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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좌절도 사치인 싱글맘… 난 인생역전의 여왕"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경매의 여왕' 이선미 EG소호오피스 대표

입력 2023-07-17 07:00 | 신문게재 2023-07-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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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대표는 "절박한 마음으로 소액으로 경매를 시작했던 그 시절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며 "앞으로도 열정은 있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적극 돕고 싶다"고 말했다.
 

 

‘싱글맘, 암, 경매’ 이선미(쿵쿵나리, 51) EG소호오피스 대표를 주목하게 만든 키워드다. 암 항암치료를 받으며 본인 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홀로 아이 둘을 키우고 경매 법정을 드나들었던 그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인생의 온갖 역경을 이겨낸 ‘대한민국 엄마’이자, ‘경매의 여왕’인 그녀는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그녀의 열정 넘치는 인생 스토리를 직접 들어봤다.


“나 아니면 배고플 애들이 있어봐요.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것이 또 이치가 아닐까요.”

35세 나이에 남편과 이혼한 후, 어린 두 자녀를 책임져야 하는 싱글맘이 된 그녀는 생계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얼마 후 그녀에게 떨어진 것은 암이라는 청천벽력이었다. 2012년 그것도 들어본 적도 없는 육종암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암에 걸렸다는 충격도 당시 그녀에겐 사치였다. 그녀는 “암보다 아이들이랑 먹고 사는 게 더 급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생계가 절실한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게 경매 책 한 권이었다. 경매로 ‘39세에 100억~’이란 제목의 책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녀가 반감을 갖을 만한 제목의 책이었지만, 생계가 급급했던 당시 새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녀는 나도 잘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경매라는 세계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었다.

경매에 매료된 그녀는 암 수술 후 1년간 힘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가 다 빠져나갔지만 두건을 쓴 채 매일같이 경매 법정을 드나들었다. 수많은 경매 카페와 책을 다 섭렵했고 체력이 좀 괜찮다 싶은 날에는 임장도 다녔다.

본인 몸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녀가 이렇게까지 악을 쓰며 버틴 이유는 하나였다. 두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만 아니었으면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죠. 어릴 적부터 너무 치열하게 살아서 지쳤다고나 할까. 그런데 아이들이 내 발목을 잡는 올가미가 되기도 했다가 에너지원이 되기도 했다가 하면서 조금만 참자, 참자 그렇게 버티면서 살았어요. 최소한 성인이 될 때 까지는 곁에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요.”

당시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그녀는 엄마의 빈 자리를 다 채워주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는 게 스스로에게 용납이 안됐다. 아이를 돌봐주던 외할머니도 그녀가 항암치료를 하는 시기에 돌아가셨다. 그녀는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긴 1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녀의 열정이 통했다. 그 힘든 고난의 시간을 버텨내며 2년 만에 30채 가량의 주택을 낙찰받으며 자산을 증식했고, 그녀의 지독했던 간절함은 암도 사라지게 했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경매의 길을 걸은지 올해로 10년째가 됐다. 그간 주택, 토지, 상가 등 총 200건 이상의 매물을 낙찰 받았고, 경매 고수로써 100억원대 성공한 자산가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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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쿵쿵나리) EG소호오피스 대표

 

“(경매로 자산을 늘릴 수 있었던)제 가장 큰 강점은 ‘실행력’입니다. 저는 일단 마음 먹으면 움직입니다. 크게 망설이는 법이 없죠. 물론 무턱대고 시작한다는 개념보다는 일단은 현장을 나가던지 시작은 합니다. 그러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죠. 그러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실행하는 것에 겁을 내죠. 너무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실행을 하지 않으면 한낱 이론에 불과하고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말합니다. 인생 뭐 있어? 그냥 해 보는 거야, 아님말고. 저는 이런 제가 좋습니다.”

실제 그녀는 경매 초창기 집 주변의 경매 물건이 나오면 힘든 몸을 이끌고 현장에 나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독학으로 공부해 낙찰을 한 두 개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 그녀가 경매로 낙찰 받은 집은 경기도 시흥의 전용면적 79㎡ 규모의 한 아파트였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첫 경매를 시작했다. 1억5000만원에 낙찰받아 3개월만에 세금을 떼고 700만원이란 수익을 벌어들였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를 처음 맛본 거죠. 그것도 소액으로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녀는 경매에 올인하기로 하고 남편과 헤어지면서 겨우 지켜낸 아파트를 팔아 종잣돈을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에게 돈 벌어 집을 마련할테니, 1년만 기다려달라며, 보증금 2000만원에 50만원짜리 오래된 빌라에 이사를 가 몸테크를 시작했어요. 밤마다 바퀴벌레가 벽지를 긁는 소리 등 견디기 힘들었죠. 아이들을 이런 집에 살게 할 수 없다며 반드시 번듯한 내 집으로 이사 가리라 다짐했죠.”

