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문화 > 연극 · 뮤지컬

이번에도 "쾌하였도다!" 보다 한국적이고 신명나는 ‘판’ 벌립니다!

변정주 연출, 김길녀 음악감독, 이현정 안무가와 김지철, 유주혜, 김지훈, 최은실, 윤진영, 임소라 그리고 산받이 최영석
경기민용, 양주별산대 등 한국 색 더해 뮤지컬과 이종교배, 사회 풍자로 쾌하였도다!
경기민요 소리꾼 전영랑, 양주별산대 고기혁 선생과 워크샵으로 한국적 색 더해

입력 2017-11-24 19:2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OTH_0122
뮤지컬 ‘판’ 연습실.(사진제공=정동극장)

 

“단 한 신도 (배우) 여섯명이 다 참여하지 않는 신이 없어요.”

뮤지컬 ‘판’(12월 7~12월 31일 정동극장) 변정주 연출의 말 그대로였다. 때로는 달수(김지철), 이덕(유주혜), 호태(김지훈), 춘섬(최은실), 이조·사또(윤진영), 분이(임소라) 등으로 분하다 꼭두각시 인형을 조정하고 솟대쟁이 놀이의 일원이 되는가 하면 신명나게 박스를 두드리는 퍼포머가 되기도 한다. 배우들 뿐 아니라 산받이(극을 이끌어가는 연희자) 최영석마저 춘섬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몇몇 배우는 힘들어하기도 해요. 서양적인 연기로 접근하면 힘들고 어려운 극이에요. 자기 연기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함몰되지 않도록, 인형을 조정하듯 자기를 조정해야 하죠. 될 때까지 하는 수밖에 없어요.” 

 

Untitled-2
뮤지컬 ‘판’. 연습 중인 변정주 연출.(사진제공=정동극장)

23일 뮤지컬 ‘판’이 연습실을 공개했다. 변정주 연출이 장구와 징으로 이끈 연습에서는 9장 ‘내시의 아내’부터 ‘줄 위에 설 때면’ ‘매설방’ ‘평안감사 새 사냥’ ‘검열’ ‘달 그림자/그런 이야기’ ‘체포’ ‘새가 날아든다’ ‘그런 이야기(패관소설 금지 리프라이즈)’에 이어 ‘이야기꾼 리프라이즈’까지를 시연했다.

뮤지컬 ‘판’은 2015년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 선정작으로 올 봄 CJ문화재단의 첫 제작 뮤지컬로 본공연된 작품이다.

 

검열이 횡행하고 비선실세를 둔 사또가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들을 불태우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초연 당시 최순실게이트로 인한 범국민 촛불집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등 혼란한 정국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사랑받았다.

“신기하게도 27회가 거의 매진됐어요. 당시 우리 사회 분위기 속에서 통쾌하게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 전통 연희 스타일로 자유롭게 얘기했고 관객분들도 저희도 통쾌함을 느꼈죠.”

‘판’은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하는 조선의 전기수와 매설방, 양주별산대의 꼭두각시놀음, 솟대쟁이 놀이, 가면극, 타령을 비롯해 서양 오페라 요소까지 가미된 신명나는 유희극이다.


◇전통 연희와 뮤지컬의 이종교배 “신기한 돌연변이 나오길!”


IMG_8794
뮤지컬 ‘판’. 연습 중인 이덕 역의 유주혜(왼쪽)와 달수 김지철.(사진제공=정동극장)

  

“‘새가 날아든다’의 마지막 장면은 훨씬 좋을 거예요. 종이를 훨씬 많이 날리거든요.”

연습실 공개 후 만난 변정주 연출은 블랙박스(빈 공간에 자유롭게 무대와 객석을 설치할 수 있는 극장) 형태의 CJ아지트에서 프로시니엄(원형이나 반원형으로 보이는 무대) 정동극장으로 옮겼지만 “관객과 즉흥적으로 주고받는 신에서 배우들이 몇배의 노력을 해야하고 인형, 새 등 반드시 필요한 소품들이 커지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전반부의 한 에피소드에서 풍자 대상이 최순실·박근혜 전 대통령에서 MB로 바뀌었지만 풍자의 대상이 중요한 극은 아니예요.”.

