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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리뷰] 막심 벤게로프 바이올린 리사이틀 ‘느리게 빠르게 느리게 빠르게’…그렇게 삶을 닮았다

입력 2024-04-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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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B

 

리게 빠르게 느리게 빠르게.

마냥 느리지만도, 또 마냥 빠르지만도 않은 삶은 그렇게 흐른다. 그 ‘느리게’ 중에는 평화와 고요가 있는가 하면 침잠과 고난, 절망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빠르게’ 역시 환희와 설렘이 있는가 하면 폭풍과도 같은 긴박함과 생사의 기로에서 겪는 혼돈이 담겼다.

8년만에 한국 무대에 오른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Maxim Vengerov) 리사이틀(4월 9일 롯데콘서트홀)은 그렇게 삶의 순환과도 같은 프로그램이었고 연주였다.  

 

막심 벤게로프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사진제공=롯데콘서트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의 ‘5개의 멜로디’(Five Melodies for Violin and Piano, Op. 35)부터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1단조’(Violin Sonata No. 1 f minor, Op. 80), 세자르 프랑크(Cesar Franck) ‘바이올린 소나타 A 장조’(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Major),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치칸느’(Tzigane for Violin and Piano).

그리고 이어진 앙코르에서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보칼리제’(Vocalise), 프로코피예프 ‘세개의 오렌지에의 사랑’ 중 ‘행진곡’(The Love For Three Orange-March),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사랑의 기쁨’(Liebesfreud),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43) 중 18번까지.

끊어진 활줄을 아무렇지도 않게 뜯어내면서 태연히 연주하는 그는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했던 “활은 내 오른손의 연장이고 악기는 내 영혼의 연장”이라던 말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벤게로프 뿐 아니라 그와 한몸같은 피아니스트 폴리나 오세틴스카야(Polina Osetinskaya)과의 호흡까지 그야말로 완벽했다. 서정적이면서도 파워풀하게,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게. 테크닉이 보장된 거장 비르투오소들의 합은 절로 터져나오는 감탄을 삼키느라 애를 먹어야할 정도로 대단했다.

사인회가로 (2)
공연이 끝난 후 사인회 중인 막심 벤게로프(왼쪽)와 피아니스트 폴리나 오세틴스카야(사진제공=롯데콘서트홀)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2005년 어깨 부상으로 음악가로서의 행보를 멈춰야 했던 벤게로프의 인내는 분명 썼을 터다. 그런 그가 2년 만에 지휘자로 변신해 무대에 올랐고 비올라 연습을 병행하며 오히려 음악적 지평을 늘려 나타났다. 그리고 2011년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다시 무대에 섰고 다음해 진행된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리사이틀은 그의 완벽한 부활을 예고했다.

 

벤게로프의 쓰디쓴 인내 끝에 부피를 늘려온 열매가 그 자신에게도 단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마냥 느리지만도, 마냥 빠르지만도, 마냥 평온하거나 절망 일색이지만도 않은 삶을 담을 줄 아는 경지에 오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그는, 그의 연주는 삶을 그리고 언젠가는 올 환희를 닮았다. 그와 그의 파트너가 선사한 무대는 달디 달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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