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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중첩 그러나 한없이 투명한! 남여주 작가 “뭔가 그리운 그리고 나를 투영한!”

[人더컬처] 초대전 '투영' 남여주 작가

입력 2023-11-20 18:00 | 신문게재 2023-11-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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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주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여태껏 그 정도로 못해왔으니 두배로 할게요. 아흔이 훌쩍 넘으신 황용엽 선생님께서 ‘하루에 8시간은 꼭 직장인처럼 그림을 그려라’고 하셔서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실제로 아침 일찍 작업실로 향해 매일을 트레이닝복, 슬리퍼, 물감이 덕지덕지한 앞치마 차림에 머리를 질끈 동여맨 채 그림을 그리는 데 10시간 이상을 집중한다. 겨울이 다가오면 외풍이 유독 심한 작업실 덕에 털양말 두겹에 장화를 신고 지내다 옷 갈아입을 시간도 아까워 그 차림 그대로 온 동네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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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주 작가 초대전 ‘투영’ 포스터(사진제공=구구갤러리)

곧 열릴 초대전 ‘투영’(投影, 11월 25~12월 6일 구구갤러리)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남여주 작가는 “다들 노숙자인 줄 안다”며 명랑하게도 웃는다. 

 

“한번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던 편의점 사장님이 제 개인전엘 오신 거예요. 저를 보고는 너무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이 작업실에서만 20년이 넘었어요. 10분 거리에 있는 시장, 편의점, 빵집, 관공서 등 어디든 이러고 다니니 동네사람들이 노숙자인 줄 아셨더라고요.”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투영하고 반사하는가 하면 포용하고 묵상하게 하는 물을 소재로 하는 작가다. 물과 달항아리, 꽃과 자연 등을 주요 소재로 한 그의 최근작인 ‘Reflective’ 연작은 다양한 ‘중첩’으로 묵직하지만 한없는 ‘투명함’을 표현한다. 

“물은 이질적이고 안맞는 것들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걸 (캔버스 위에) 구체적인 이미지로 풀어내고 해체시켜 자연스럽게 연결해 하나가 되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싶었죠.”

특히 어둠 속에서 전혀 다른 빛을 내고 모양새를 띠는 그의 작품 속 달 항아리를 비롯한 그릇은 모두가 그 존재 자체로 인정받아 마땅한 다양성의 투영과도 같다. 

“저를 투영하는 느낌의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릇이 큰 것도, 넓은 것도 있지만 사실은 작은 종지도 제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일이나 물, 자연에 동화돼 내가 담을 수 있는 만큼만 담아보자 해서 다양한 그릇을 그려 넣기 시작했죠. 늘 스스로 반성하면서 살고 있는 저의 투영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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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주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이어 “그릇을 따로 그리고 물의 느낌을 살리면서 정물처럼 그리다가 최근 2년여는 그릇 안에 담은 이미지를 많이 그렸다”며 “올해부터는 그릇의 선명도를 줄이고 안개 낀 새벽 느낌의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에어스프레이로 이미지를 흐리게, 보일 듯 말 듯 아련한 느낌을 살려 작업하고 있어요. 한 가지를 꾸준히 파는 것 보다는 조금씩이라도 변화하고 또 한동안 흐르다가 변화하고…어떤 틀이 없는 것 같아요. 저에겐. 그 변화 중에서도 변함없는 ‘물선’이에요. 저만의 드로잉 선을 넣는 게 너무 재밌어요. 전반적으로 들어가는 자유로운 그 선들은 아직까지 변하지 않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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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주 작가의 ‘Reflective’ 연작(사진=본인 제공)

아크릴물감, 에어스프레이, 레진(Resin), 비즈(Beads) 등을 활용한 그만의 작법은 유연하고 흐르는 대로 흘러가며 만물을 포용하는 물을 닮았다.

 

그 물은 고요하지만 열정을 내포한, 곧 뿜어낼 에너지를 품은 듯 빛나는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연상시키며 그 자신의 투영이기도 하다. 