그리고 1년 뒤 그 약속을 지켰다. 경매를 통해 공기 좋고 교육환경도 좋은 동네에 신축 빌라를 내 집으로 얻게 됐다. 그녀가 경매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로 보였기 때문이다. “공기 좋은 동네에 살면서 건강도 회복될 수 있었어요.”

그녀의 또 다른 강점은 기획력이다. 상품에 아이디어를 더해 가치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낙찰 받은 물건을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상품화해 시장에 내놓으며 자산을 늘려갔다. 도배나 타일 시공 등도 배워서 직접 리모델링 하는 등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데 중점을 뒀다. 여기에 ‘수수료 2배’ 라는 홍보 전단지를 만들어 부동산에 뿌리면서 더 빠르고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뛰어다녔다.

또 코로나19 시기에 상가 공실이 많아지자, 무인결제 스터디 카페로 개편해 또 다른 수익원을 만들어 냈다. “모든 책상을 단독룸으로 만들었고, 가격도 통일했죠. 사실 기대를 안했는데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대박이 났죠. 지금은 서울, 부천, 안산, 동탄 등에서도 운영하고 있어요. 상표 등록도 했죠.”

EG소호오피스도 공유 사무실이나 공간 대여를 해주는 일을 주요 업무로 다루고 있다. 최근엔 지방의 시골집(촌집, 폐가 등)을 낙찰 받아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거나 공사를 해 숙박업 또는 단기 임대(KK스테이) 사업까지 하고 있다. 어느새 성인이 된 둘째 딸(25세)의 아이디어라고 자랑했다. 엄마의 부동산업을 이어가고 싶어 서울의 한 대학에서 부동산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소개했다.

“바닷가나 풍광이 좋은 산속의 집 같은 경우는 도시의 사람들이 힐링을 찾아서 많이 오기도 하는 데요, 그 전에는 폐가나 오래된 집들이라 무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서 꺼려했거든요. 그런 불편한 점만 해결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해 감성있는 시골집을 만들거나 개조해 한달살기 등 숙박 사업을 시작했죠. 수익도 좋습니다. 딸의 아이디어에서 힌트를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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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쿵쿵나리) EG소호오피스 대표

 

이 대표는 2014년 ‘싱글맘 부동산 경매로 홀로서기’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절박함과 열정이 어우러진 경매로 고수가 되기까지의 시행착오를 생생하게 담아낸 책을 냈다. 그녀의 책은 많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고, 단번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다 못해 2020년 개정판까지 나오며 아직까지 꾸준히 팔리고 있다.

“각종 방송 등에도 출연하며 주목을 받았는데, 책은 자랑하고 싶어 내놓은 것이 아니에요. 당시 절박한 마음으로 소액으로 경매를 시작했기에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낸 것이죠. 방법을 모르고 열심히만 사는 사람들을 돕고 싶고,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길 바랍니다. 결국은 그런 사람들이 선순환 역할을 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일까. 잘 되는 사업이나 돈이 될 만한 낙찰 매물을 제자들에게도 나눠주며 부를 공유해 주기도 한다. 현재는 재테크 칼럼리스트, 스타 경매 강사(행크에듀)로 활동하면서 경매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또 4만 여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쿵쿵나리 스튜디오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다.

 

‘당차고, 저지르는, 대장부’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그녀의 이미지다. 솔직 담백했고, 열정이 넘쳤다. 그런데 아이들 얘기를 할 때는 마음 여린 엄마 모습이었다. 인터뷰 내내 아이들 얘기에 울고 웃었다. “제가 그동안의 고난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을 지키고 잘 키우자’라는 신념 때문이었죠. 하지만 성격이 다정다감한 편의 엄마는 아닙니다. 츤데레 스타일이죠.”

올해 27살이 됐다는 첫째 아들은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 아들은 엄마를 사업가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로서는 낮은 점수를 주는 아들이라며 멋쩍어 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 할 때 근처 분식집에 월 결제를 해 놓고 밥을 먹으라고 한 적도 있다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못 챙겨준 것에 대해 미안함이 크다는 그녀다. 다만 아빠의 부재로 행여나 잘못된 길로 가진 않을까 하는 우려에 “내가 똑바로 살아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엄격하게 키웠다고 했다. 

싱글맘으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게 힘이 되어 줄 것이라는 그녀. 열심히 사는 친구들을 위해서도 후학 양성도 하고 도우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10년 후 예쁜 집에서 전원생활 하면서 책 읽고 글 쓰면서 살고 싶은 게 그녀의 소박한 꿈이다. 

채현주 기자 183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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