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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 베껴읽기] 이인규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입력 2023-03-2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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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의 자전적 고백서이자 실제 수사기록이다. 저자는 2023년 2월 21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남에 따라 국민들에게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논두렁 시계’ 사건을 비롯해 검찰의 모멸적 수사에 따른 노 전 대통령 자살설 등 항간에 잘못 알려진 많은 사실들에 대해 당시 조사의 책임자로서 당시 사건과 조사의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출간도 되기 전에 이 책의 내용과 저자를 향한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다. ‘노무현을 죽인 검찰’이라는 프레임이 여전한 탓으로 보인다. 당시 조사 때문에 한 동안 직업도 갖지 못하고 해외로 나가있을 수 밖에 없었던 저자가 10여 년 만에 풀어 놓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덮어졌던 실체적 진실을 들어보자.

 

◇ 노무현 수사의 진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국세청의 2008년 7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탈세 고발사건에서 시작됐다. 국세청은 당시 세무조사 과정에서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부동산 거래 사실, 노 전 대통령 재임 때 박 회장으로부터 회갑선물로 시가 2억 원 상당의 피아제 남녀시계 한 쌍을 받은 사실, 그리고 퇴임 직후인 2008년에 차용증을 써주고 15억 원을 빌린 사실 등을 파악하고 있었다. 저자는 “박연차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스폰서였다”고 적었다.

 

박 회장은 이외에도 청와대 경비 명복으로 3억 원을 정상문 당시 청와대 비서관에게 주었고, 노 전 대통령 아들 노건호 씨의 미국 주택구입자금 명목으로 100만 달러를 주었다고 자백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사업자금으로 500만 달러를 준 사실도 인정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거의 모든 것을 부인 권양숙의 책임으로 돌리고, 자신은 뒤늦게 알았다고 한발 물러서며 법적 책임을 면하려 했다고 저자는 적었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노 전 대통령의 이런 태도에 지지세력들이 더 가혹하게 뭇매를 때렸다. 진보 언론들도 ‘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노무현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지도자답게 산화하라’고 맹폭을 가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강금원 회장도 구속했다. 저자는 그가 장관 인사와 청와대 인사에까지 깊숙이 관여한 증거를 들면서 “강 회장이야말로 ‘국정농단자’”라고 일갈했다.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의 사업체가 될 ‘봉화’에 자금을 유치한 사례를 들면서 “박근혜 정부의 미르재단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꾸짖었다.

 

◇ 노 대통령의 자살, 다시 활개치는 ‘노무현 팔이’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구속을 계기로 노무현 수사에 가속이 붙는다. 노 전 대통령은 그제서야 ‘사람세상’이라는 자신의 홈 페이지에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적었다. 더 이상 자신은 지지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은 이제 민주주의나 진보 정의 진실 같은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며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적었다. 저자는 사실상의 항복선언으로 평가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불구속 수사 방침을 정한 검찰은 명품시계 수수 부분을 뺀 나머지 정황에 관해 질문서를 보내면서 2009년 4월 30일 대검 중수부로 출석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저자를 비롯한 검찰 조사관들은 조사 당일 모두 예의를 지켜 전 대통령에게 예우를 다했다고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노 전 대통령이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 팔리잖아”라며 먼저 시계 부분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권 여사가 시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회갑일인 2006년 9월 27일이 아니라 퇴임 후 1년 5개월 정도 후에 형 노건평의 부인에게서 받아 두었다가 1년 넘게 이를 숨겼던 것이고 진술했다고 저자는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거듭해서 자신은 시계를 본 적이 없으며 그마저도 권 여사가 겁이 났던지 밖에다 내다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때 이미 박연차 회장에게 고마움을 분명히 표현했다는 정황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른바 ‘논두렁에 버렸다’는 시나리오로 노 전 대통령을 폄훼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이 개입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적었다.

 

문제는 대면 조사 후 신병 처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벌어졌다. 저자는 미국에서 주택구입 사실을 확인하는데 시일이 소요된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추가 금품수수와 미국 주택구입 관련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 추가 조사하는 사이에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세간에선 “검찰이 신속하게 구속수사했다면 그럴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비난과 함께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인간적인 모멸감을 검찰이 주었기 때문”이라는 확인 안된 루머들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노무현을 비판하던 동료들과 진보 언론들의 태도도 표변했다. 저자는 특히 당시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을 강하게 질타했다. 변호인으로 무능했다고 일갈했다. 변호인으로서 노 전 대통령을 위한 의견서도 한 장 내지 않았고, 더욱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2021년 6월 자신의 회고록 <운명>에서 사실을 왜곡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전 대통령 사망 때만 해도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던 사람이 나중에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과 진배없었다”고 말을 바꿈으로 검찰의 노 전 대통령 수사를 폄훼하고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저자는 “대통령 출마를 결심하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무현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많은 정치인들과 진보언론들도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의 과오를 비판하고 거리를 두더니, 선거판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검찰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저자는 “심지어 그들이 의미를 상실했다며 손가락질했던 ‘노무현 정신’을 다시 입에 올리며 ‘상주(喪主) 코스프레’에 앞다퉈 나섰다”며 맹비난 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을 이용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 재벌기업 수사 

