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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멈춤의 시간 연극 ‘리차드3세’가 던지는 질문 “그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는가?”

입력 2022-01-1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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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3세
연극 ‘리차드3세’ 황정민(사진제공=샘컴퍼니)

 

“노력한 만큼 합리적인 결과를 받아야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죠. 창작자들이 리처드3세의 악함을 칭찬하거나 찬양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처드3세)가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합리성은 충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극 ‘리차드3세’(2월 1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서재형 연출은 왕자이면서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왕위 계승에서 소외된 리처드 글로체스터(황정민)가 노력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으며 지금을 사는 이들 그리고 그들이 감내해야하는 편견, 부조리, 불합리, 불균형 등을 연상시킨다는 평에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리차드3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2018년 황정민이 10년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면서 초연된 작품으로 ‘오이디푸스’ ‘외솔’ ‘왕세자실종사건’ ‘나빌레라’ 등으로 호흡을 맞춘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 부부의 콤비작이다.

선천적으로 뒤틀린 신체로 왕위 다툼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리처드 글로체스터(황정민)는 뛰어난 언변, 권모술수, 리더십, 유머감각, 교묘한 심리전 등으로 형 에드워드4세(윤서현), 조카 등을 제거하며 왕좌에 오른다.

초연에 이어 랭거스터 가의 왕비 마가렛으로 다시 돌아온 소리꾼 정은혜를 비롯해 ‘검은 태양’ ‘악마판사’ 등의 장영남이 리처드와 대립각을 세우는 엘리자베스 왕비, ‘결혼작사 이혼작곡’ ‘마우스’ 등의 윤서현이 시민전쟁 후 황제가 되는 요크가의 장남 에드워드 4세, ‘블랙메리포핀스’ ‘아가사’ ‘메리 제인’ 등의 임강희가 자신의 남편을 죽인 리처드의 유혹에 넘어가 파국으로 치닫는 앤으로 새로 합류했다.


◇잠시 멈춰서야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리차드3세
연극 ‘리차드3세’ 공연장면(사진제공=샘컴퍼니)

“2018년의 ‘리차드3세’는 나를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질주만 하지 않나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내가 했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왕관으로 상징되는 꿈이나 하고 싶은 것, 목표 등을 향한 질주가 내가 한 것인지, 사회가 나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닌가에 집중했어요. 왕좌를 향한 끊임없는 질주가 멈추는 순간 알게 되는 것들이죠. 나는 왜 질주하고 있는지, 사회는 왜 날 질주하게 만들었는지 등 질주를 멈추고 돌아보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극에도 반영돼 “멈춤의 시간을 지켜볼 수 있게 질주 속도를 줄이고 그게 안되는 부분은 커팅하는 등” 변화를 맞았다. 서재형 연출은 “셰익스피어의 34편 중 이렇게 정리 안된 작품은 없었다”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셰익스피어 본을 잘 정리해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셰익스피어가 표현한 대로 가면을 잘 쓰고 유머 가득한 공연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유머 넘치게 관객과 소통하는 신이 있고 관객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정당성과 합리성을 획득하면 그 자리가 빛나리리 믿었죠. 황정민 배우가 잘 수양하고 계획대로 해주고 계셔서 장면 표현도 잘 되고 있습니다.”

 

연극 리차드3세
연극 ‘리차드3세’ 황정민(사진제공=샘컴퍼니)

◇황정민만의 리처드3세 포인트는 빨간 얼굴?

 

“저만의 리처드 3세 포인트는 빨간 얼굴이죠. 땀이 많아서 1신만 끝나도 (분장이) 다 지워져서 더 그래요. (서재형) 연출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죽이 맞는데다 아주 정확한 디랙션을 주셔서 쉽게 접근했습니다.”

황정민만의 리처드 3세 포인트를 묻는 질문에 껄껄 웃으며 “빨간 얼굴”이라 답한 황정민은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악행은 내가 저지르고 남들에게 미루는 손쉬운 방법에 대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그 얘기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의미를 주지 않나 싶어요. 악행은 내가 저지르고 남들에게 미룰 방법이 있다는 걸 몇백년 전에도 알고 썼다는 데 어이가 없었고 공감됐죠.”

황정민은 ‘리차드3세’의 매력에 대해 “악인이라서가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가 매력적이다. 더불어 이 작품의 매력은 언어”라며 “대사를 하는 데 있어 언어가 얼만큼 크게 작용하는지 배우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 시적인 표현들이 많은 대사들이 매력”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런 걸 자연스레 대사화시키기가 어려워요. 모든 단어들의 장단음을 잘 공부하고 있어야만 관객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대사들이죠. ‘리차드3세’는 배우들이 듣기엔 쉽지만 하기엔 어려운 대사들을 공부하기엔 좋은 작품이에요. 배우로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같아요.” 

