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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그 존재마저 희미해진 이들의 연대, 그래서 다정할 미래…연극 ‘천 개의 파랑’

[Culture Board] 연극 ‘천 개의 파랑’… 로봇배우 출연

입력 2024-04-03 18:00 | 신문게재 2024-04-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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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제공=국립극단)

 

국립극단 74년 역사상 로봇 배우의 첫 등장이다. 연극 ‘천 개의 파랑’(4월 16~28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으로 국립극단의 로봇 배우 ‘콜리’가 무대에 데뷔한다. 

 

연극 ‘천 개의 파랑’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기술들이 진보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그 기술들과 미래가 배제하고 지나쳐버림으로서 희미해진 존재들을 직시하는 천선란 작가의 동명 SF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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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 원작소설(사진제공=허블)

5월에는 서울예술단이 이 소설을 바탕으로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5월 12~2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초연을 준비 중이니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전망이다. 

 

‘천 개의 파랑’은 경마장에도 사람들이 다칠까 혹은 무거워 한껏 달리지 못하는 말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휴머노이드 기수가 도입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한편에서는 소방서도 인공지능(AI) 로봇들이 주축을 이루고 인간 소방관들에 대한 예산이 줄면서 낡은 방화복을 입고 불과 맞서다 죽음을 맞이하는 시대에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2023년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인 ‘창작공감: 연출’ 공모 선정작으로 ‘햄버거를 먹다가 생각날 이야기’ ‘어부의 핵’ ‘마운트’ 등 로봇을 통해 고도화된 기술, 초연결세계로 발생할 현상들을 다뤄온 장한새 연출,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 등의 김도영 작가 등이 함께 한다. 

 

한때는 최고 몸값을 자랑했지만 관절을 심하게 다쳐 달릴 수 없게 된 경주마 투데이, 어릴 적 병으로 장애를 갖게 돼 휠체어를 탄 소녀 은혜(류이재), 누군가의 우연과 실수로 인지학습능력 칩이 장착돼 투데이의 고통이 느껴져 스스로 낙마하는 통에 하반신이 부서져 버린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김예은과 로봇 콜리), 로봇 분야의 천재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살림에 꿈을 접어야만 하는 연재(최하윤), 낡은 방화복 차림으로 화재현장에 출동했다 죽음을 맞은 남편에 대한 애도를 끝없이 반복하는 은혜와 연재의 엄마 보경(김현정)…. 

 

이처럼 소외되고 상처입고 약해진 이들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 버려진 콜리, 안락사를 당하기 직전의 투데이와 깊은 교감을 나누면서 연대하는 이야기다. 달릴 때 가장 행복했던 투데이의 안락사 논의를 알게 된 은혜와 연재, 동물을 치료하는 의사 복희(허이래), 경마장 직원 민주(윤성원) 등은 투데이를 다시 주로에 세우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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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제공=국립극단)

 

인간이 설 자리를 침략(?)하는 로봇과 기술,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디스토피아는 ‘연대’를 통해 인류만 중시하던 때보다 훨씬 다정하고 따스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이야기다. 안락사 위기의 경주마 이름이 ‘투데이’인 것도, 그와 깊이 교감하며 다시 세우기 위해 연대하는 이들의 사연들도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브로콜리 색의 몸통을 가져 '콜리'로 불리는 C-27은 인간 배우 김예은과 145cm의 키, 브로콜리 색 몸통, LED 얼굴, 스피커를 장착한 가슴 등을 가졌고 상반신, 팔, 손목, 목 등 관절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반자동 퍼펫 형태의 로봇 배우 콜리가 함께 무대에 올라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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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제공=국립극단)

 

국립극단 관계자에 따르면 “연출적 의도에 따라 두 배우는 번갈아 혹은 함께 연기한다.” 오작동을 대비하는 콜리의 커버 배우도 준비 중이라는 연극 ‘천 개의 파랑’은 애초 4일 개막 예정이었으나 2일 리허설 중 로봇 배우의 기술적 오류가 발견돼 16일로 연기됐다. 

 

콜리의 기술적 오류을 개선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열흘 간 연극 관계자 및 기술자들은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이 과정 또한 인간과 로봇의 연대일지도 모른다. 원작소설의 출발점이었던, 천선란 작가가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둔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문장을 되새기면서. 좀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토닥이고 위로하면서.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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