 

저자는 2002년 8월 서울지검 2차장 산하 형사9부장으로 부임했다. 나중에 금융조사부로 확대 개편된 조직이다. 당초 특별수사부에서 담당하던 기업 금융 수사를 형사부에서 맡아 성공리에 처리하면서 이곳에서 그는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부임 당시 소속 검사들에게도 “사자의 능력을 가진 우리가 하이에나처럼 죽은 고기나 먹을 수 있느냐”며 적극적인 수사를 독려했다고 적었다. 

 

그는 이곳에서 명동사채업자와 새롬기술 수사를 담당한 후 이른바 ‘불법 대북송금 사건’을 맡게 된다. 현대그룹이 북한에 4억 5000만 달러를 불법으로 보낸 사건이었다. 저자는 검찰이 사실상 전모를 모두 밝힌 사건을 당시 노무현 정부가 전 정권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특검’으로 포장했다고 비판했다. 당시 집권 세력의 입맛대로 짜인 각본에 따라 특검 수사가 이뤄지는 바람에 결국 법치주의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법과 절차 위반이 자행되어 북한만 이롭게 했다고 비판했다. 보수 정치권 역시 당리당략에 급급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했다고 싸잡아 꼬집었다.

 

재벌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의 시작은 SK부터 이뤄졌다. 최태원 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워커힐 주식과 SK C&C가 가진 SK주식회사 주식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수백 억 원의 이득을 취한 혐의를 밝힌 언론보도가 시작이었다. 재벌기업의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한 편법적이고 불법적인 부의 세습을 막아야 하겠다고 판단한 저자는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벌여 엄청난 증거 확보에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수조원 규모의 분식회계 사실이 적발되었고 이를 계기로 SK를 비롯한 재계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되었다. 전방위적인 로비와 수사방해가 있었지만 결국 검찰은 사상 처음으로 재벌 회장이 구속되는 전례 없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검찰 수사는 정치권의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된다. 기업인 수사 과정에서 이해창-노무현 대선 후보 및 각 당에 엄청난 불법자금이 흘러 들어간 정황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룹들이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200억~300억원은 물론이고 노무현 당선인에게는 별도로 당선 축하금까지 제공되었음이 추후 수사에서 밝혀졌다. 노무현 정권이 부당내부거래 수사를 시작으로 이뤄진 재벌기업 수사 자체를 탐탁치 않아 한 이유였다. 

 

새 정부는 오히려 ‘속도조절’ 압박을 하기도 했다. 정권 교체기라는 미묘한 시기에 자신들의 허락 없이,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형수사로 참여정부 출범에 부담을 주었다며 질책했다. 노 전 대통령도 이 같은 범죄와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으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유체이탈 화법’으로 항변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개혁 대상인 검찰이 새로 탄생한 정권에 저항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가진 검찰과의 대화에서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 배경이다. 하지만 불법 대선 자금지원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모두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게 된다. 결과적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이회창은 낙마하고 노무현은 최대 수혜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빚어졌다고 저자는 평가했다. 정치권과 기업인들이 고초를 겪었으나 저자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 기여했다”고 자평한다.

 

◇ 이인규에게 검사란?

 

저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가 ‘두 얼굴’을 가졌음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공정한 룰에 의해 작동해 일탈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검사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검사가 된 것도 ‘나쁜 놈’, 그 중에서도 ‘힘센 나쁜 놈’을 수사해 처단하는 일을 하고 싶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란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이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자신도 이에 불의를 참지 않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검사가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워낙 노무현 수사에 그의 모든 경력이 초점 맞춰져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는 검사로 재직하면서 한미범죄인인도조약(SOFA) 체결과 자금세탁 방지법 체제 구축에 크게 기여한 것을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로 꼽았다. 

 

저자는 책에서 전·현직 정치인 및 관료들과의 인연도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이다. 저자는 노 전 대통령 조사 과정에서 느꼈던 서운함에 더해 문 전 대통령이 국가 수장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국민들을 갈라치기하고 종복적인 유화정책으로 북핵위기를 가져와 국가와 국민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동훈 현 법무장관과의 인연도 짤막하게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임관 1년을 갓 넘은 검사로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재벌수사에서 기여를 많이 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영민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인상에 논리적이고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탁월했다. 기회가 주어져 경험이 쌓이면 크게 성장해 검찰의 동량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검사 출신의 윤석열 현 대통령과의 인연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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