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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내가 악령이라고? 세계 최초 의사야!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고병수의 '영화관에서 만나는 의학의 세계'

입력 2023-08-19 07:00 | 신문게재 2023-08-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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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이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투 더 본' '로망' '지킬박사와 하이드' '내사랑'.(사진제공=네이버·다음 영화, 넷플릭스)

 

저자는 2~3일에 한 편 씩 영화를 본다는 ‘영화 마니아’ 의사다. 영화를 보다가 의사의 시각에서 특이하게 보이거나 종종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 눈에 띄었고, 그러다 우리 일상과 맞닿은 질병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으로 묶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독자들이 그저 무심코 보았던 영화들을 의학적 정보와 지식을 더해 다시 본다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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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만나는 의학의 세계|고병수|바틀비

◇ 이집트에서 시작된 고대 문명의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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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기록에 남은 인류 최초의 의사는 기원전 2600년대에 이집트에서 활동했던 ‘임호테프(Imhotep)’로 전해진다. 그는 피라미드디를 건설한 대사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 <미이라>에서 그는 미개한 악당이자 악령으로 묘사되었다.

 

‘의학’이라고 부를 만한 첫 기록은 고대 이집트에서 나왔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의사들은 산과와 부인과, 직장과 항문, 머리, 안과, 치과 등으로 의료분야를 전문화해 질병을 다루었다”고 했다. 최초의 의사는 이집트 대사장으로 피라미드를 건설하며 기원전 2600년대에 활동했던 ‘임호테프(Imhotep)’로 전해진다. 그의 기념관이 있을 정도로 신성시되는 인물이다.

이집트 의학이 널리 알려진 것은 1800년대 말 파피루스 연구 덕분이다. 1862년에 발견된 ‘에드윈 파피루스’에 당시 전문의료 지식과 함께 수준 높은 외상 치료 기록들과 여성의사 활동상까지 담겨 있다. 저자는 “이집트가 있었기에 히포크라테스도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 <미이라>(1999)에서 임호테프는 그저 미개한 악당이자 악령으로 묘사되었다.


◇ 알코올 중독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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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선 보인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알코올 중독에 따른 블랙 아웃(Black-out)이 반복되면 치명적인 뇌손상을 입을 수 있다. 만성 알코올 중독이면 비타민 B1(티아민) 부족에 따른 인지장애로 치매 상태가 되거나 보행 장애를 일으킨다. 심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메탄올을 물에 희석해 마시다 실명하거나 사망하기도 한다. 최악은 ‘간경화에 의한 식도정맥류’다. 출혈 부위를 못 찾아 과다출혈로 죽는다.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1995)는 알코올의 급성 및 만성 중독의 폐해를 잘 연출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1994)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아픔과 갈등이 잘 표현됐다. 저자는 “술을 마실 수록 주량이 늘고, 알코올 분해능력도 나아진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이는 그저 몸이 적응한 결과일 뿐”이라며 주의를 당부한다.


◇ ‘내 안의 또 다른 나’ 해리성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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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작 ‘지킬박사와 하이드’. 이 영화를 계기로 정신의학계에서도 정신질환에 대한 기념이 정립되었다고 한다.

 

<마음의 행로>(1942)는 1차 세계대전 때 부상으로 언어장애를 수반하는 ‘해리성 기억상실’에 빠졌던 주인공이 연인의 도움으로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브의 세 얼굴>(1957)은 내면에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2002년에 나온 <지킬박사와 하이드>였다. 이 영화 이후 정신의학계에서도 정신질환에 대한 기념이 정립되었다.

이 병은 정상으로 돌이키기는 쉽지 않지만 최면요법이나 자유연상, 지지요법 등을 활용해 치료한다. 자신이 변했다고 느끼는 ‘이인증’, 외부 세계가 달라졌다는 비현실감을 느끼는 ‘비현실적 장애’도 비교적 흔하게 겪는 현상이다. 어린 시절 정서적 학대나 방치 등 정신적 외상을 겪은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 우울증은 정말 감기 같은 병일까

2015년작 <데몰리션>은 부인을 잃은 상실감으로 우울증에 빠져 괴이한 행동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우울증은 전 세계적으로 성인의 5%가 겪는다. 20대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유병률이 높다고 한다.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감이 생긴다. 1977년 ‘프로작’이라는 혁신적인 치료제가 나와 우울증과 신경성 폭식장애, 공황장애 치료 등에 널리 쓰인다.

세로토닌이 만드는 ‘트립토판’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 달걀 흰자와 우유, 치즈, 연어와 함께 아몬드나 땅콩, 해바라가 씨 같은 견과류와 두부나 낫토 같은 콩류, 그리고 시금치나 바나나 등이 추천된다. 비타민이나 효소 등의 영양분, 햇빛이나 좋은 감정, 운동 등도 트립토판의 세로토닌 전환에 도움을 준다.


◇ 먹지 않는 걸까, 먹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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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더 본’은 다양한 섭식장애를 가진 7명의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거식증 등이 얼마나 괴롭고 치료가 어려운 병인 지를 잘 보여준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안 먹으려는 병적인 섭식장애를 ‘거식증(拒食症)’이라고 한다. <투 더 본>(2017)은 다양한 섭식장애를 가진 7명의 젊은이를 통해 이것이 얼마나 괴롭고 치료가 어려운 병인 지를 보여준다. To the bone은 ‘가죽이 뼈에 달라붙을 때까지 안 먹겠다’는 뜻이다.

