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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영감의 원천이 되는 클래식 음악

입력 2023-09-04 14:43 | 신문게재 2023-09-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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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

올 여름을 가장 뜨겁게 달군 작가 둘을 꼽으라면 지난 7월 11일 타계한 밀란 쿤데라와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을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다. 공교롭게도 두 작가는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될 만큼 문학사적으로 위대한 영향력을 가졌다. 더불어 그들의 작품 속에는 클래식 음악의 다양한 원리가 적용돼 있고 음악에 깃든 심상이 작품의 배경과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밀란 쿤데라의 아버지 루드빅 쿤데라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연구가였다.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제자로 훗날 야나체크 음악원장으로 10년 넘게 재직하기도 했다.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웠던 쿤데라는 “내게 예술의 세계를 최초로 열어 보인 건 야나체크의 음악이었다”고 고백했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전체적인 구성을 음악적 구조로 표현한 것 외에도 음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작품 곳곳에 남겼다.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중략)…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며 인물의 갈등양상을 음악적 요소로 차용해 표현했다.

야나체크에 대한 그의 깊은 경외감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로 만든 ‘프라하의 봄’에서도 잘 드러난다. 애초 영화감독 필립 카우프만은 원작소설에 베토벤 음악이 나왔다는 이유로 베토벤 작품을 OST로 쓰려고 했다. 하지만 쿤데라가 독백적이면서 간결하게 표현된 야나체크의 작품을 쓸 것을 주장해 결국 영화의 OST에 야나체크의 곡 4편이 삽입됐다. 특히 자주 등장하는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는 피아노 한대로 풍경화처럼 소묘적이면서 인상적인 미장센을 연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야나체크를 비롯한 클래식 음악을 작품 곳곳에서 다뤘다. 재즈바를 운영하고 음반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출간할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자신의 소설에 반영한 하루키는 소설 ‘1Q84’의 도입부를 야나체크 만년의 관현악곡 ‘신포니에타’로 열었다. 1984년 도쿄의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조용한 택시 안에서 FM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 이 작은 교향곡은 마치 주인공 아오마메 앞에 진행될 거대한 불행의 전주곡처럼 난해하고 파격적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나오는 리스트의 피아노 솔로곡 ‘순례의 해’는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자신의 망가진 과거를 탐색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 외에도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에 실린 단편 ‘사육제’는 로베르트 슈만의 동명 작품을 인용했다. 동서고금의 피아노 곡 중 딱 하나만 무인도로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라는 질문에 슈만의 ‘사육제’를 꼽으며 전개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루키 6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출간 전 예약판매 만으로 온라인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의 관심사인 음악이 이번에는 어떤 요소로 소설에 반영돼 있을지 기대가 된다.

작곡가의 음표가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활자로 펼쳐지는 책을 마주하며 그 음악을 직접 들어보는 것. 어쩌면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가장 근사한 여가 활동이 아닐까?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사업지원파트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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