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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종교개혁은 '변비' 덕분이었다?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몸으로 읽는 세계사

입력 2023-03-18 07:00 | 신문게재 2023-03-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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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백승민 기자)

‘사소한 몸에 숨겨진 독특하고 거대한 문명의 역사’. 이 책의 부제다. 우리 신체 부위를 역사와 결합시켰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 자연과 인간 생태계를 연구해 온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추천해 더욱 주목을 끈다. 저자는 “몸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역사를 매우 인간적으로 만들고 과거 사람들을 되살리려 했다”고 집필 취지를 밝혔다.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재미있고 색다른 이야기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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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읽는 세계사|캐스린 페트라스, 로스 페트라스|다산초당

 

 

◇ 파라오 합셉수트 여왕의 ‘턱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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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18 왕조의 5대 파라오 ‘합셉수트’는 여성이었다. 당시 강력한 왕권을 가진 파라오를 상징하던 게 턱수염이었다. 위대한 신 ‘오시리스’의 턱수염을 따라한 것이다. 정치적 힘과 정당성을 상징했기에 그녀도 남자처럼 가짜 턱수염을 붙이고 공식 석상에선 늘 남성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의 조각상에는 여성의 가슴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그는 파라오로선 많은 것을 이루었다. 이집트 무역을 발전시켰고, 수많은 건설사업을 추진했다. 덕분에 이집트에서는 성별을 떠나 가장 성공적인 직무를 수행한 파라오로 인정받고 있다.



◇ 클레오파트라의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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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란 유명한 말을 남긴 철학자 파스칼은 “당시 로마 지도자들이 콧대 높은 매부리코가 지배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여긴 듯 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그녀의 코는 그렇게 높았을까? 저자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초상화에서는 코를 줄이고 로마와 싸울 때는 목과 코를 키우는 등 상황에 따라 달리 했던 것 같다며, 이것만 봐도 클레오파트라는 영리한 지도자가 되려 노력했던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높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모든 일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제우스의 ‘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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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중의 신’ 제우스의 고대 동상을 보면 음경이 정말 작게 조각되어 있다. 그 시대 거의 모든 그리스 영웅과 신의 조각상도 매우 흡사하다. 당시엔 작은 음경이 오히려 완벽한 남성의 특징으로 꼽혔다. 크고 불룩하거나 곧추 선 음경은 무분별한 성관계를 상징해 터부시 됐다. 유일한 예외가 그리스 영웅 ‘아이아스’ 청동상 정도다. 그리스 여성 조각상에는 아예 성기가 없다. 작은 음경을 이상적으로 여긴 미소지니스트(여성 혐오 남성)의 사고 때문으로 해석된다. 남성들은 욕망을 억눌러야 했던 반면 여성들은 그럴 기회조차 거부당했던 것이다.


◇ 찌에우 티 찐의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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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 경 베트남은 중국 오나라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다. 당시 베트남의 전사로 맹활약했던 이가 ‘베트남의 잔다르크’ 찌에우 티 찐이었다. 3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 현장에서 상의를 벗고 코끼리에 올라타 용맹하게 싸우는 그녀는 베트남인들의 희망이었다. 길이가 90㎝에 달했다는 가슴도 화제였다. 서로 엉키거나 어깨 뒤로 넘어갈 정도였다. 이에 적들은 아랫도리를 벗어 맞섰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당시엔 큰 가슴이 소작농 등 낮은 계층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녀가 가슴을 드러낸 것은 그런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반발이었을지도 모른다.


◇ 마르틴 루터의 ‘장(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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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는 전형적인 변비환자 였다. 오랜 시간을 변기 위에서 종교개혁을 구상했다. 루터의 가득 찬 ‘장’이 종교개혁의 근본적 원인이었던 셈이다. ‘성모 마리아를 강간한 사람이라도 지옥행을 면할 수 있다’며 면죄부를 남발하던 당시 교회 부패에 화가 난 그는 가톨릭의 권위에 맞서는 데서 변비라는 고통의 위안을 찾았다. 실제로 그는 장에서 대변을 비워 내고 머리 속에선 역겨운 가톨릭 교리를 비워 낸 뒤 느낀 엄청난 안도감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의 변기는 독일 비텐베르크의 루터 집터 정원에서 발굴되었다.


◇ 성 커스버트의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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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버트는 사후에 성인으로 추앙된 17세기 수도사였다. 사망한 지 11년이 지난 698년에 그의 석관을 열었더니 놀랍게도 시신이 전혀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손톱과 머리카락은 계속 자랐다. 성당 측은 ‘성(聖) 유물’로 사용하도록 다른 성당들에 이를 나눠주었다. 하지만 이후 성유물은 천민까지 가세할 정도로 돈벌이가 되어 교회와 성당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다. 결국 누군가에 의해 커스버트의 시신은 실종되었고 1827년에야 대성당 소유의 땅에서 그의 비밀 무덤이 발견되었다.


◇ 합스부르크 가문의 ‘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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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는 모든 권력과 특전을 누렸다. 하지만 그에겐 일그러진 턱이 늘 핸디캡이었다. 너무 돌출된 탓에 앞니 부정합이 생겨 침을 질질 흘리고, 말을 할 때도 지장을 받았다. 이런 턱은 합스부르크 왕가에 거의 공통적이었다. 하악골전돌증 또는 상악후퇴증으로 추정되는 이 부정합 턱은 가문 내 횡행했던 정략결혼 때문이었다. 당시 가문의 근친혼이 무려 82%에 육박했고 특히 6촌 이내 친척간 결혼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이 유전적 턱은 9대에 걸쳐 연속으로 나타나 가문의 상징처럼 됐다고 한다.


