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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범죄, 가두는 게 능사일까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정재민 '범죄사회'

입력 2024-04-27 07:00 | 신문게재 2024-04-2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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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판사와 법무부 법무심의관을 거친 법조인이다. 그는 그동안 판사나 법무부 공무원의 입장에서만 범죄를 바라보다가 ‘알쓸범잡’ 방송 출연을 계기로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범죄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범죄의 주요인이 무엇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범죄를 억제할 수 있도록 사회의 환경과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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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사회|정재민|창비

 

◇ 범죄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최근 범죄의 특징은 한 마디로 ‘무차별성’이다. 절대적인 범죄량이 주는데도 시민들의 불안이 더 커지는 이유도, 최근의 범죄가 시간과 장소 대상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마약범죄가 177%, 성 범죄는 40.8%나 늘었다.

‘묻지마’ 살인 같은 흉악 범죄도 부쩍 늘었다. 온라인 기술 발전에 범죄자가 신원을 노출 않고도 범행 대상자를 직접 접촉해 범죄를 꾀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상대를 개인적으로 모르니 잡힐 가능성도 낮고, 일말의 책임감도 덜하니 범행이 더욱 대담해지고 공격적이 된다.


◇ 과학수사의 시작, 화성연쇄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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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1980년대 말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국내 과학수사의 시작이었다. 범인의 O형 혈액형을 B형으로 잘못 추정해 엉뚱한 사람이 20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1990년 9차 살인사건 때 피해자 옷에서 채취한 정액 흔적을 일본에 보내 유전자 감식을 한 것은 최초의 과학수사였다.

우리 DNA 분석기술이 처음 인정받은 것은 2006년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 때였다. 프랑스인 부모의 칫솔 등에서 미량의 DNA를 추출해 유전자 검사로 범인임을 밝혀냈다. 이후 2010년부터 주요 범죄자들의 DNA를 채취해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 화성사건의 진범도 그렇게 잡았다.


◇ 판사의 형량이 낮은 이유

국민들은 성폭행범 조두순이 ‘주취감경(酒醉減輕)’을 적용받아 징역 12년에 그친 데 분노했다. 미국은 100년 징역형이 잦고, 스페인은 4만 년 이상 징역형도 선고(실제 적용은 40년)되는데, 우리는 너무 형량이 약하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이런 약한 양형은 오판 시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유죄판결 확정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범행 이후에 만들어진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도 한 이유다. 위법 입증의 책임도 모두 검사에게 있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같은 원칙도 일반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 이유다.


◇ 형량 감경의 사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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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범은 정범의 형량보다 줄어든다. 자수를 해도 감경할 수 있다. 심신미약 또는 피해자와 합의해 정상 참작할 사유가 생겨도 마찬가지다. 무기징역형을 감경하면 1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이 된다. 유기징역은 상한과 하한 모두 절반 씩 감경된다.

법원은 양형기준표를 참작해 형량을 결정한다. 판사가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판결문에 밝혀야 한다. 형을 높일 수 있는 가중 인자는 계획적인 범행, 반성 없음, 불특정 다수 피해자 등이다. 감경 인자는 자수, 피해자의 처벌 불원(不願) 등이다. 양형기준표는 징역 7~12년과 같이 범위를 제시해 줄 뿐, 결국 구체 형량은 판사의 몫이다.


◇ 교도소는 감옥이 아니다?

저자는 교도소가 ‘감옥’이 아니라 ‘교화 내지 교정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범죄자는 ‘교도소에 갈 사람’ 보다는 ‘사회로 돌아갈 사람’이라는 것이다. ‘4년 전에 출소한 사람 중 3년 이내에 다시 수감되는 비율’을 재 복역률이라고 하는데 2021년에 24.6%, 2022년이 23.8%다.

기결수 중 한번이라도 수감 경험이 있는 사람이 44.3%다. 4회 이상 수감자도 12.8%나 된다. 저자는 “교도소에서 교정이 완벽하게 이뤄져 출소자가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수형자 수는 해마다 절반씩 줄어 5년 정도만 지나면 현재의 5% 미만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 드라마와 다른 현실의 교도소

현실은 드라마에 나오는 교도소 모습과 많이 다르다. 큰 식당에서 단체로 밥을 먹지 않고 자기 방에서 배식을 받는다. 원칙적으로 누워 지낼 수 없고 벽에 등을 기댈 수도 없다. 바깥 운동은 하루 한 시간 정도만 가능하다. 밤 9시 취침인데 늘 불이 켜져 있다. 무더운 여름이 가장 힘들다. 선풍기를 새벽 1시에 끄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밀수용이다. 2023년 8월 기준 정원이 4만 9600명인데 실제 인원은 5만 8133명이다. 1인당 수용면적이 1㎡ 남짓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과밀수용’이라며 각각 위헌 결정과 판결을 내렸으나, 교도소를 짓고 싶어도 반기는 지역이 없다.


