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비바100] '검은 황금'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애플TV+ '플라워 킬링 문'

[#OTT] 애플TV+ 영화 '플라워 킬링 문'
아무도 들여다 보지 못한 '원주민의 비극' 정면응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화면에 담은 디카프리오와 드니로 연기대결 일품
3시간 26분 긴 러닝타임 지루할 틈 없어

입력 2023-11-01 18:30 | 신문게재 2023-11-02 11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플라워킬링문4
머리를 길게 땋은 인디언들을 기꺼이 모시는 백인들의 광기가 작품 내내 가득차 있는 ‘플라워 킬링 문’. (사진제공=애플TV)

 

여기 꽃같이 예쁜 네명의 자매가 있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그들에게는 평생 일하지 않아도 몇대가 먹고 살 수 있을 ‘오일머니’ 소유권이 있다. 잘생기고 다정한 남편과 올망졸망한 아이들까지. 이들이 미국 오세이지족(族) 원주민이란 사실만 제외하면 할리우드에서 흔히 볼 법한 백인가족의 비극을 다룬 영화에 그쳤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81)의 신작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은 검은 황금이라 불렸던 석유의 땅을 소유했던 원주민들이 수년에 걸쳐 계획적으로 살해된 실화를 다룬다.

1920년대 1인당 소득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던 그들은 가정부와 운전사 그리고 보모까지 두고 풍요롭게 살았지만 순혈일수록 50살을 넘지못하고 단명한다. 이주민인 백인과 혈통이 섞이면서 대대손손 잘 살 것 같았지만 자살 혹은 사고 아니면 의심스런 폭발로 인해 점점 그 수가 감소한다.

 

플라워킬링문5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소설 ‘플라워 문’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의 공식 포스터. 마틴 스코세이지가 도전한 웨스턴영화로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사진제공=애플TV)

 

모두가 20대 초반이나 30대에 건강상의 이유 없이 죽었지만 제대로 된 수사는 없었다. 당시 백인들에게 인디언의 죽음은 지나가던 개를 발로 차는 것보다 흔한 일로 취급됐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오세이지족의 오랜 친구인 킹(로버트 드니로)은 전쟁에 나가 빈둥거리던 조카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오클라호마로 불러들인다. 게으르고 아둔하지만 외모만큼은 출중했던 그를 순혈 인디언인 몰리(릴리 글래드스톤)에게 소개시키는 게 킹의 계획이었다.

원주민과의 결혼이 집안 재산을 증식시키고 지키는 거라 믿었지만 당시는 흑인들과 화장실을 같이 쓰는 일조차 모욕이었던 시절이다. ‘플라워 킬링 문’은 KKK단이 조직되고 인종 차별로 인해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무성영화의 뉴스로 등장시킨다. 즉 오세이지족도 엄청난 땅과 석유, 돈만 아니라면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존재였던 것.

 

플라워킬링문3
결국 아내의 당뇨병을 고치기 위해 전세계에서 다섯 명만 쓸 수 있다는 신약 인슐린에 약을 타기 시작하는 어니스트와 그를 가스라이팅한 삼촌 킹을 추적하기 시작한 FBI요원들. 석양이 지는 대지 위에 보이는 석유 시추탑의 기괴함을 통해 추락하는 인간의 욕망을 아우른다. (사진제공=애플TV)

 

몰리의 아버지가 죽으며 남긴 땅의 소유권과 재산은 아내와 딸에게 모두 상속됐지만 이상하게 집안의 우환은 끊이지 않는다. 큰언니는 강도의 총에 맞은채 산속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막내는 시름시름 앓다 일찍 세상을 뜬다. 그 충격으로 지병이 있던 엄마도 사망하고 남편 어니스트만이 유일한 위안이 된다.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가 살아갈 용기를 준 것이다.

그 사이 킹은 어니스트에게 몰리의 막내 제부가 마지막 남은 여동생과 사랑에 빠져 결혼해 상속을 이어간 사실을 상기시킨다. “장모와 처제가 죽은 만큼 몰리의 상속분이 늘어난다”는 말이 뭘 뜻하는지 알게 된 그는 결국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에 올라탄다.

 

플라워킬링문
올해 5월 칸국제영화제 최초 상영 때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이 작품은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로 평가될듯 하다. 짧은 등장이지만 수사국 요원 톰 화이트(제시 플레먼스)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사진제공=애플TV)

 

석유로 인해 시작된 인디언의 비극을 ‘플라워 킬링 문’만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써부터 내년 오스카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오펜하이머’와 함께 작품성과 화제성 모두를 거머쥔 상태다. 대대로 인디언 땅으로 불린 미국의 태생적 야비함이야말로 이 작품을 보는 짜릿함이다. 대놓고 ‘후지고 후진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보라’고 외치는 몇몇 장면에는 박수가 절로 나온다. 극 중 몰리가 은행에 가서 자신이 금치산자임을 밝히며 관리번호를 대는 장면은 정부가 인디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순수혈통일수록 법적으로 백인재정후견인을 둬야 했고 자신의 재산임에도 그들의 허락 하에 돈을 인출할 수 있었다. 후견인들의 착복은 비일비재. 죽어서 들어가는 관조차 인디언들에게만 통용되는 가격이 따로 있을 정도로 거품이 심했다.

 

플라워킬링문1
몰리(왼쪽 두번째) 역의 주연 배우 릴리 글래드스톤도 미국 원주민 출신 배우다. (사진제공=애플TV)

 

2017년 아마존 ‘올해의 책’ 종합 1위에 오른 영화의 원작을 처음 발견한 건 제작자이자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갱스 오브 뉴욕’ ‘디파티드’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통해 제2의 아버지로 여기는 거장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로버트 드니로까지 가세하며 애플TV+가 할리우드 최대 규모 제작비 2억 달러(약 2700억원)를 투자, 세 사림을 한 화면에 담는 기적을 이뤄냈다.

영화의 엔딩이 주는 액자식 구성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여전히 트렌디함을 증명한다. 권력의 대명사 J. 에드거 후버로 대표되던 미연방수사국(FBI)의 위엄이 보여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성우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후일담을 ‘입’으로 전달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대사로 전해지는 연출기법에 터진 폭소는 206분의 긴 러닝타임을 충분히 견디게 만든다. 지난 19일 국내 개봉한 상태로 전세계 애플TV+ 공개는 조율 중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