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전국 > 영남

작년 이어 올해도 '중고거래'되는 경남교육청 '스마트 단말기'

민형사적 책임 따르는 '스마트단말기' 대여....학부모 주의 필요
스마트단말기 대여사업 알고보니 '보급'아닌 '무상렌탈'과 유사
학부모 공분 확산...꼬리에 꼬리를 무는 '꼬꼬무' 논쟁으로 이어져

입력 2023-10-05 10:59 | 신문게재 2023-10-06 17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박종훈 경남교육감
박종훈 경남교육감이 2023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스마트 단말기 보급으로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학생 맞춤형 수업을 실시하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경남교육청)

 

경상남도 교육청이 지역 학생들에게 대여한 스마트 단말기가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중고 매물로 올라온 것과 관련 경찰이 수사에 착수해 경위를 파악 중인 가운데 경남교육청의 관리·감독의 부실 문제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책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아울러 학생들의 민형사적 책임 논쟁과 실효성없는 대여 조건 등 학부모들 사이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꼬꼬무’ 논쟁이 확산 중이다.

문제가 된 ‘스마트 단말기’는 경남교육청이 2021년 9월부터 약 157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32만여대의 스마트 단말기를 구입한 후 경남지역 초·중·고·특수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5년간 무상 대여하고 있는 경남교육청 자산이다. 경남교육청은 학생들이 학교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액의 스마트 단말기는 일반 교보재와 달리 현금으로 교환이 용이한 ‘현금성 자산’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지난해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에 경남교육청이 지역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상 대여한 ‘스마트 단말기’가 중고거래 매물로 올라왔다. 이 사실을 인지한 경남교육청은 학생의 범죄행위를 저지하고자 즉각 수사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 협조요청에 응한 수사기관은 ‘당근마켓’으로부터 판매글을 게시한 학생의 신원을 확인하고, 판매글을 삭제하도록 해 해당 학생의 범죄 기도는 미수에 그쳤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브릿지경제와의 통화에서 “학생들의 범죄행위를 예방하고자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협조를 요청해 스마트 단말기 판매글이 게시되지 않도록 대응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지난 9월에도 ‘스마트 단말기’가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매물로 나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경남교육청은 “학생이 분실한 단말기를 외국인이 습득해 판매한 것으로 추정 중”이라고 밝혔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5일 “번개장터 측에도 스마트 단말기 판매글이 게시되지 않도록 협조를 구하고 있는 중이다”라며 “이미 작년에도 중고거래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스마트 단말기의 분실사고를 예방하고자 올해 4월과 7월, 9월 총 3차례 관련 안내자료를 배포했으며, 지난 8월에는 각 학교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권역별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말기 관리지침을 개정할 예정이며, 오는 11월 초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련 영상을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라고 향후 대책을 밝혔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금전적 형편이 어렵고 합리적 판단이 어려운 미성년자를 ‘내구제 거래(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거래)’의 위험에 노출시킨 경남교육청의 선심성 정책의 결과”라며 비판하고 있다.

법률관계상 ‘사용대차관계’ ‘무상렌탈계약’과 유사해...민·형사적 책임 공방

해당 사건 이후 경남교육청은 지난 9월 25일 각 학교에 가정통신문을 배포했다. 경남교육청이 배포한 ‘아이북 분실 시 처리 과정’이라는 내용을 포함하는 ‘전자태그 부착으로 인한 아이북 임시 반납 안내’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대여한 스마트 단말기는 경상남도 교육청의 자산이며 존속기간(사용기간), 분실·훼손·멸실 등의 경우에 대한 손해배상 조건, 임의로 처분할 경우 ‘민·형사상 법적 책임’이 사용인 ‘학생’에게 귀속됨을 명확히 명시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가정통신문에 기재된 ‘필요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보고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민사적 책임과 형사적 책임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먼저, 민법상 경남교육청이 학생들에게 스마트 단말기를 대여한 것은 ‘사용대차계약(민법 제609조)’으로 풀이된다. 대여자(대주) ‘경상남도 교육청’과 사용인(차주) ‘학생’은 상호간 계약의 효력을 입증하고자,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사용대차계약의 당사자로서 ‘서로에 대한 의사표시(낙성계약)’만으로 계약이 성립한다. 경남교육청과 학생은 법률관계상 사용대차관계로 볼 수 있다.

경남교육청은 교육활동 중 부득이하게 분실·훼손·멸실 등의 경우엔 사용자 비용 부담 없이 무상 처리하고 고의 분실이나 교육활동 중이 아닌 경우에 발생한 손해에 관해서는 스마트 단말기 구입가격의 10%에 해당하는 비용을 사용자인 학생이 부담하도록 민사상 손해배상 방침을 세웠다.

사용자인 학생이 임의로 처분할 경우에 학생은 민사상 손해 전액을 배상해야 하며 형사적 책임이 뒤따른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스마트 단말기는 경남교육청의 자산이므로 임의로 처분할 경우 횡령 또는 절도 혐의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사용대차계약서를 서면으로 작성하지 않아 학생과 학부모 모두 권리와 의무, 책임이 따르는 계약임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부모가 직접 자녀들이 보급받은 스마트 단말기를 면밀히 관리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고 “스마트 단말기를 ‘보급’한다는 정책 홍보와 달리 오히려 ‘무상렌탈계약’과 더 유사하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용대차계약은 주로 일방의 호의로 성립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계약이행에 관한 사항들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법적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미성년자 법률행위의 강행규정인 법정대리인 동의 ‘묵시적’으로도 가능

“미성년자인 학생이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 유효한 것이 아니냐”, “미성년자를 단독으로 한 계약은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법정미성년자는 ‘제한능력자’에 해당해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를 제외한 법률행위를 함에 있어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한 민법 제5조 1항에 근거한 주장이다.

제한능력자제도에 따라 미성년자는 제한능력자로 자신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어 의사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그 행위를 취소할 수 있다는 ‘계약 무효(신의칙 위반)’를 염두한 것이다.

최근 판례의 태도를 살펴보면 법정대리인의 동의는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고 보고있다. 또한 경남교육청이 스마트 단말기를 보급할 당시 사용인인 ‘학생’과 법정대리인격인 ‘보호자’로부터 서명 날인을 받은 ‘수령확인서’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갈음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계약 무효’의 주장은 해당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효성 없는 의무와 책임조항으로 번진 공분

“5년 뒤 경남교육청이 보급한 스마트 단말기 30만개 경매사이트에 ‘불용품’으로 쏟아질 것” 한 학부모의 말이다. 5년의 무상 대여기간이 만료돼 반납된 스마트 단말기는 최종 불용품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스마트 전자기기의 경우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이 소프트웨어의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구입 후 4~5년만 지나도 속도와 기능면에서 사용성을 잃게되는 경우가 많다. 전자폐기물이 급증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 학부모는 “애초에 스마트 단말기의 하드웨어 사양이 낮아 보급 당시에도 속도가 느려 이용에 불편이 많았다”며 “경남형 미래교육지원플랫폼 ‘아이톡톡’ 접속 문제가 대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용수명이 짧은 스마트 기기의 특성으로 인해 경남교육청이 세운 반납의무와 손해배상 조건들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학부모들은 “대여기간이 종료되면 불용품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스마트 단말기에 대한 소유권 자체를 학생들에게 양도해 민형사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며 “이미 활용도가 낮아 집에 보관만 해두고 있는 스마트 단말기를 가정이 아닌 학교 측에서 일반 교보재처럼 관리하도록 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창원=김진일 기자 beeco055@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