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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배우 오정세가 22년간 롱런할 수 있는 비결

입력 2019-12-3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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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정세 (사진제공=프레인TPC)

 

“나도 땅콩 서비스 달라고!”

이런 사람 어디든 한명쯤은 꼭 있다. 부와 지위를 내세우며 식당에서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들. 느끼한 웃음을 흘리며 은근슬쩍 손목까지 잡는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불편하지만 세입자는 차마 불편한 티를 낼 수 없는 그 이름 ‘건물주’. 때로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군수에 대한 헛된 꿈을 드러내기도 한다. KBS2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배우 오정세가 연기한 노규태 역이다.

한마디로 진상인 인물의 서사를 외로움과 결핍으로 풍성하게 표현한 것은 오롯이 배우 오정세의 연기 덕분이다. 그는 드라마 초반 대본을 집필한 임상춘 작가에게 “규태는 착한 사람”이라는 한마디를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 오정세의 고민이 시작됐다. 카메라 건너 시청자들에게 규태의 텅 빈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배우 오정세
배우 오정세 (사진제공=프레인TPC)

“규태가 착한 사람이라고 하니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대본의 95%를 구현하되 제게 남겨진 5%를 외로움으로 설정했어요. 규태가 동백이나 향미에게 지분댄 것도 사랑이라기보다 칭찬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거죠. 물론 외로움이 규태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지만 저는 외로움이란 전제 하에 어설프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규태의 허세를 표현하면 시청자들도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 여겼어요.”


규태의 내면을 외양으로 끌어내기 위해 오정세는 속옷과 의상의 실밥 한 올 한 올까지 신경을 기울였다.

 

벨트 위에 멜빵,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원색 속옷. 벨트를 끝까지 채우지 않거나 재킷 뒤에 걸쳐진 세탁소 태그는 어딘가 비어있는 규태의 속내다.

“규태는 딱 수준이 5살 아이에요. 그 나이 또래 아이가 슈퍼마켓에서 껌을 훔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다 보이는데도 가져가더라고요. 아마 규태가 그렇지 않을까요. 속이 들여 보이는 인물이니 시청자들도 규태의 속을 읽을 수 있게 해야 했어요. 처음엔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다림질 하려고 해서 구겨진 채로 두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했어요. 나중에 매니저와 함께 청담동 숍에 가서 멋있는 옷을 입었더니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어요. 제가 표현한 규태스러움에 익숙해졌던거죠. 하하”

정작 오정세 자신은 술집에서 땅콩 안주도, 제육볶음도 별로 좋아하지 않다고 한다. 규태처럼 괜히 나서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임에도 카메라 앞에서 종종 경직될 때가 있다.  

 

오정세
배우 오정세 (사진제공=프레인TPC)

오정세는 “나는 배우로서 단점이 많은 사람인데 그런 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규태와 닮았다”고 말했다. 


드라마 초반 진상 연기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책임졌던 오정세는 후반부 상대역인 홍자영 역의 염혜란과의 로맨스로 다시금 화제를 모았다.

 

변호사 아내에게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결국 외부에서 쭈뼛대며 온갖 진상을 부리던 규태와 남편을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못했고 결국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오해한 아내 자영은 이혼 소송까지 진행하지만 결국 서로에 대한 진심을 알고 초심으로 돌아간다. 오정세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돼 죄송하면서도 감사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80%는 작품이 좋아서 기쁘고 20%는 선물처럼 자영과 규태가 사랑받아서 좋아요. 사실 자영과 규태의 사랑이 욕심이 아닐까 싶어 자기검열을 하기도 했어요. ‘멜빵 키스’신은 용식(강하늘 분)에 대한 오마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1997년 영화 ‘아버지’로 데뷔한 오정세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00여 편에 가까운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그는 올해에도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진심이 닿다’, ‘동백꽃 필 무렵’에 이어 현재 방송 중인 ‘스토브리그’에 연이어 출연 중이다. 긴 시간 많은 작품에 출연한 만큼 시청률에는 무던한 편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덤덤한 오정세에게도 상당히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얼마 전 김포에서 강남에 가야 하는 스케줄이 있었는데 러시아워에 걸려 오후 7시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어요. 그런데 시민들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통해 ‘동백꽃 필 무렵’을 시청하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묘했어요. 제 배우 인생 중 여러 작품을 만났지만 ‘동백꽃 필 무렵’은 드물게 만난 귀한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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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정세 (사진제공=프레인TPC)

연기 외에 오정세의 취미는 음악감상이다. 그는 틈만 나면 홀로 공연장을 찾아 음악을 듣는다.

 

요즘은 홍대 인근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오정세가 추천하는 가수는 정우. 규태 캐릭터를 만들어가던 중 ‘동백꽃 필 무렵’과 잘 어울리는 외롭고 쓸쓸한 맑은 목소리에 매료됐다. 

 

그는 정우의 ‘이름에게’를 용식이 테마, ‘외로움’을 규태 테마로 정해 듣곤 한다며 인터뷰 중 직접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2019년을 누구보다 바쁘게 보낸 오정세에게 2020년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건강하고 지금처럼 즐겁게 연기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느릿하게 걸었던 해가 있는가 하면 생각보다 느긋했는데 달렸던 해도 있죠. 배우로서 제 목표는 항상 같아요. 단역배우로 스쳐지나가던 시절부터 데뷔 후 4년만에 첫 대사를 받았던 순간, 그리고 지금까지 늘 즐겁게 연기하는 게 목표죠.” 

 

상투적이지만 기본에 충실한, 그래서 지키기 힘든 그 목표를 이어나가는 것. 배우 오정세가 20년 간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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