‘신경성 대식증’도 있다. 폭식 후 체중 느는 게 두려워 음식을 게워낸다거나 설사 유발약품을 남용하는 증상이다. 자신을 혐오하고 창피하게 여겨 우울감을 느끼는 ‘폭식장애’도 있다. 이런 때는 가족 치료가 제일 효과가 좋다고 한다. 저자는 “환자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도록 옆에서 살펴주고 격려해 주고 지지해 치료에 적극 나서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 욱하는 성질은 분노조절장애인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은 정신의학과 교과서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영화다. 분노조절장애 등 여러 정신질환적 증상과 치료법이 등장한다. ‘실버라이닝’이란 햇빛이 구름 뒤에 있을 때 구름 가장자리로 번져 나오는 은색 선을 말한다. 어두운 현실 뒤에 드러나는 희망을 의미한다. 미국 통계에는 평생에 한 번 정도 분노조절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5% 내외라고 한다.

다행히도 양극성 장애는 조현병보다 치료 효과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지나치게 에너지가 넘쳐 과잉행동을 보인다면 진정제나 항 우울제, 조현병 약물 등의 치료가 필요하다. 강박장애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100명 당 2명 꼴로 갖고 있는 증상이다. 대개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기에 발생한다고 한다.


◇ 치매는 나이가 들어야만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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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로빈의 소원’은 루이소체 치매에 걸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헐리우드 유명 배우 로빈 월리엄스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한국 영화 <로망>(2019)는 치매에 걸린 노부부를 통해 우리 노인의 현실을 살펴보게 한다. 다큐멘터리 <로빈의 소원>(2021)은 특정 단백질이 쌓여 생기는 ‘루이소체 치매’에 걸린 유명 배우 로빈 월리엄스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를 추적했다. 그의 소원이 ‘뇌의 재부팅’이었다. 치매는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병이다.

치매 중에는 나이가 들며 생기는 ‘알츠하이머’가 가장 많다. 유전 경향성은 5%로 낮다. 이어 혈관성 치매와 루이소체 치매 순이다.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베타 아밀로이드나 타우 단백질은 뇌에 쌓여 뇌 신경세포를 서서히 죽인다. 나이가 많을수록, 여성일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치매 위험이 높다. 요즘은 젊은 층에서도 치매 발병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 류머티즘 관절염은 왜 불치병일까

관절염은 네 다리 동물이라면 누구나 겪는 병이다. 나이가 들어 닳아 생기는 퇴행성 관절염, 염증으로 관절이 망가지는 류머티즘 관절염이 대표적이다. <내 사랑>(2016)은 실존 인물인 실존 화가 루이스의 일생을 담은 영화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걷기는커녕 손으로 물건 쥐는 것조차 힘들지만 동심을 부르는 그의 밝고 화사한 그림은 큰 호평을 받았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기원 전 1500년 경 이집트의 파피루스 기록에도 남아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팔꿈치나 손가락 피부에 결절을 만들거나 혈관에 영향을 주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유발하기도 한다. 폐 섬유화가 진행되면 호흡부전이나 빈혈을 부르기도 한다. 근본적인 치료보다는 병의 진행을 늦추고 염증을 줄이는 것이 차선이라고 한다.


◇ 늙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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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의 얼굴로 태어난 주인공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결국 아이가 되어 버린다는 이색적인 줄거리다.

 

최근 인정받는 노화 예정론이 ‘텔로미어 가설’이다. 몸속 세포의 염색체 끝 부문마다 이 DNA 조각이 있는데, DNA가 복제될 때마다 소모되어 완전히 없어지면 세포분열이 멈추고 세포가 사멸된다. 그것이 노화이고 생명의 죽음이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지 않게 복구하면 생명 연장의 꿈도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 속에 최근 생명공학 연구가 이쪽에 집중되고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는 삶과 죽음의 의미, 태어남과 늙어감의 의미를 차분하게 돌아보게 한다. 노인의 얼굴로 태어난 주인공이 시간이 갈수록 더 젊고 튼튼해져 결국 아이가 되어 버린다는 줄거리다. 저자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남편 벤자민과 산책하는 할머니(부인)의 뒷 모습이 우리 인생을 느끼게 해 준다”고 적었다.


◇ 안락사는 조력일까 살인일까

<아들에게>(2020)는 말기 암 환자의 심리상태와 호스피스, 존엄사, 안락사 문제에 시사점을 던진다. 4기 말기 암이 되면 더는 치료가 불가능해 호스피스 혹은 완화의학 같은 돌봄 체계가 동원된다. 호스피스 운동은 영국의 간호사 겸 의사 시슬리 손더스가 처음 제창했다. 그는 1976년에 세계 최초의 호스피스 병원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센터’를 설립했다.

완화의학은 캐나다 의사 벨포어 마운트가 주창했다.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통증이나 신체적 문제를 조기에 찾아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돕는 치료법이다. 말기 환자들은 존엄사나 안락사를 택하기도 한다. 우리도 2016년 존엄사 관련 법률이 만들어졌다. 다만, 안락사는 ‘의사 조력 자살’이라며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금지하고 있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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