변 연출의 말대로 초연에서 은퇴 후 거처로 삼을 절을 짓던 사또가 이번엔 ‘국민 성공 시대를 열기 위해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 테니스를 치며 금으로 탑들을 쌓아올린다.  

 

IMG_7781
뮤지컬 ‘판’. 연습 중인 김길녀 음악감독.(사진제공=정동극장)

  

이야기나 극 형태 보다는 음악적 색이 큰 변화를 맞는다. 김길녀 음악감독은 “멜로디 악기가 서양 것에서 국악기로 바뀌고 대금, 소금, 아쟁 등을 추가해 전통 색을 더 입힐 것”이라며 “원래 음악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서 좀 더 세련되게 버무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오프닝은 아예 기본 장단을 국악의 것으로 바꿨어요. 바이올린과 베이스 기타가 빠지고 몇몇 곡에서는 퍼커션과 신디사이저 역할을 대금·소금·아쟁이 대신하죠. 베이스 기타의 빈곳에 아쟁으로 색을 입히고 피아노는 편곡에 따라 덜어내거나 더 벌려 치는 편곡으로 조정 중이죠. 악기 자체가 바뀌니 색 자체가 바뀔 거예요. 누가 들어도 국악의 느낌보다는 이야기 ‘판’에 어울리는 세련된 색을 입히고 싶어서 찾아보고 있죠.”
 

Untitled-4
뮤지컬 ‘판’. 연습 중인 호태 역의 김지훈(왼쪽)과 춘삼 최은실.(사진제공=정동극장)

좀 더 신명나는 ‘판’을 벌리기 위해 창작진과 배우들은 워크샵을 통해 소리꾼 전영랑에게 경기민요 스타일의 발성법을 배우는 중이기도 하다.

 

한국 무용, 양주별산대 등을 바탕으로 한 안무에 대해 이현정 안무가는 “배우들이 좀더 정확한 동작을 몸에 익힐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며 “고기혁 선생님을 모셔 양주별산대 탈춤 동작을 좀더 추가했다”고 귀띔했다.  

 

“전통놀이와 서양 극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배우와 캐릭터, 배우와 악사, 배우와 관객 등의 경계가 없다는 거예요. 연기라는 것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판소리 해설자가 심봉사도 됐다가 심청이도 됐다가 춘향이와 몽룡이를 다 하잖아요. 인간의 내면이나 역사를 쌓아서 보여주는 게 아니에요. ‘판’이라는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건 (등장인물) 여섯이 하나의 놀이패가 돼 모든 방법을 동원해 스스로 겪은 이야기를 재밌게 들려주는 행위죠.”


이렇게 말한 변정주 연출은 ‘판’에 대해 “전통 연희 놀이판의 개념으로 뮤지컬을 한다는 개념”이라며 “이야기의 방식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좀 더 논리적일지도 모를 서양의 이야기형식과는 달리 경계도, 안팎도 없는 스토리텔링 방식이죠. 서양식 기승전결은 있지만 이야기가 너무 탄탄해서도 안돼요. 각 에피소드 자체의 완결성을 가지고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있는 보편적 정서를 이야기하죠. 경기민요든 한국무용이나 탈춤이든 완벽하게는 못해요. 그 색을 내거나 맛을 살리는 정도죠.”

 

IMG_8802
뮤지컬 ‘판’ 연습실.(사진제공=정동극장)

그리곤 “겉으로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판’이니까 가능했다”며 “어쩌면 ‘악기만 국악기지 무슨 국악이냐’거나 ‘뮤지컬이 뭐 이래’ 등 욕먹는 게 당연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전통 유희의 개념과 뮤지컬 스타일이 만난 이종교배죠. 예쁘기 보다는 신기한 돌연변이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정확히 어떤 시대, 어느 왕조 등을 고증하는 작품이라기보다 양주별산대나 남사당패가 21세기에 존재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하고 있어요. 맞닿아 있는 지점이 많은, 지금 우리 얘기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