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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반일종족주의’가 불러온 기대와 좌절: 류석춘 교수의 사례

입력 2019-10-0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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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1. 베스트셀러가 된 ‘반일종족주의’

지난 7월, 전에 없던 일이 벌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정치사회 부문 베스트셀러 1위가 과거처럼 좌파 서적이 아니라 이영훈 교수 등이 쓴 ‘반일종족주의’라는 논쟁적인 우파 서적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10위권 안에 ‘노예의 길’, ‘치명적 자만’ 등 대중적인 서적으로 보기 어려운 ‘자유주의’ 서적들까지 들어가 좌파 일변도 출판시장에 변화가 감지됐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우파 사상과 역사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갈등을 확대시키지 않으면서 한·일간 문제 등 현안들을 풀어가는 데도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베스트셀러 ‘반일종족주의’가 출판될 무렵 징용 문제에 대한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로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관계는 결국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로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많은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한미동맹까지 약화될 것을 우려했다. ’친일파라는 낙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본 식민지 지배 시절의 토지조사사업, 징용, 위안부 문제 등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 사료(史料)에 근거해서 기성 통설을 논박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는 앞으로 사실 관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이에 입각해서 합리적으로 당면 문제를 풀어갈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2. 잘못된 기대

그러나 그런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이 책의 저자들이 테러를 당하고 출판기념회에 참여했던 부산대 사회대학장인 이철순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김행범 행정학과 교수가 언론과 대학에서 공격을 당했다. 또 이 책을 교재로 강의하려던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의 강의가 중단됐을 뿐만 아니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사실 강의 내용이나 이를 진행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과목의 수강을 취소하면 된다.

이 강의에 있어 논쟁적인 위안부 문제가 강의 주제였고, 논란이 됐던 “학생이 해볼래요”라는 류 교수의 발언은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에 해당한다. 류 교수는 이 발언이 “연구를 해보겠느냐.”는 의미였으며, 일부의 곡해처럼 “매춘을 해보겠느냐.”는 의미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가 해명을 했는데도 이미 강의는 취소됐으며 “사과하라.”고 강압하는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강의의 진행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강을 취소하면 된다. 그 강의를 듣고 싶은 학생들도 있을 텐데 일방적으로 강의가 취소되고 검찰의 수사까지 받는다니.

더구나 그가 강의실에서 발언한 내용도 기본적으로 ‘반일종족주의’의 연구들에 기초한 것인데도 좌파 언론들은 류 교수를 “근거 없이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식으로 비판한다. 그런 비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일종족주의’의 내용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반일종족주의’에 대한 학계의 학문적 비판과 이에 관한 열띤 토론은 보이지 않고 언론과 좌파 시민단체들의 저자들과 책의 내용에 동의하는 지식인들에 대해 ‘친일파’ 내지는 ’매국노’라는 낙인찍기만 요란하게 진행되고 있다. 



3. 정치인과 교수

강제적인 강의의 중단과 검찰의 수사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심지어 소위 우파로 분류되는 정당이나 신문에서도 이에 대한 지적은 하지 않은 채, 류 교수가 부적절했다든가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지적만 하고 있다. 아마도 류 교수가 사회정치적 활동을 많이 하는 영향력이 있는 교수이기 때문에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일 것이다. 그러나 강의실에 선 그는 ’진실’을 추구하는 지식인일 뿐, 여론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인의 신분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강의실 강의 내용을 녹음해서 이를 언론사에 보낸 행위 자체가 학자와 정치인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문제가 있지만, 이런 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매우 낮은 것 같다. 사실 대중의 설득을 통해 집권해서 특정한 이상을 실천하려는 정치가라면 현재 대중의 일반적 인식과 이들의 이해관계와 같은 여러 요소들을 잘 감안해서 원하는 변화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미시정치’라는 책에는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이 극한적 투쟁을 일삼는 석탄 노조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민영화 등의 성과를 냈는지를 다루는데 공공주택 입주자에게 소유할 기회를 주는 정책을 통해 공공주택의 민영화에 대한 극렬한 반대를 극복한 사례가 나온다. 이미 저렴한 공공임대료의 혜택을 받은 이들에게 소유할 기회를 주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는 반대가 있겠지만 정치가로서 그런 반대를 무릅쓴 전략을 썼다.

그래서 미국의 자유주의 학자들도 ’론 폴’ 같은 자유주의 정치인의 행동에 대해 ‘학자’에게 요구하는 논리적 엄격성을 요구하지 않고 전략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제약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의실에서의 류석춘 교수는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다. 강의실의 그에게 정치인처럼 전략적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학문적 엄격성을 추구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자유로워야할 ’학문’의 시장에서 자신의 지적 양심(intellectual integrity)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에 대해, 비록 그것이 논쟁적이라고 하더라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했다고 지금 단죄를 받고 있다.


4.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 경향: 토론문화도 없는데 아예 이견(異見)까지 통제?

인간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할 수 있는지는 그 차제로 인간의 행복 추구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에 더해 그런 학문의 자유가 더 중요해지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할 때 엉터리 주장들이 걸러질 수 있다는 경험적, 결과론적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존의 통설과 다른 주장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시야를 넓히거나 잘못된 시각을 수정할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 그런 곳에서는 잘못된 천동설이 계속 옳은 지동설을 누르고 지배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탈(脫)원전 문제에서부터 위안부 문제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논의가 충분히 가능한 주제에 대해서도, 아예 이견(異見) 자체를 통제하려는 경향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런 경향은 전체주의 국가일수록 더욱 강하기에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화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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