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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외람되지만… 배우 김금순을 모른다고요?

[人더컬처] 영화 '정순' 김금순
오는 17일 개봉 앞둔 영화 '정순'에서 디지털 성범죄 희생자 된 중년여성役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는 주제 와닿아...더한 노출도 불사했을것"

입력 2024-04-15 18:00 | 신문게재 2024-04-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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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순11
전 세계 19개 영화제에 초청돼 총 8관왕을 기록하며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정순’은 배우 김금순의 첫 장편데뷔작이다. (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

 

서울 근교 소도시의 한 공장. 같은 임시직이지만 자식 뻘 보다 어린 20대 젊은 남성을 관리직으로 모시며(?) 명령을 받아야 한다. 극 중 정순(김금순)은 곧 결혼을 앞둔 딸을 둔 평범한 중년이다. 헤어진 남편을 닮아 무뚝뚝한 딸은 근처 폐차장에서 일하며 밝은 옷이라고는 잘 입지않고 또래다운 즐거움도 누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근면한 예비사위를 만나 곧 가정을 꾸릴 예정으로 노느니 집 근처 공장에 야간근무를 나선다. 

배우 김금순의 첫 장편 영화인 ‘정순’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여성이 결코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범죄에 노출되면서 닥친 일상을 그린다. 디즈니 플러스 ‘카지노’에서 한국에서 도망 온 범죄자, 영화 ‘잠’에서 신 들린 무당, ‘브로커’의 영아 밀매꾼 그리고 ‘LTNS’의 연상 바람녀까지 배우 김금순의 필모그래피는 그야말로 다채롭다.

영화 정순
중년의 남녀가 비밀스러운 관계를 즐기며 침대에서 모바일 카메라로 솔직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 그 순간이 공개되면서 바뀌는 남녀의 차이는 단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

 

“영화 ‘정순’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그간 현장에서 1회차 혹은 2회차 정도로 짧게 촬영하고 사라졌다면 사실상 제가 주인공인 첫 영화니까요. 무엇보다 감독님 미팅 전에 시나리오를 읽고 소재나 주제가 마음에 와닿아 무조건 한다고 했습니다.”

수락을 위해 나간 자리에는 20대 초반의 앳된 정지혜 감독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2017년 독립영화 ‘면도’를 시작으로 ‘매형기’ ‘버티고’를 만든 그는 자신이 실제 근무했던 공장에서의 경험, 거기서 만난 이모님들을 주인공으로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극 중 배경이 되는 식품공장에는 암묵적으로 이상한 서열이 존재한다. 쉽게 그만두고 마는 젊은이들보다 경력도 연륜도 흥도 더 많은데 신입과 비슷하거나 더 못한 곳에 배치받는 게 익숙하다. 포식자는 운영자의 총애를 받는 관리자 도윤(김최용준)으로 호감있는 여성에게는 편한 부서를 제안하고 헤어지거나 마음에 안들면 힘든 곳으로 돌리며 일명 ‘현대판 의자왕’으로 불린다.

“앳된 얼굴 감독님을 보는데 ‘어떻게 이렇게 묵직한 중년 여자의 스토리를 쓰셨을까’란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미디어 성폭행, 즉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많은 조사를 한 게 대화할수록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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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딸 역할을 맡은 윤금선아와는 실제 아이를 둔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친해졌다고. 실제 너무 닮은 모습에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

 

정순은 비슷한 나이대의 영수(조현우)가 신입으로 들어와서도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저 많이 웃고 간식을 하나라도 더 나누면서 쉬는 날엔 동료들과 등산을 간다. 그러다 영수의 결핍에 기꺼이 손을 내밀며 어렵사리 둘은 연인이 된다. 하지만 둘 사이의 농밀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영수에 의해 공장 사람들에게 공유되면서 정순의 삶은 그야말로 산산조각난다. 

이에 김금순은 “나이를 먹을수록 지나가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를 보면서 내 모습이 투영될 때를 느낀다. 가끔은 너무 수다스럽고 뭔가 외로운 감정들이 보일 때가 있다. 솔직히 더한 노출이 있었어도 했을 거다. 가슴노출도 불사하겠노라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관객들을 배려해 요구하지 않으신 게 아닐까”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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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하기 위해 찾아온 전 연인이자 가해자의 민낯을 빤히 보는 정순. 용서만이 답이 아님을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

 

도윤의 무시와 조롱에 홧김에 공개한 영수의 휴대폰 속 정순은 그가 사는 달방 모텔에서 드라이빗을 마이크 삼아 간드러지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검은 속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매끈한 몸매는 아니지만 육덕진 매력이 화면 가득 담긴다. 김금순은 “노출신이 있는 걸 알고 일부러 살을 찌우진 않았다. 다만 배우로서 해야 할 기본 관리는 포기한 채 촬영한 장면”이라고 수줍어했다. 

총 25회차.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 경상도 양산의 한 공장과 모텔은 영화 스태프들이 “김금순의 화양연화를 담겠다”는 일념 하에 조명부터 미술, 음악과 소품까지 디테일함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일까. ‘정순’은 제23회 전주국제 영화제의 대상, 같은 해 부산독립영화제를 섭렵한 뒤 제17회 로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화제를 모았다. 

중학교 때부터 연극반 활동을 하고 결혼 전까지 무대에 선 김금순은 결혼과 동시에 10년의 경력단절을 겪었다. 이에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한 게 쥐어짜도 안 나오는 연기가 있기 마련인데 나는 저절로 나오는 뭔가가 있다”고 단언했다.

“사실 감독님 복이 유독 많은 게 저예요. 배우는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항상 용기를 내요. 해내야지 밥을 먹고 살잖아요. 두 아들이 제 직업을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정순’을 찍으며 딸이라도 그랬겠지만 평생 공부해야 할 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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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정순은 조금씩 삶의 주체를 자신의 의지로 바꿔나간다. 이에 그는 “숨지 않고 결국 끝까지 살아나가는 여성상, 그 엔딩이 주는 희망이 좋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주)디스트리뷰션 )

 

김금순의 매력은 강렬한 눈매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데 있다. 때론 소녀같다가도 털털하기 그지없고 또 순박한 감정을 여지없이 표출해낸다. ‘브로커’를 함께 찍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의 연기를 보고는 “아이유랑 투샷을 준비했는데 등장 자체만으로 이미 캐릭터를 완성했다”며 나머지 촬영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자잘한 전사를 드러내기보다 신 자체를 씹어먹은 배우의 카리스마를 극찬했다고. 

“여든 일곱 되신 엄마가 저에게 늘 하신 말이 있어요. ‘좋아하는 거 다 하고 살라’고. 돌이켜보면 그 시대에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를 늘 틀어놓으며 제 안의 끼를 자극하셨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제인 ‘끝에는 늘 희망이 있다’는 걸 최대한 많은 관객들이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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