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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 타계한 '마지막 3김' 김종필 전 총리

입력 2018-06-24 16:18 | 신문게재 2018-06-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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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 거목,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YONHAP NO-5308>
능변을 무기 삼아 ‘무관의 제왕’으로 우리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김 전 총리가 지난 2015년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부인 박영옥씨 빈소에서 조문 온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

 

능변을 무기 삼아 ‘무관의 제왕’으로 우리 현대정치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한국 정치사에 처음 이름을 올렸던 그는 김대중(DJ)·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이른바 ‘3김(金) 시대’를 이끌며, 말 그대로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늘 있었다.

박정희 정부 중앙정보부 초대부장을 시작으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한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후 대권을 노리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좌절됐다. 1980년 ‘서울의 봄’에 신군부 등장을 예고하며 ‘춘래불사춘(봄은 왔으나 아직 봄이 아니다)’이라며 당시 정치상황을 꼬집은 것은 그의 대표적 어록으로 남아있다.

김 전 총리의 예측대로 민주화의 봄은 쉽게 오지 않았고 1980년 5월 18일 비상계엄 확대 조치가 떨어지며 그는 보안사에 체포돼 유신시대 부정축재자로 몰리는 치욕을 당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기에는 정치활동정화법에 묶여 정계를 떠나있어야 했다.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화 바람이 다시 불었던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며 정계에 돌아온 김 전 총리는 촌철살인을 이어갔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YS가 내각제 개헌 합의에 반대하며 낙향하자 ‘행동이 아이처럼 서투르고 유치하다’는 충청도 사투리인 “틀물레짓”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YS가 1995년 대통령에 당선돼 권력을 얻자 이번에는 “사랑에는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된 DJ가 내각제 개헌 약속 이행에 지지부진하자 1998년에는 “참다가 안 되면 몽니를 부리겠다”고 내뱉어 옛말인 ‘몽니’를 일상용어화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선 “문재인이 문제”라며 모진 소리도 내뱉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박정희 정부에 이어 두 번째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16대 국회까지 9선 국회의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으나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동의한 데 대한 역풍에 10선에 실패하며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에도 후배 정치인들에게 “국민을 호랑이처럼 알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며 정치 거목으로서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문재인이 문제”라고 비난했던 그에게 문 대통령의 현 정부는 이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키로 결정했다.

김윤호 기자 uknow@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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