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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빛에 반하고 맛에 놀라고… 어~취하는구나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박준하 '취할 준비'

입력 2024-04-20 07:00 | 신문게재 2024-04-1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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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주량이 소주 석 잔인 자칭 ‘알쓰(알코올 쓰레기)’ 여기자가 전국 술 도가를 발로 뛰어 취재해 쓴 ‘우리 술’ 이야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통주를 ‘우리술’이라고 표기한다. 단어가 주는 꽤 넉넉한 느낌 때문이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술과 그 술을 만드는 알려지지 않은 장인들, 그리고 전국 주요 양조장과 전통주 보틀숍들이 상세히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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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할 준비|박준하|위즈덤하우스

◇ ‘우리술’이란 무엇인가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우리 전통주는 크게 민속주와 지역 특산주로 나뉜다. 민속주는 국가와 시·도의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제조하거나 식품명인이 국산 농산물로 만든 술을 말한다. 민속주 가운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은 세 종류다. 충남 당진의 면천두건주보존회가 만드는 ‘면천두건주’, 경기 김포 문배주양조원이 빚는 ‘문배술’, 그리고 경북 경주에서 경주 최씨 집안이 대대로 빚어 온 ‘교동법주’다.

식품 명인의 민속주로는 전북 전주의 조정형 명인이 빚는 ‘이강주’, 전북 완주의 송화양조에서 조명귀 명인(벽암 스님)가 빚는 ‘송화백일주’, 경기도 파주에서 이기숙 명인이 빚는 ‘감홍로’, 경남 함양 박흥선 명인의 ‘솔송주’와 충남 서천 우희열 명인이 빚는 ‘한산소곡주’가 대표적이다.

지역특산주는 농민이나 농업법인 등 생산자 단체가 직접 생산하거나 주류 제조장 소재지 혹은 인근에서 생산한 원료로 제조한 술을 말한다. 경기 오산의 품질 좋은 세마쌀로 오산양조가 만드는 ‘경기쌀막걸리’, 전남 곡성 특산품인 토란을 넣은 ‘시향가’, 그리고 경남 사천 대밭고을영농조합이 생산하는 ‘대담15’ 약주 등이 있다.

최근에는 규모가 작은 소규모 양조장에서도 독특한 우리술이 속속 선보인다. 지역특산주와 달리 재료 원산지에 얽매이지 않아, 도전적인 제품들이 많다. 대전 주방장양조장에서 빚는 10도 술 ‘쑥크레’, 서울 OTOT술도가가 만드는 7도짜리 ‘코리안화이트’, 서울 페어리플레이가 빚는 5도 짜리 ‘이제’ 등이 있다. 코로나 펜데믹 기간 중에 온라인 판매 덕에 시장이 크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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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의 술’ 막걸리도 이제 수 십 만원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프리미엄 막걸리’ 시대다. 2009년 ‘자희향’, 2010년 ‘복순도가 손막걸리’가 길을 턴 이후 수십 만원대 제품이 꽤 많아졌다. 18도 ‘해창 막걸리’는 출고가격이 11만 원 안팎이다. 논란 속 노이즈 마케팅 덕분에 이젠 없어서 못파는 술이 되었다. 금박 도자기 병에 담은 ‘해창막걸리 아폴로’는 110만 원에 출고됐다.

서울양조장에서 다섯 번 담금한 오양주 ‘서울골드’도 19만 원에 출고되어 인기를 끌자, 용량을 늘린 25만 원 짜리 이벤트 상품까지 선보였다. 저자는 “와인은 되고 막걸리는 안될 것이 무엇이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막걸리도 와인처럼 브랜드 인지도나 숙성도를 제대로 평가받게 되면, 언젠가는 와인 같은 고급주로 대접받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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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정준하 씨가 방송에서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 과정을 소개했다.

 

◇ 전통주에도 ‘소믈리에’가 있다

 

술을 맛보고 감별해 사람들에게 상황에 맞게 추천해 주는 사람을 ‘소믈리에’라고 한다.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크게 국가 자격증과 민간 자격증이 있다. 술 관련 국가 자격증은 현재 ‘조주기능사’가 유일하다. 와인 소믈리에든 전통주 소믈리에든 모두 민간 자격증에 해당한다.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은 한국가양주연구소와 (사)한국소믈리에협회 두 곳이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이뤄진다. 실기 때는 원재료의 곡물이나, 해당 증류주가 상압식인지 감압식인지 구분해 내야 한다. 술의 살균 여부까지 맞춰야 할 때도 있다. 2018년 연예인 정준하 씨가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 알려지면서 일반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 약주, 청주, 그리고 과하주

약주와 청주를 구분하는 기준은 누룩 함유량이다. 쌀의 중량을 기준으로 누룩을 1% 이상 넣으면 약주, 그 미만이면 청주라고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약주와 청주를 통칭해 ‘맑은 술’이라고 불렀는데. 일제 강점기에 주세법이 생기면서부터 청주(사케)를 약주와 구분했다. 일반적으로 약주는 누룩 향이 강하고 진하며, 청주는 깔끔한 느낌이다.

국내 대표 약주로는 경기도 용인 수불가의 ‘두두물물 약주’와 충남 논산 민속주왕주의 ‘궁중술왕주’가 있다. 청주로는 경기도 용인 술샘의 ‘서설’과 충북 충주 고현정의 ‘1957동학’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과하주(過夏酒)’는 말 그대로 무더위를 이기는 술이다. 더위에 쉬지 않게 발효주보다 독한 소주를 활용한다. 경기 여주 술아원이 여주 찹쌀로 빚는 ‘경성과하주’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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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주 빚는데 필요한 곡물과 누룩, 물

막걸리는 주로 멥쌀과 찹쌀로 담근다. 맛의 균형을 맞추려 둘을 섞어 쓰기도 한다. 쌀 막걸리 가운데 저자는 서울 한강주조의 ‘나루생막걸리’와 경기도 용인 술샘의 ‘술취한원숭이’, 강원도 강릉 들을리소향의 ‘소향탁주’를 소개한다. 1963년 양곡관리법에 따라 흰쌀로 술을 못 빚게 되면서 각광받은 재료가 밀이다. 막걸리보다 진한 아이보리색이다. 충북 옥천 이원양조장의 ‘향수’, 전남 목표 밀물주조의 ‘밀물탁주’가 대표적이다.

