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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영화 '파묘'의 파죽지세 흥행을 보니 생각나는 영화 '유령'

[#OTT] '파묘' 관객이 찾아 보면 좋을 영화 '유령'
'스타군단' 대거 출연한 항일영화, 66만 명에 그친 뒤 OTT행

입력 2024-03-06 18:30 | 신문게재 2024-03-0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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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8일 개봉한 역사, 첩보, 스릴러 장르 영화 ‘유령’의 한 장면. (사진제공=CJ ENM)

 

영화 ‘파묘’의 흥행세가 거세다. 파죽지세로 극장가를 점령하더니 1000만 영화 ‘서울의 봄’과 비교되는 모양새다. 삼일절 연휴간 압도적인 수치로 관객들을 모으며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22일 개봉한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영화계에서는 묫자리, 이장, 풍수지리, 무속 신앙 등으로 무장한 ‘파묘’가 올해 첫 번째 1000만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비수기로 통하는 2~3월 극장가의 오랜 공식을 깬 일등공신은 새로운 2030과 이에 익숙한 50대 이상까지 폭넓다. 무엇보다 영화 곳곳에 심어져 있는 항일 메시지가 관객층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다. 

극 중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의 이름은 상덕, 영근, 화림, 봉길이다.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함께 탄 차번호 뒷자리는 0815. 무당 화림과 신제자 봉길이 탄 차번호 뒷자리는 0301, 시신을 옮기는 운구차의 차번호 뒷자리는 1945로 광복의 해를 뜻한다. 발빠른 네티즌들은 “상덕은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김상덕과 연결된다. 영근은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고영근, 화림은 조선의용군 부대장이었던 이화림과 상하이 의거 후 2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윤봉길이 맞다”며 흥행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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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가 쓴 모자 각도, 비오는 풍경, 빨간 립스틱 등 미장센 하나까지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도 어쩌면 그간 항일영화가 보여준 춥고 투박한 감정에 어울리지 않은 것일까. (사진제공=CJ ENM)

 

무덤에서는 절대 나오면 안되는 ‘험한 것’이 나오면서 벌어지는 일제시대의 비극은 자연스럽게 다른 ‘항일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 중 이해영 감독의 ‘유령’은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서현우 등 ‘스타군단’들의 출연에도 고작(?) 66만명 이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일찌감치 OTT행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만듦새와 배우들의 열연만 보더라도 ‘흥행은 신의 영역’이라는 업계 속설이 마냥 야속하기만 하다.

티빙, 왓챠,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유령’은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항일조직 ‘흑색단’의 스파이인 유령은 성별도 나이도 아무도 모르는 스파이다. 아무리 모진 고문을 해도 잡혀온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입을 다문다. 어쩌면 이들조차 누가 유령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이에 새로 부임한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는 총독 암살 시도를 막기 위해 덫을 치기로 결심한다. 외딴 섬에 불려진 이들은 황당할 뿐이다.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쥰지(설경구), 암호문 기록 담당 박차경(이하늬), 정무총감 비서이자 애인인 유리코(박소담),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서현우)는 모두 무죄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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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들의 변신과 첩보전의 긴장감을 담은 ‘유령’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CJ ENM)

 

영화는 한국인 어머니를 둔 쥰지와 그의 경쟁자 카이토의 묘한 감정 사이로 여러 복선을 교차시킨다. 그 중 유리코는 알리바이가 확실하다. 변태 총감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그는 엘리트 가문 출신인 차경과 묘한 기싸움을 한다. 기필코 살아나가 동지들을 구하고 총독 암살 작전을 성공시켜야 하는 ‘유령’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 사이에서 배경이 되는 호텔은 그로테스크하기 그지 없다.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듯한 천계장의 존재는 감초 이상이다. 당시에는 드물게 혼자 살며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로 영화에서 유일한 코믹함을 담당하지만 괴랄한 죽음으로 폭소를 자아낸다. 자신이 갇힌 것도 모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새로운 애첩이자 비서(비비)가 채용됐다는 사실에 결국 폭발한 유리코는 ‘유령’의 본격적인 활약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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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는 “캐릭터가 가진 컬플렉스, 부모의 혈통,정체성의 혼란등을 보며 유령으로 보이고 싶었다”고 당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밝히기도. (사진제공=CJ ENM)

 

영화에는 카메오라고 부를 수 없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솜, 이주영, 김종수의 묵직한 연기가 항일영화 특유의 벅차오르는 감정에 기름을 붓는다. 무엇보다 ‘독전’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 ‘천하장사 마돈나’ 등의 이해영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이 단연코 빛난다. 

부드러운 손길은 아니지만 툭툭 친 어깨 토탁임에 눈물이 쏟아지는 묘한 연대감이 후반부에 가득하다. “나라 팔아 먹은 사람은 그렇게 다치지 않아요, 지키려는 사람이 다치지”라며 부상당한 유령을 단번에 간파하는 수녀의 짧은 대사도 결정적인 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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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 하나하나에도 캐릭터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자기애가 강한 천계장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사진제공=CJ ENM)

 

중국 작가 마이자의 소설인 ‘풍성’을 원작으로 한 ‘유령’은 이미 중국에서 ‘바람의 소리’로 한 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그렇다고 ‘나이브스 아웃’(2019)이나 ‘오리엔트 특급살인’(2017) 같이 관객의 추리를 유도하는 연출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이 감독은 “유령의 탈을 쓴 사람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담고 싶었다. 동시에 대의를 위해 싸우는 스릴과 쾌감을 전달하고자 남성과 맞붙어도 지지않을 배우들의 액션을 살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아리송한 말은 ‘유령’을 직접 보고 다시 읽는다면 무릎을 ‘탁’치게 될 스포일러다. “성별의 대결로 보이길 원하지 않았다. 흡사 계급장을 떼고 붙는다는 말처럼 ‘여성이어서’ 또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제를 달지 않는, 몸과 몸, 기와 기가 부딪혀 땀 냄새, 피 냄새가 물씬 났으면 했다”는 연출의도를 간파한다면 누가 유령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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