 

“제 고향이 마산이에요. 저희 집은 바닷가도 아니었고 자라면서 어시장을 가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도 바람이 불면 바다내음이 났어요. 자연스레 고향의 바다,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고…그래선지 물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립고 가고픈 바다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마산 문신미술관 아래, 딸만 다섯인 약국집 맏이로 태어난 그는 부모에게는 자랑스럽고 믿음직한 모범생 딸이었다. 동생들에겐 서울에서의 대학입시 내내 도시락을 챙겨주고 뒷바라지해준 든든하고도 고마운 존재였다. 말썽 한번 부리지 않고 순종적이던 맏딸은 당연히 약대에 입학해 약국을 이어받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존재였다. 

 

거리의 부랑자들에 눈물 흘리기 일쑤에 누군가 아프면 약국의 약을 몰래 가져다 먹이는, 스스로의 표현을 빌자면 “뭐든 과하게 공감하는” 그는 어린시절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왔다. 

초등학교 때는 종이인형과 인형 옷을 그려달라는 친구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술교사의 권유로 미술관, 신문사 등에서 주최하는 그림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곤 했다. “다행히 수학과 과학을 완전 좋아해서 약대 아니면 수학과를 갈 생각”이었던 그가 부모를 거스른 건 딱 한번, 미대 진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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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주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당연히 약대에 가야한다고 저도, 부모님도 믿었죠. 하지만 미술이 너무 좋았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엄마한테 말했어요. 1년만 미술 학원에 보내달라고. 그렇게 아버지 몰래 학원엘 갔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사실 입시 미술이라는 게 비례거든요. 7, 8년 공부한 애들도 너무 힘들어 하는데 수학, 과학 등을 좋아했고 이과 입시를 준비했던 저로서는 분할과 비례가 너무 쉬웠어요.”

당시만 해도 우열반으로 나뉘던 학교에서 당연하게도 ‘우’반에 속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던 그는 반 친구들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미대에 입학했다. ‘중첩’과 ‘투명함’이 공존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수학과 과학 원리를 활용한 그만의 재료 배합으로 가능해진, 어쩌면 그 스스로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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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주 작가의 ‘Reflective’ 연작(사진=본인 제공)

 

“제 경쟁력은 성실함이에요. 맏딸로서의 책임감, 가정을 지키려는 안간힘, 건강 등 개인적인 문제로 절망하는 순간들이 한꺼번에 몰아치기도 하고 잊을만 하면 닥치기도 하곤 했어요. 정말 너무 힘들어서 위험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도 있죠. 그렇게 한없이 가라앉다 엄지발가락이 물 바닥에 닿는 순간 올라갈 힘이 생기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수면 위로 올라갈 힘이 돼준 것이 그림이었다. “그림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게 제일 잘한 선택”이라는 그는 “늘 ‘그림이 아니면 못산다’는 생각으로 정말 더 많은 시간을 절실하게 작업하는 데 매달리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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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주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11월 구구갤러리 초대전을 비롯해 내년 3월 연남동 제이십사 갤러리 전시 그리고 내년 두바이 엑스포 참가 등을 제안 받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미술계에서는 흔치 않게 액자까지 직접 칠하는 작가다. 


“지금까지 그림을 그려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그는 그림 외에는 실수투성이의, 자타공인 ‘허당’이다. 

작업실 역시 멋들어진 전시공간, 세련된 인테리어 등 보다는 우직하고 성실하게 걸어온 그의 행보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린 작품들과 자료들이 투박하게 꽉 들어차 있다.    

 

“전 다른 건 몰라요. 그저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좋아서 최선을 다해 묵묵히 작업할 뿐이죠. 그렇게 좋아서 그리는 그림을 적지 않은 분들이, 해외에서도 찾아주시니 더는 바랄 게 없어요.”

이어 “그릴 수만 있다면 캔버스랑 물감만 있어도 즐거울 것 같다”며 “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제 그림을 좋아해주시고 소장하고 계신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책임감 또한 커진다”고 말을 보탰다.  

“그분들을 위해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릴 거예요. 나중에 제 작품이 종잇조각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남편과 딸, 주변 사람들에게 선언했어요. 여태까지 20여년을 최선을 다해 가정에 보탬이 되고 결혼생활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진짜 열심히 살았으니 앞으로 20년은 나를 위해 살 거라고. 매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림을 생각하면서, 하루 서너 시간 자고 10시간 넘게씩 작업하면서. 그렇게 살 거예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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