누룩은 천연 발효제다. 쌀이나 밀, 녹두 등을 쪄서 누룩 틀에 누르고 발효시킨 후 햇볕에 말려 살균과 냄새 제거, 표백 등을 거친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누룩이나 효모 같은 발효제 연구가 부족한데, 지원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 재료는 좋은 물이다. 예로부터 술 빚기에는, 맛이 없거나 단 맛에 색이 없는 맑고 깨끗한 물이 최고로 친다고 한다.


◇ 점점 독해지는 막걸리

소주의 도수는 점점 내려가고 막걸리 도수는 계속 올라가는 게 요즘 추세다. 소주의 ‘25도 공식’을 깬 것은 2006년 19.8도로 나온 ‘참이슬 후레시’였다. 이어 무학이 16.9도 짜리 ‘좋은데이’를 내놓으면서 ‘순한 소주’가 대세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6~7도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프리미엄 딱지가 붙은 막걸리들은 대부분 10도를 훌쩍 넘어간다.막걸리는 원래 두세 번 정도 담그고 발효, 숙성시키면 도수가 18.5도 언저리를 오간다고 한다. 요즘에는 거의 원주 수준의 도수 높은 막걸리도 인기다. 마니아 층도 형성되고 있다. 해창막걸리와 서울골드가 모두 18도다. 높은 도수의 막걸리를 작은 잔에 마시거나, 물을 타거나 온러록스로 마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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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통의 강화군 소재 금풍양조장.

 

◇ 우리나라 대표 양조장들

우리나라에는 약 1400개의 양조장이 있다. 저자가 주변 경관과 맞물려 여행하기 좋은 ‘아름다운 양조장’ 12곳을 소개했다.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의 ‘금풍양조장’은 100년 동안 금학탁주와 금풍막걸리를 빚는 곳으로, 2022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경기 포천시 화현면의 ‘배상면주가 산사원’은 복합 술 문화센터로, 400여 개의 옹기와 함께 국내 최초의 전통술 박물관이 있다. 목도막걸리와 느티 등을 빚는 충북 괴산군 불정면의 ‘목도양조장’은 양조장 자체가 박물관이다. 전남 해남군 화산면의 ‘해창주조장’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미곡상이 살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의 ‘모월양조장’은 최근 핫한 박재범의 ‘원소주’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의 ‘맹개술도가’는 직접 지은 우리 밀로 진맥소주를 만든다. 전남 함양군 지곡면의 ‘솔송주’는 하동 정씨 가문의 가양주인 솔송주를 현대화해 빚는다. 경남 거창군 거창읍의 ‘해플스팜사이더리’는 물 한 방울 타지 않고 애플사이더를 만든다. 울산광역시 상북면의 ‘복순도가’는 샴페인 막걸리로 유명하고,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술다끄는집’은 전통 방식으로 좁쌀을 사용해 오메가술을 빚는다.


◇ ‘덧술’로 더하는 맛의 한 끗

막걸리는 쌀과 누룩, 물로 만든다. 이를 한번 담근 것이 ‘단양주’다. 인천 탁브루컴퍼니의 ‘탁100’, 경남 하동의 ‘악양막걸리’가 대표적이다. 특유의 신맛이 강해 인기다. 이를 밑술 삼아 고두밥 등을 한 번 더하면 ‘이양주’가 된다. 가장 흔한 막걸리다. 1차 밑술에 2차로 겹쳐 담그는 이 과정을 ‘덧술’이라고 한다. 춘천의 ‘화전일취12’나 김포의 ‘팔팔막걸리’가 있다.

덧술을 더하면 삼양주, 사양주, 오양주가 된다. 도수는 올라가고, 당이 남아 술은 더 달아진다. 삼양주는 최근 프리미엄 막걸리 가운데 눈에 많이 띈다. 과일향이 다채로운 ‘양지백주’가 대표적이다. 사양주 가운데는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와 ‘해창막걸리 18도’가 인기다. 다섯 번 빚어 부드럽고 질감이 묵직한 오양주에는 ‘서울오리지널’과 ‘천비향 약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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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오프라인 매장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술마켓’.

 

◇ 알아두면 좋을 우리술 보틀숍

우리술을 구할 수 있는 장소들이 의외로 주변에 적지 않다. 저자가 모두가 좋아할 ‘우리술 보틀숍’ 10곳을 알려준다. 전통주 오프라인 매장 중 최대 규모인 ‘술마켓’은 서울 광진구 군자동과 하남시 미사강변 두 곳에 있다. 군자 본점에서 술을 사 소정의 입장료를 내면 지하 1층의 ‘술마켓바’를 이용할 수 있다. 요즘 뜨는 술을 맛보고 싶다면 왕십리의 ‘우리술당당’이 추천된다. 근처의 ‘애주금호’는 전통주 소믈리에 과정도 운영한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우리주민’은 프랑스 소품 숍을 연상케 한다. 수원시 최초의 전통주 보틀숍 ‘당신의 술’, 작고 분위기 있는 강원도 강릉의 ‘라이스앤샤인’, 대전시 유성구의 도심 속 양조장 ‘누룩’도 매력 넘치는 곳이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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