◇ 선진국 비해 너무 낮은 가석방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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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은 재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수형자를 형 만료 전에 석방해 주는 처분이다. 형법상 무기형은 형기의 20년, 유기형은 1/3이 지나야 가능하다. 우리 가석방률은 2020년 기준으로 28.7%로 일본 58.3%, 캐나다 37.4%에 비해 낮다. 그나마 90%가 형기의 80% 이상을 마친 사람들이다.

저자는 “법원의 선고 형량은 높이고, 가석방은 확대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장시간 관찰을 통해 재범 가능성 판단이 용이한데다 미리 사회에 내보내 적응할 수 있게 도울 수 있고, 무엇보다 교도소 운영비 및 과밀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 사형제는 과연 정당한가

2018년 현재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106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했다. 반면 미국 일본 중국 등 57개국은 사형을 실제 집행까지 한다. 우리를 포함해 28개국은 집행만 않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 이후 중단됐다. 2023년 현재 59명의 사형수만 존재한다.

우리 국민 중 사형을 실제 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51.7%, 현행 체제 유지가 37.9%, 사형제 폐지 의견이 7.8% 정도다. 법무부는 대안으로 2023년 8월에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 ‘범죄성’은 유전되나

‘범죄학의 아버지’ 체사레 롬브로소는 범죄자의 골상(骨像)으로 ‘생래적 범죄인’을 가려내려 했다. 술잔 손잡이형 귀, 무성한 머리털, 적은 수염, 비대칭 머리, 크고 사각진 턱뼈 등이 범죄인의 특징이라고 단정했다. 황당한 얘기지만, 이것이 발전되어 ‘범죄성도 유전 되는가’ 라는 화두를 던졌다. ‘우생학(優生學)이 나온 배경이다.

1916년에 미국 작가 매디슨 그랜트는 생각이 삐뚤어지거나 정신적 결함이 있는 자를 불임화해야 한다며 ‘위대한 인종의 소멸’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을 성경처럼 여긴 인물이 독일의 강제 불임화법을 통과시키고 야만적인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아돌프 히틀러였다.


◇ 범죄를 잘 저지르는 성격이 있다?

범죄자의 심리 분석을 통해 수사와 교정, 범죄 예방에 활용하려는 학문이 범죄심리학이다. 범죄자의 성장 배경을 분석하는 것도 무의식 속의 어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최근에는 경제적 환경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대처하려는 범죄사회학도 보편화되고 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으면 가계 소득이 줄어 ‘생계형 범죄’가 늘어난다. 사회적 환경이 범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저자는 “범죄의 큰 원인이 사회에 있든 개인에 있든,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의 환경과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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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 발생의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차단해 예방한다는 내용이다. 인공지능의 발달 덕에 마냥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윤리적 문제가 대두된다.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국민통제 수단으로 남용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정부의 범죄 예방은, 전과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특별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범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따라다니면서 감시하는 것’이다. 보호관찰관은 대상자의 위치를 늘 파악하고 정기 면담을 통해 확인이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한다.


◇ ‘보호관찰’은 재범 억제에 효과 있나

우리나라에서 보호관찰은 1989년 7월 소년법에 처음 도입된 후 1997년 형법 개정 때 성인으로 까지 확대되었다. 준수사항을 위반하면 청소년은 선처 위주로, 성인은 집행유예 취소나 지명수배가 취해진다. 2018년부터는 벌금형 받은 사람에게도 보호관찰이 이뤄지고 있다.

보호관찰 대상자가 또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평균 7%다. 성인은 약 5%다. 보호관찰관 1인이 100명 넘게 맡아, 영국(15명), 일본(21명) 등에 비해 인력 부족이 극심하다. 전자발찌 부착 이후 살인 재범률은 4.9%에서 0.1%로, 성 폭력 범죄는 14.1%에서 0.73%로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소재 파악이 늘 힘들다고 한다.


◇ 범죄 밝히는 데 필요한 ‘법’

공소시효가 지나면 재판도, 처벌도 불가능하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25년, 무기징역형 범죄는 15년이 공소시효다. 국민의 공분 속에 이를 바꾼 것이 1999년 황산테러 피해자 ‘태완이’였다. 이후 살인죄에 한해선 공소시효 없이 끝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2020년에 양부모의 학대 속에 숨진 ‘정인이’는 아동학대 금지법의 공로자다. 어린이집 교사 등이 세 차례나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음에도 끔찍한 결과가 발생했다. 이후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 삭제 법안 등이 입법화되었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들에 대한 전수조사와 사후 대책도 최근 속도를 내고 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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