◇ 조지 워싱턴의 의치(義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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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은 치아 문제로 무척 고통을 겪었다. 전쟁터에서도 치과 의사에게 주기적으로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 57세에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그에게 남은 이는 하나 뿐이었다. 워싱턴은 하마의 엄니에 진짜 사람 치아를 넣어 만든 틀니를 착용했다. 9개 치아 비용을 백인 치아의 3분의 1 가격에 흑인에게서 구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워털루 치아’라는 틀니가 흔했던 적이 있다.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전사한 최소 5만 명에 이르는 군인들의 치아로 틀니를 만들었다고 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 레닌의 ‘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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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시신은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수정 석관에 안치돼 있다.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려 레닌을 띄워야 했던 스탈린은 14년 동안 그의 얼굴에 바셀린과 왁스, 파라핀 등을 주기적으로 주사하고 근육에 방부제를 놓았다. 손과 얼굴은 포름알데히드에 담갔고, 죽은 피부에는 발삼(글리세린과 아세트산 칼륨 용액)을 발랐다. 눈과 장기 대부분을 제거하고 체액을 빼내 방부제로 채웠다. 하지만 피하지방이 없는 레닌의 얼굴은 계속 가라앉았고 피부는 누렇게 떠 있는 경우가 많아 ‘밀랍인형’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 벨 가족의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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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멜빌 벨은 말소리를 기록해 재현하는 ‘벨의 보이지 않는 말하기’를 개발했다. 발음할 때 목구멍과 혀, 입술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체계였다. 이후 아들 벨이 전자식으로 만들어진 ‘멜의 보이지 않는 말하기’ 기계를 발명한다. 심한 청각장애를 앓던 어머니를 위해 소리를 더 선명하게 들을 방법을 찾은 것이다. 벨은 1876년 ‘미국 100주년 박람회’에 전화기를 소개해 전자장치 부문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소리를 계속 연구해 청력 측정기를 발명했다. 소리 수준을 측정하는 ‘데시벨’도 그가 만든 용어다.


◇ 치우진과 ‘전족(纏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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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페미니스트 혁명가 ‘치우진’은 ‘전족’ 악습을 타파하려 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중국에서는 10~15cm 작은 발이 지위와 성적인 매력을 의미했다. 발을 꽁꽁 묶던 이 고통스러운 관습은 4~6세 여아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피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발가락은 물론 발 전체가 괴사하기 일쑤였다. 이 악습은 1000년이 넘게 지속됐다. 한족 상류층 가문 출신의 치우진은 페미니스트 신문 ‘중국여성뉴스’를 만들어 전족 타파 등 여성 독립을 촉구했다. 하지만 전족 불법화는 그녀가 처형되고 몇 년이 더 지난 1912년에야 이뤄졌다.


◇ 앨런 셰퍼드의 ‘방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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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미국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는 발사 대기 8시간 동안 방광이 터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우주복을 입은 채로 실례할 수 밖에 없었다. 우주 압력 탓에 방광 괄약근 판막이 손상되어 평생 요실금이 생길 우려가 커졌다. 덕분에 소변 해결법이 연구되어 그의 후임자들은 소변 저장소가 장착된 우주복을 받게 되었고, 콘돔을 변형한 ‘커프스’까지 등장했다. 여성 우주인을 위한 기저귀도 개발되었다. 대변은 엉덩이에 비닐봉지를 부착하고 우주복 뒤쪽 덮개로 뒤처리를 하게 했다. 물론 손가락 덮개가 필수였다.


◇ 아인슈타인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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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1955년에 사망하자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가 부검 중 그의 뇌를 몰래 빼돌렸다. 가족들이 뒤늦게 알고 항의했지만 그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과학계에 내어줄 의무가 있다”고 맞서 설득에 성공했다. 하비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잘라 240개 견본을 만들어 저명한 신경병리학자들에게 보냈다. 이후 연구 결과, 아인슈타인의 뇌는 평균보다 작았지만 두정엽 같은 특정 부분은 더 크고 더 발달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모든 신경교세포끼리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인지 능력이 높아 매우 창의적이었다는 얘기다.


◇ 메리 맬런의 ‘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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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는 지방 소화를 돕는 초록색 담즙을 저장한다. ‘장티푸스 메리’라 불린 메리 맬런 탓에 그 소중함이 알려졌다. 맬런은 최초의 ‘무증상 장티푸스’ 보균자였다. 옮기는 일자리마다 장티푸스를 옮겼다. 한 위생공학자가 그녀의 분변을 검사해 그 사실을 밝혀냈다. ‘접촉자 추적’이라는 질병통제 규약이 그 때 만들어졌다. 장티푸스 박테리아가 쓸개에 잘 숨는다며 의사들이 쓸개 제거를 제안했지만 맬런은 거부했고, 그녀는 남은 인생을 격리된 채 외롭게 살았다. 당시엔 장티푸스 감염자의 10%가 사망했다고 한다. 

 

 

사진=네이버 나무위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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