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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패권전쟁과 서열싸움

입력 2023-07-26 06:51 | 신문게재 2023-07-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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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물에게나 서열싸움은 참 중요한 본능인가 보다. 특히 서열 변동기에 접어들거나 무리에 힘 센 놈이 들어오면 무척 격렬해진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게는 힘 겨루기 정도에서 승패를 가르고 만다. 아무리 험악한 싸움도 단기간 내 끝나고, 무리의 질서도 안정되는 법이다. 그래서 동물들의 서열싸움을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자 본성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귀촌한 친구의 작은 양계장을 찾은 적 있다. 한 우리에 여러 마리 닭을 함께 가둬놓았더니 싸움이 심했다고 한다. 서열이 정리된 뒤에도 힘센 닭이 약한 닭들을 시도 때도 없이 쪼아대는 강짜를 놨지만, 이내 닭장에 평화가 찾아왔다. 서열 높은 닭이 눈만 부라려도 알아서 기니 싸울 일이 없어진 것이다. 먹이는 물론 짝짓기까지 만사에 우선순위가 메겨지고 질서가 태동된 결과다.

이성을 갖췄다는 고등동물, 인간 세계라고 별반 다를까. 요즘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패권경쟁을 보자. 기세 싸움 초기는 미국의 맹공이었다. 미국이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과 산업망에서 특정국 배제)을 내세우고 ‘으르렁’거리며 굴복을 강요했다. 세를 과시하며 눈도 부라렸다. 우리 안의 닭들은 관습적으로 줄을 섰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이번엔 중국이 거칠게 치받으며 역공을 펼친다. 이른바 ‘중국 왕따 작전’이 실패로 끝났다. 닭장 안은 복잡해졌다.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인지한 미국은 이내 디리스킹(derisking·위험회피)으로 방향을 틀었다.

올 들어서만 벌써 세 차례, 미국이 중국 달래기에 나섰지만, 결과는 마뜩치 않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 이어 지난 16일엔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까지 중국을 찾았다. 중국은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세를 전환, 반격에 나섰다. 싸움의 판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디리스킹 전략마저 해제하라며 원자재 압박카드를 빼 들었다. ‘제대로 한판 해보자’는 것이다. 당장 내달 1일부터 첨단 반도체 제조의 핵심 원료인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제한을 예고햇다. 희토류로 일본을 꿇렸던 ‘중국의 히든카드’가 다시 나왔다는 평가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중국도 ‘사생결단’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면에는 미국 반도체업체들을 끌어들이며 세 대결과 균열을 유도하고 있다. 양면 전술이다. 지난 17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추가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반대 성명을 내자 중국은 반색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작년에 핀펫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과 18n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생산 장비와 기술을 중국에 팔지 못하게 한데 이어 AI용 저사양 반도체 수출 길까지 막을 조짐을 보이자 미국 기업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이 순간, 미중 간 균형추가 움직인 것이다.

이제 미국의 선택이 남았다. 큰 틀에서 보면, ‘중국의 급성장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달렸다고 본다. 좀 더 들어가면 ‘한 우리 속에서 중국과 공존할 것이냐’, 아니면 ‘더 큰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사생결단 할 것이냐’다. 이런 흐름을 놓고 유수의 정치외교 전문가들은 미중 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지금 현 상황을 패권국이 2인자의 추격이나 도전을 용납하지 않을 경우 파국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이번 미중 패권경쟁은 더 이상 출혈 없이 상대를 존중하는 수준에서 합리적으로 결론나야 한다. 아무리 오기와 탐욕의 유혹이 공멸을 가르키더라도 결국 상호 타협과 양보을 통한 공영의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대자연의 원칙이자 생존의 길임을 명심하자. 그것이 바로 사고하는 고등동물, 인간이 가축보다 못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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