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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투키디데스의 함정 속 묘수 찾는 K반도체

입력 2023-06-13 06:22 | 신문게재 2023-06-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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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석 산업IT부장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시기, 안으로는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회복시키고, 밖으로는 명·청 교체기 외교정책 재정립이란 절대명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서(史書)에 나오는 등거리 외교의 시대적 배경이다.

당시 혈맹 명나라는 후금에 밀려 국력이 급격하게 쇠약해지고, 후금은 명나라에 선전포고를 할 만큼 강성해졌다. 동아시아가 세력 재편기에 접어든 때다. 양쪽 다 조선에 선택을 강요했다. 광해군이 찾은 묘수는 강홍립을 통해 후금과 휴전을 맺는 한편, 명나라 모문룡 부대에 식량을 지원하는 등거리였다. 덕분에 당대에 수많은 백성을 노예로 빼앗기고 국토를 유린당하는 정묘·병자호란 같은 외침은 없었다. 즉, 양대 강국 간 싸움에 편들지 않으면서 내치와 국방에 주력한 실리외교였다.

하지만 인조반정 이후 조선의 외교정책은 친명배금(親明排金)으로 급반전했다. 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했다. 그 결과 두 차례 호란(胡亂)에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란 치욕을 겪었다. 민초들은 극심한 굶주림과 전쟁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의 명분은 조선 사신들의 홍타이지 존호례 배례 거부였다. 하지만 급부상하는 후금의 위상 재설정이 본질이었다는 게 역사의 정설이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미중 간 반도체 패권 전쟁은 거칠어지고 있다. 각자 한국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모진 손을 내민다. 우리는 또 다시 지독한 ‘양자택일적’ 선택지를 강요받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다. 하지만 원천 기술은 미국에 기대 있고, 반도체 최대 수출 및 생산기지는 중국이다. 대 놓고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처지다.

세계 유수의 정치외교 전문가들은 미중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패권국이 2인자의 추격이나 도전을 용납하지 않으면서 파국까지 우려해야할 처지란 것이다. 물론 패권경쟁이 반드시 극단을 치닫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미중은 이미 안보와 외교, 경제 등 각 분야에서 돌이킬 수 없는 충돌각을 새기고 있다. 역시 안보가 명분이지만, 실제 전장은 반도체와 경제를 넘어 기축통화와 글로벌 패권으로 번지고 있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역사에는 일정 패턴이 있고, 비슷한 상황이 되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386년 전, 우리는 병자호란이란 뼈아픈 역사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당시 산식(算式)과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또 다시 잔인한 선택지 앞에 섰다. ‘진퇴양난’의 처지가 슬픈 자화상이고 데자뷰다.

갈수록 세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전략적 공간은 압축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환승하면서도 중국의 경제발전이란 실익도 놓칠 수 없다. 당장 삼성을 비롯한 SK, 현대차, LG그룹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들은 머리를 싸매고 있다. 묘수를 찾아내야 한다. 뾰족한 수가 안 보인다면 역사라도 시뮬레이션해 보자.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국제 관계,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국익과 실리를 우선할 수 없다. 동서고금의 진리다. 역사에서 훈수를 받아 보는 것은 어떨까.

송남석 산업IT국장 songn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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