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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TV, 무대 위 흑인·장애인 비하 “이 정도 쯤이야?”

[트렌드 Talk] '펜트하우스3' 알렉스 리, 국립발레단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방송·문화계 인권 인식 부족 여전

입력 2021-06-17 18:30 | 신문게재 2021-06-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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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3 알렉스 리
흑인 조롱 논란에 휩싸인 ‘펜트하우스3’ 알렉스 리(사진=방송화면 캡어)

 

죽은 사람이 다른 인물로 등장하는 캐릭터 돌려막기로 방송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가 시즌 3에서는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 한 집단, 인종 등의 전통 문화를 이해나 존중없이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 시즌 폭발로 사망한 로건 리의 형으로 등장한 알렉스 리(박은석) 캐릭터가 맥락없는 레게머리, 타투, 두꺼운 금목걸이 등 흑인의 정체성이 담긴 설정들로 흑인을 조롱, 비하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불쾌함과 모욕감을 표출하고 논란이 불거지면서 ‘문화적 전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콘텐츠의 문화적 전유는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2017년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부르노 마스의 ‘업타운 펑크’를 부른 마마무, 힌두교 신상을 연상시키는 소품을 바닥에 깔아 논란이 됐던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 뮤직비디오, 배우 얼굴에 검은 칠을 해 흑인 캐릭터를 표현했다 맹비난을 받고 수정해 돌아온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7월 4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등 그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이는 “문화가 다른 데서 오는 오류”로 “미국에서는 블랙페이스 등 인종차별적 표현에 민감해 조심스레 다뤄왔지만 한국은 아직 그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기인한다. 


말괄랴이 길들이기
제11회 대한민국발레축제 ‘말괄량이 길들이기’(사진제공=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2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장애인 희화화 안무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이 제기됐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바탕으로 ‘드라마 발레의 거장’ 존 크랑코가 꾸린 2막짜리 발레극이다. 문제가 된 장면은 ‘말괄량이 길들이기’ 중 천방지축 카네리나와 결혼한 페트루키오가 아내를 길들이고자 하인들을 시켜 뇌성마비, 뇌 병변 환자 등 지체장애인 흉내를 내며 괴롭히는 안무다. 이 장면에서는 밥을 굶기거나 치마를 들추는 등 여성혐오와 학대, 성희롱으로 인지될 수 있는 설정들도 등장한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야 한다’는 의견과 ‘당시 시대 반영이니만큼 존중돼야 한다’는 주장들이 엇갈리기는 가운데 국립발레단 측은 “존 크랑코 재단 측도 한국에서의 (장애인 비하) 논란을 이해하고 안무를 변경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국립발레단 더 발레
국립발레단은 지난해 연말 방송된 KBS ‘우리 다시, 더 발레’로 9일 인권침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사진=방송화면 캡처, KBS 제공)

 

9일 국립발레단은 지난해 연말 방송된 KBS ‘우리 다시, 더 발레’로 다시 한번 인권침해 의혹에 휩싸였고 인권위에 진정서가 제출됐다. 지난해 10월 19부터 한달여간 신안 염전, 화성 행궁, 함선 등 야외에서 진행한 발레공연 여정을 따르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초겨울 50여명의 발레 무용수들이 얇은 발레복을 입고 염전, 맨땅, 철바닥, 돌다리, 아스팔트 등에서 공연하는 장면이 “발레에 대한 열정”이 아닌 “무용수들의 건강권과 인권 침해” 혹은 “단원 학대”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에 국립발레단 측은 개인면담 결과를 공유하며 무용수들의 자발적인 참여였으며 “괜찮았다”는 취지의 단원들 면담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인권위 조사에서 단원들이 입장을 바꿔 피해를 호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다양한 문화적 전유와 국립발레단의 인권위 제소에 대해 교육학박사인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는 “국립발레단의 학대논란이나 인권침해, 문화적 사유는 예술을 음미하는 관객들의 눈높이와 기대수준을 명료하게 보여준다”며 “제작과정이나 작품내용에 포함된 학대나 폭력, 차별 등은 관객들의 인권의식과 인지 감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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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국립발레단 ‘우리 다시, 더 발레’의 경우 단원들의 동의 하에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다고 하지만 캐스팅 선발권을 가진 발레단 측의 기획에 참여를 거부할 무용수들이 있을지 의문스럽다”며 “캐스팅이 중요한 단원들 입장에서 발레단의 참여 제안은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무리한 기획이어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정황상 증빙여부를 떠나 직장 내 괴롭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장애인 비하 안무나 ‘펜트하우스3’의 흑인문화 조롱 등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금과는 다른 인권의식과 감수성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수정할지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할지는 문화예술계의 오랜 딜레마이기도 하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관객, 시청자 등의 민감해진 인권의식과 예리한 시선, 계속 되는 비판의 목소리가 ‘말괄량이 길들이기’ 안무,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의 미성숙한 표현 등의 수정을 이끌었다.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다양성에 대한 세심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관객의 인권의식과 감수성에 반하는 예술은 더 이상 공감받거나 향유되지 못하고 외면당하게 될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 전문가는 “비하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을 반복하기 보다는 다소 신중하지 못했던 인권의식, 시대를 역행하는 장애인·다른 인종·여성 등 차별 대상에 대한 인지 감수성을 반성하고 공부해야한다”고 조언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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