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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예술후원에 진심인 기업

입력 2023-11-06 14:10 | 신문게재 2023-11-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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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많은 사람들이 예술후원의 진정성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물론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 진정성을 파악하는 방법과 뜻은 모두 다르지만 ‘지속성’과 ‘이타성’이라 그 질문에 답하곤 한다. 기업 담당자들이 예술지원 사업의 방법을 물을 때면 큰 예산을 들인 단발성 행사보다는 그 예산보다 적더라도 10년 이상 이어 가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오로지 기업홍보와 마케팅을 위한 의도보다는 나눔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말해준다. 그 지점에서 기업 메세나 활동의 ‘진정성’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열린 ‘이건음악회’가 그랬다. 특별히 올해는 여운이 무척이나 오래도록 남을 뜻깊은 음악회였다. 1990년 이건음악회를 처음 기획하고 33년간 이어온 고 박영주 회장의 인자하고 반가운 모습을 더 이상 로비에서 볼 수 없었으며 그의 목소리가 담긴 짧은 추모 영상을 보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눈물을 적셨다. ‘음악을 통한 나눔을 실천하고자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했다’는 소개글에서 감동과 진정성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2007년 입사 당시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이었던 그 덕분에 이건음악회를 처음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중견 시스템 창호 제조사에서 웬 클래식 음악회를 십수년이나, 무료로 운영하느냐”며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영주 회장은 1980년대 후반 합판사업의 활황으로 큰 수익을 내자 기업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자 당시 고가의 입장료로 문턱이 높았던 클래식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겠다는 의지로 이건음악회를 시작했다.

특히 이건음악회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실력파 해외 연주자와 공연단을 소개해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대형 공연장이나 문화재단, 기획사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클래식 공연의 장을 넓히고자 한 것이다. 체코 탈리히 현악4중주단, 헝가리 금관5중주단 등을 무대에 올렸고 스크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 밀로쉬 카라다글리치, 베를린필 윈드퀸텟, 하모닉 브라스 등 다양한 장르와 예술단체를 초대했다.

1990년 첫회 공연은 한국에선 이름도 낯선 프라하 아카데미아 목관5중주단의 공연이었다. 당시 협연한 48세의 피아니스트 신수정은 박영주 회장에 대해 “음악인들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존중해 주던 기업인”으로 기억했다. 이건음악회는 초청된 해외 실력파 연주자들이 음악에 열정을 가진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2011년부터는 신진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고자 ‘아리랑편곡 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다. 아리랑을 현악4중주 구성으로 편곡해 초청 연주자가 연주하게 한다. 그렇게 이건음악회에 가면 매년 색다르게 편곡된 아리랑을 들을 수 있어 더 뜻 깊다.

올해 제34회 이건음악회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현악 4중주단의 연주로 진행됐다. 서울, 광주, 대구, 부산, 인천을 돌며 10일간의 장정에 나섰다. 클래식 음악의 악장에 대한 상식 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악장 간 박수, 몰상식한 휴대폰 벨소리 등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33년을 이어온 이건음악회의 진심과 감동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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