 

이어 “영화나 매체 연기를 하다 보면 말에 대한 중요성 보다는 편안하게 얘기하려고 하는데 연극에서만 할 수 있는, 아주 특징적인 모든 것이 다 들어간 작품”이라며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사람들의 관계에서 형성된 각각의 에너지들이 하나로 엮일 때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이 작품의 매력 같다”고 덧붙였다.

 

리차드3세
연극 ‘리차드3세’ 공연장면(사진제공=샘컴퍼니)

  

“그런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클래식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4년 전 고전극(리차드3세)을 선택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그 힘 때문이었어요. 제가 어린 연극학도일 때 선배들이 올리는 수많은 고전을 보고 동경하면서 자랐어요. 그만큼 고전극의 힘을 알고 있었죠.”

그리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부터 고전이 사라졌고 클래식의 위대함도 느낄 수가 없게 됐다”며 “그래서 클래식 시리즈를 시작했고 첫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이었고 ‘리차드3세’도 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관객들께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이 일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선배들이 이렇게 고전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러니 그들이 성장할 토대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다시 돌아온 마가렛 정은혜, 새로 합류한 엘리자벳 장영남·에드워드4세 윤서현

리차드3세
연극 ‘리차드3세’ 마가렛 왕비 역의 정은혜(사진제공=샘컴퍼니)

“2018년과 마찬가지로 진심을 다해 무대에서 황정민이라는 대배우와 에너지를 잘 화합해 보여드리려고 애썼었어요. 마가렛 왕비는 소외되고 외로운 캐릭터예요. 극 안에서 끊임없이 예언하고 저주하면서 이야기를 전달하죠.”


초연에 이어 다시 마가렛 왕비로 돌아온 정은혜는 이렇게 전하며 “리처드에게 저주를 퍼부으면서 던지는 ‘그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는가’라는 질문은 관객들에게 드리는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말을 보탰다.

“리처드가 악을 키우는 동안 외면하고 간과하는가 하면 리처드의 결핍을 모른 체 했던 걸 한번쯤 생각해보시라는 메시지죠. 리처드가 원망을 쏟아내듯 그는 뒤틀리게 태어나고 싶어서 뒤틀려 태어난 게 아니에요. 사랑받지 못하고 지극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너무 많은 사건 속에서 살고 있었죠. 사건을 외면하지 말고 결핍된 사람을 관심어린 사랑으로 지켜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연극 ‘엘렉트라’ 후 4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장영남은 엘리자베스 왕비를 대표하는 것으로 “강한 모성애”를 꼽으며 “아이에 대한 모성은 모든 엄마들이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에드워드 4세 역의 윤서현은 “연극배우를 꿈꾸던 당시 이 무대(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조명 오퍼레이터션을 한적이 있다”며 “핀 조명을 무대 위 배우를 향해 잡은 기억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내가 핀 맞춘 자리를 내가 언제 설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울컥하는 감정을 드러낸 윤서현은 “(지금 그때의) 그 자리에 서서 숨이 끝까지 차오름을 느끼며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극과에서 연기를 전공했지만 전통 연극 연기는 처음이에요. TV 등에서 지금까지 해온 생활연기와는 발성, 호흡 등이 전혀 달라서 상당한 부담감이 있었죠. 하지만 좋은 어른들을 바라보며 자란 아이들은 태도가 바뀐다고 하잖아요. 이 팀 분위기가 그래요. (서재형) 연출님, 황정민·장영남·정은혜 등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과 함께 하며 자신감도 얻고 행복하게 무대 위를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도 무대를, 객석을 지키는 이들에게 위안을

리차드3세
연극 ‘리차드3세’(사진제공=샘컴퍼니)

 

“코로나19에도 객석을 지켜주시는 관객분들께 너무 감사해요.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밀폐된 공간이라 꺼려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찾아와서 공연을 봐주시고 박수를 쳐주시고 응원을 보내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신나요.”

관객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 황정민은 “2018년과는 또 다른 에너지를 느낀다. 커튼콜 때도 뭉클뭉클 올라온다”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고 재차 강조했다. 전세계를 열광시킨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골든글로브 TV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라스트 세션’의 오영수 등 무대를 지키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질문에 황정민은 “원래 무대를 지키던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오영수 선생님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무대를 지켜오신 분이에요. 상을 타니 이슈가 되기는 했지만 늘 굳건히 무대를 잘 지키고 계신 분이죠. 현상들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항상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황정민의 말에 정은혜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국에도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저희가 위로를 드리기 위해 묵묵히 이 자리에서 잘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다”며 “잘 참아낸 괴로움을 잠시나마 내려놓으시고 위안과 위로를 받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재형 연출 역시 “힘든 시기지만 잘 이겨내고 계신다. 좀더 힘내시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위안을 전했다.

“작품 속 대사처럼 불만의 겨울은 가고 햇빛 찬란한 여름은 올 거예요. 그게 자연의 순리이니 저희와 같이 가시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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