각자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내는 모바일 쇼핑을, 두 아이는 취향별 유튜브 시청이 한창이었다. 같은 시공간에 모인 네 식구지만, 생각은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 각자 지구 반대편 어디쯤 헤매고 있었나보다. 서로 매일 얼굴을 마주 보는 오프라인 상에서도 이런 상황이 흔히 연출된다. 이질감과 공허감이 밀려왔다.

요즘을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는 시대라고 한다. 사고의 파편화다. 지금 우리 사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 번 기운 사고의 축은 중력과 시간을 타고 극단을 치닫는다. 마치 마약 중독처럼 더 자극적이고 강한 원심력만 남는다. 콘트롤박스나 브레이크 조차 없다. 그래서 위험하다. 각자의 사고는 원심력을 타고 증폭되며 극단을 향하고 있다. 특히, 익명의 그늘 아래 자행되는 마녀사냥과 인격살인을 일삼는 악플러들의 만행은 이미 사회 악이 됐다. 때론 이념으로, 정치색으로, 종교로, 지역으로 각각 빅뱅하는 운석이 지금 우리의 자화상 아닐까. 다양한 의견과 뜻을 한데 모아가는 구심력이나 중용의 가치가 그립다.

서로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공감대 없는 착시를 전부로 착각하는 일부의 강경 사고는 아집과 우격다짐일 뿐이다.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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