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문화 > Book

[창간 1주년 특별 인터뷰] 시인 신경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먼저 해야할 것은 소통"

입력 2015-09-15 17:17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신경림시인인터뷰
신경림 시인이 브릿지경제신문 창간 1주년을 앞두고 서울 정릉의 자택 서재에서 진행된 인터뷰 도중 소년처럼 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문제점을 해결하는 첫걸음은 ‘인정’이에요.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먼저 인정해야 비로소 해결책이 보이죠. 희망보다는 절망이 큰 현재는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사회가 모조리 관계있는 일이죠. 우리끼리 절망하고 헐뜯기보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를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모든 잘못은 자신 안에 있거든요.”

1956년 문화예술 ‘갈대’를 시작으로 60년 동안 시를 써온 신경림 시인은 화합과 소통을 강조한다. 시를 쓰면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만 난무하는 사회에 대한 고민의 끝은 언제나 ‘소통’과 ‘열린 마음’으로 귀결되곤 한다. 이는 고스란히 ‘길’, ‘농무’, ‘귀로’ 등 그의 시에 녹아들었다. ‘농무’의 시인 신경림을 만나 갈라진 한국 사회를 하나로 잇는 ‘길’에 대해 들어봤다.


◇변화의 시작은 다름에 대한 인정과 소통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 등의 이야기를 듣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서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은 안 바뀌면서 다른 사람만 바꾸려고 하죠. 세상의 변화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인정할 건 인정하는 동시에 그 사람이 지적하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성찰하는 데서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좋거나 나빠서가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죠.”

80세를 맞은 시인 신경림이 겪은 세상은 누구 한 사람이 앞장서서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가 꾸준히 뗀 한 발짝 한 발짝이 모여서야 바뀌곤 했다. 불행이 지배한 사회, 신구세대와 이데올로기 갈등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은 그래서 ‘소통’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나 조국, 세상과 인류를 위해 태어난 게 아니예요. 자신이 원한 바는 아니지만 한 개인으로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세상을 행복하게 할 의무를 가지고 있죠. 시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는 그를 힐난한다. 왜 세상을 위해, 대의를 위해 시를 쓰지 않냐고. 하지만 그는 목적을 가진 시는 ‘가짜’라고 단언한다.

“목적을 가진 시는 평화롭고 따뜻하게 읽힐 수 없어요. 목적을 가지고 쓴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 어떻게 읽히느냐 혹은 어떤 계기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민족을 위한 자산이 되고 평화로운 세상에 보탬이 되고 기여하면 좋은 거죠.”

그에게 시는 치열한 삶과 같은 뜻이다. 그래서 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학이다. 시에 대한 정의도, 좋은 시에 대한 기준도 제각각이다. 그런 시에서도 오로지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삶에 밀착하는 것이다.

“시는 설득되고 소통되는 ‘다른 생각’이예요. 남과 다른 생각과 시각으로 시를 쓰지만 설득이나 소통이 안되면 무슨 소용이예요. 결국 시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재미있고 설득력 있고 남에게 감동을 주려면 우리 삶과 동떨어져서는 안되죠.”


 

◇ 누구나 바라는 통일, 동시에 진행돼야 할 노동개혁과 재벌개혁 

 

신경림시인인터뷰2
시인 신경림(사진=양윤모 기자)

“통일을 안 바라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통일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사람은 또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흡수통일이나 일방적인 통일의 뉘앙스를 주는 건 오히려 역효과예요. 중요한 건 남북이 함께 성장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그 자체죠.”

이 역시 사회의 변화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신경림 시인의 지론과 일맥상통한다. 어느 한쪽만 바뀐다고 변화와 개혁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재벌들이 골목까지 진입하니 동네 상권은 사라져 버렸어요. 임금피크제 등 노동개혁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재벌개혁도 이뤄져야 해요. 어떤 개혁이 더 중요하고 선행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균형 있게 진행해야 하죠.”

을이던 사람도 갑이 되는 순간 ‘갑질’의 선봉에 선다. 재벌은 가진 것을 그대로 누리면서 노동개혁만을 부르짖는다. 빈익빈 부익부, 절대 갑과 영원한 을 등의 심화는 어느 한쪽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이는 곧 학벌 위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과 신분 승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교육에 들인 돈에 따라 학벌과 학교 성적이 판가름 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학벌 위주의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할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똑똑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는 건 당연하죠. 하지만 학교 성적 순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고 학벌이 곧 실력이라는 기준은 부모의 자본력이 곧 학벌이고 학교 성적으로 이어지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깨져야 할 편견이죠.”


◇사회 변화에 따라 문학도, 시도 진화해야

x9788959138968
일본의 국민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6개월 간 주고받은 대시를 엮은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가 한국과 일본에 동시 출간됐다.(사진제공=예담)

“눈에 보이는 경제, 성장 ….이런 데만 매몰하는 건 우리 삶에 전혀 도움이 안돼요. 삶의 가치는 폭 넓게 생각하고 고르게 추구해야 하죠. 예술이나 인문학이라는 게 당장 돈이 되 진 않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의 열쇠가 되기도 하거든요.”

‘인문학도라 미안합니다’라는 웃픈(웃다+슬프다) 유머가 나도는 현상에 대한 80세 시인의 조언은 경제성장과 인문학적 가치의 균형적인 추구다.

 

지나치게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 현상은 문학계마저 병들게 했다. 최근 불거진 표절 문제는 아프지만 의미가 깊다.

“이제 문학계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문학적 지향성이 상업주의에 묻혀 표절문제로 불거지고 있죠. 그렇다고 19세기 적 엄숙주의나 리얼리즘, 20세기 적 사회지향주의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사회 변화에 발 맞춰야 세상 사람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줄 수 있죠.”

이에 시인은 진지하진 않지만 경박하지도 않은, 더불어 예리하면서도 유쾌한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한국문학에 시사하는 바를 전한다. 
 

신경림 시인의 소통의지는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까지 뻗어갔다. 일본의 국민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지난해 1월부터 6개월간 주고받은 대시(對詩)가 책으로 엮은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가 한국과 일본에 동시출간됐다. 그는 나라도, 말도 다른 시인과 ‘시’를 매개로 소통하면서 문학과 시의 힘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시를 주고받는 동안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혐한과 반일로 한일관계는 복잡해졌죠. 글 쓰는 방식도 전혀 달랐지만 분명 통하는 걸 느꼈어요. 저는 과거 일본에 지배당하고 압박 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담았고 일본의 그는 자국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 반성의 기미를 표현했죠. 우리 같은 시인들이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면 냉랭해진 한일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문화인이자 예술인으로써 평화를 사랑하고 삶과 문화를 아끼는 두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그렇게 이어져 있었다.



◇평생을 을로 산 시인의 60년, “부족하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tlsrudljkajdkgkkjd
신경림 시인은 평생을 을로 살았고, 앞으로도 을로 살아가는 이 세상 대부분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사진=양윤모 기자)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저는 평생을 을로만 살아온 사람이예요. 돈벌이도 변변치 않았고 직위도 높지 않았으며 학교 성적도 뛰어나지 않았죠. 다만 제가 한 일은 시 몇 편 쓴 것 뿐이예요. 다른 욕심 안내고 지금까지 써온 시에 뒤 떨어지지 않는 시를 쓸 수 있기를, 제 시가 세상의 쓰레기 하나 더하는 시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그렇게 평생을 ‘을’로 살아온 80세의 시인은 을로 살아가는 이 세상 대부분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그냥 대한민국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현재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은 우리나라가 꼭 그렇다기 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걸 바라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