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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두명의 사또, 오방색, 선의의 도움…신랄하고 신명나게 “쾌하였도다!” 뮤지컬 ‘판’

<히든콘> 부조리한 시국...신랄한 비판, 사이다 풍자 뮤지컬 `판`

입력 2017-03-27 07:00 | 신문게재 2017-03-2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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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랄하다. 신명난다. 그리고 통쾌하다. 두명의 사또와 오방색, 선의의 도움, 민정수석 같은 일을 하는 내시, 사또가 퇴임 후 살 집으로 마련한 절…. 듣는 것만으로도 생각나는 사람들과 사건이 희화돼 풍자와 해학의 메시지를 던진다. 

 

지금 시절에 꼭 필요해 보이는 ‘판’(4월 15일까지 CJ아지트 대학로)은 2015년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 선정작으로 CJ문화재단의 첫 제작 뮤지컬이다.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인형극, 산받이 등 우리 전통연희의 바탕은 풍자와 해학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웃음과 신명 뒤에는 민초들의 서글픈 삶이, 그리고 폐부를 찌르는 날선 비판이 있다. 어쩌면 극의 주요 배경인 매설방(이야기방)과 전통연희는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장르일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의 직업적인 낭독가 전기수를 모티프로 한 뮤지컬 ‘판’은 그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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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판' 중 인형극 중인 이덕 박주란과 달수 유제윤.(사진제공=CJ문화재단)

 

‘판’은 비선실세를 둔 사또가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들을 불태우고 검열이 횡행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유기전을 가장한 매설방에서 벌어지는 풍자와 로맨스, 정의구현 등에 대한 이야기다. 

 

공부나 세상일에는 도통 관심이라곤 없이 한량처럼 살아가던 양반가 자재 달수(김지철·유제윤)가 세책가 앞에서 만난 이덕(박란주)에 첫눈에 반해 매설방을 찾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달수가 매설방 책들의 필사를 맡고 있는 덕을 통해 매설방의 주인 춘섬(최유하), 희대의 이야기꾼 호태(김대곤·김지훈)를 만나 사회 부조리와 없는 자들에 행해지는 횡포를 체험하면서 세상에 눈 뜨고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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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판' 달수 역의 김지철.(사진제공=CJ문화재단)

 

태호로부터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조수로 일하며 꼭두각시놀음, 인형극 등에 참여하면서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에 저항하려는 민중들의 아픔을 공유하게 된다.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세상, 쌀값을 올려달라는 농부는 곤장을 맞아 죽고 소작농으로 몇년을 일했건만 다리 좀 다쳤다고 길바닥으로 내몬 지주의 횡포 등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아픔에 대한 우리 소리와 연희의 신명과 해학, 명쾌한 비판이 보는 이의 가슴을 신랄하게도 두들겨 댄다.  

 

결국 양반가 자재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깨닫고 감옥 안에서 판을 벌리기에 이른 달수, 사또가 퇴임 후 살겠다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지은 절로 날아들어 쪼아대는 새하얀 새들은 지난 겨울부터 올 봄까지를 뜨겁게 달군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를 떠오르게 한다.

 

‘아랑가’ ‘도둑맞은 책’ ‘보도지침’ 등의 연극·뮤지컬을 비롯해 촛불집회에서 펼친 ‘시민들과 함께 하는 뮤지컬배우들’ 공연을 진두지휘했던 변정주 연출과 뮤지컬 ‘뿌리 깊은 나무’ ‘명성황후’ 등의 김길려 음악감독이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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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의 뮤지컬 '판'의 이야기꾼 호태 역의 김지훈.(사진제공=CJ문화재단)

철부지 도련님에서 풍자의 달인으로 성장하는 달수 역에는 ‘광염소나타’ ‘맨인더홀’ ‘톡톡’ 등의 김지철과 ‘무한동력’ ‘그 여름 동물원’ ‘여신님이 보고계셔’ 등의 유제윤이 더블캐스팅됐다.  

 

달수와 익살스러운 콤비플레이를 선사하는 태호 역에는 ‘보도지침’ ‘빨래’ ‘까사 발렌티나’ 등의 김대곤과 김지훈이 번갈아 연기한다. 

 

매설방 주인 역에는 ‘안녕 여름’ ‘난쟁이들’ ‘형제는 용감했다’ 등의 최유하가 캐스팅됐고 박란주가 덕이를, 개그맨 출신의 윤진영과 임소라가 사또, 몸종, 매설방 손님 외 다양한 역을 소화한다.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추임새를 더하는 산받이 최영석은 전자악기, 장구, 타악기 등을 연주하며 흥을 돋운다. 

 

전통리듬과 서양음악이 곁들여진 신명과 흥이 아직 몸에 익지 않은 듯 춤사위와 동선이 어색한 몇몇 배우들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전통연희의 풍자와 해학, 19세기 이야기에 보사노바, 탱고 등 서양음악을 버무린 극은 마지막 백성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쾌타령’의 “쾌하였도다!”를 함께 외치게 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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