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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단톡방이 사라지면 행복도는 올라갈까?

[이희승 기자의 사적라이프] 단톡방 스트레스
일과 취미, 종교, 교육등 범람하는 단체 카톡방의 암묵적인 룰
과도한 이모티콘, 자랑하는 프로필사진 금물

입력 2024-02-01 18:00 | 신문게재 2024-02-0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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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백승민 기자 optimaporma@viva100.com)

회사의 문화부가 4명이던 시절, 의도치 않게 워킹맘 4명으로 구성된 학교 엄마들의 단톡방에 취재일정이 오픈(?)된 적이 있었다. 분명 부서원들과의 단톡방에 일정을 공유한 거라 철썩같이 믿었는데 인터뷰 예정인 배우와 장소, 시사회 일정 등을 하필 그 방에 올린 걸 나중에야 알았다. 한참 후 열어본 단톡방에는 “우와, 조인성 인터뷰해요?” “이 영화 보고싶었던 건데......” “내한 행사를 포시즌에서도 하네?”등의 반응이 올라와 있었다. 한참이나 지난 탓에 메시지 삭제도 되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비스무리한 실수가 이어졌다.


봉사 단톡방에 가족톡방에 올릴 여행 항공권 일정을 잘못 올리기도 하고 바쁘게 이동하다 톡을 확인하는 경우엔 다른 방에 반말로 대답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예를 들면 성당구역장님이 “이번달 모임 장소는 OO입니다”라고 올린 톡에 남편이 보낸 “아침에 토비 밥 주고 출근함”이란 말에 대한 답변인 “알았어”를 혼동하고 다는 식이었다. 처음엔 그저 건망증이 심한 거라 여겼다. 몇번을 확인하고 올리는 것도 한두번이지 결국 단톡방을 되도록 안 만드는 게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카카오톡에서 제공하는 기본 무료 이모티콘인 이모지
30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내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활용한 무료 기본 이모티콘인 이모지의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카카오)

 

최고의 국내 사용자 수(MAU)를 보유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부동의 1위다. 모바일 빅데이터 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23일 공개한 ‘빅테크 플랫폼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달 안드로이드와 아이폰 카카오톡 앱의 MAU는 4102만 1737명으로 집계됐다. MAU는 한달에 한번 이상 서비스를 사용한 이용자 수로 앱이나 웹 서비스를 실제로 몇명이 사용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지는 단톡방의 범람이었다. 회사에서는 부서별로, 사회에서는 출입처 별로 구분되는 게 기본. 새학기가 시작되면 개인정보동의서에 사인했다는 합법적인 이유로 학부모 방이 만들어진다. 농구학원이라도 한번 보내려하면 시간대와 요일이 같은 자녀들끼리 묶은 코치의 초대를 받는다. 팀의 운영스케줄과 사전 안내를 공지하는 시스템이다.

사실 두 명 이상 저녁 약속이라도 잡을라치면 이제 단톡방은 국룰(국민과  룰을 합친 신조어)이다. 각자가 선호하는 음식과 리뷰 그리고 장소까지 편하게 수다를 떨다 공유하기 버튼만 누르면 라인, 밴드, 카카오톡과 페이스북까지 올릴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단톡방 만큼 현대인의 피로도를 높이고 동시에 소속감을 주는 존재도 드물다.

색즉시공
영화 ‘색즉시공’의 한 장면. 이 정도 강도는 아니지만 그 이상의 군무로 결속력을 다지는 공통점이 동네 스포츠 센터에도 엄연히 존재한다.(사진제공=쇼박스)

 

최근 주 1회 나가는 스포츠센터에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수업시간은 오전 10시. 직장인이라면 결코 나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공식적으로 금,토요일에는 쉬는 취재기자의 삶에서 월 2회 정도는 참여할 수 있는 스케줄이었다. 파워로빅. 라인댄스와 에어로빅 사이에 위치한 장르의 수업이었는데 어지간해서는 T.O(Table of Organization )가 나지 않는 인기 수업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대한민국에는 엄마라는 이름을 기꺼이 선택한 타고난 춤꾼들이 너무 많다. 유행하는 K팝 노래에 군무를 추는 모습을 보곤 몇달을 노리고 노리다 겨우 등록했다. 하지만 출석률이 좋지 않은 탓에 진도 따라가기도 급급했다. 주 5회 출석하는 선배맘들의 각 잡힌 동작을 경이롭게 바라보려 매주 바뀌는 리듬에 몸을 맡겼다. 

등록한 지 석달이 지난 즈음 전 타임이 끝난 직후라 땀내 가득한 공간에 들어섰다. 그간 간단히 목례만 했던 회원들의 뭔지모를 시선이 느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날은 막 완성한 안무를 확인받는 자리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가 검은색 긴 바지에 빨간 티셔츠 차림이었다. 하필 그날 흰 티셔츠에 빨강, 초록, 노랑이 형광색으로 박힌 반바지 차림이라니. 

수업이 10분만 지나도 흡사 1만리터의 땀을 흘리는 듯한 수업이라 다들 애슬러저 룩을 고집하지만 비디오를 촬영하는 날은 드레스 코드가 있었던 것이다. 곡의 콘셉트에 맞춰 일주일 전 단톡방을 통해 공지한다고 했다. 순간 한 회원이 “단톡방에서 공지 못 받았어요?”라고 물었고 무언의 눈빛이 오갔다. 그제야 지난 몇달간 그들에게 섞일 수 없는 존재였음을 알았다. 

몸 푸는 선수들
피트니스 센터의 평온한 분위기.(연합)

 

춤을 추는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흡사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군단 사이에서 혼자 공동 개최국이었던 일본의 유니폼을 입은 느낌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신발장에서 파워로빅의 총무라며 신분을 밝힌 아리따운 여성이 “매번 번호를 물어본다는 것이 빛의 속도로 사라지셔서 그럴 수가 없었다”며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신입회원 환영회 및 친목도모의 날이 마침 돌아오는 수요일이라고 했다. 지난 몇달 간 그 환영회조차 초대받지 못하는 뜨내기 회원이란 의미였지만 일부러 연차를 내 참석했다. 

단톡방에 초대받은 뒤 회원들의 환영인사와 더불어 무언의 이너서클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성별과 나이, 직업과 아이의 유무는 상관없었다. 등록 기간이 길다고 우대받는 것도 아니다. 요즘 말로 눈치로 다져진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로 분위기를 이끌고 ‘중꺽그마’(중요한 것은 꺽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로 무장한 멘탈이 있어야 했다. 

부끄럽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멀티 프로필 기능을 몰랐다. 프로필 사진을 꽤 열심히 바꾸고 꾸미는 1인이라 가뿐하게(?) 신상이 털렸다. 과거사진과 상태메시지를 통해 아이는 몇명인지, 언제쯤 이사를 왔는지도 아는 눈치였다. 이럴수가.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지는 행복배틀보다 더한 야생의 세계였음을 미처 몰랐다. 굳이 이렇게까지 구분을 해야하나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그날 이후 멀티프로필 기능을 적극 사용 중이다. 

올해 초 카카오는 주요 신규 기능을 묶어 소개한 큐레이션들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그 중 10~30대는 작년 새로 출시된 카카오톡 기능 중 실수를 줄여주는 기능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채팅방을 오가면서 실수하는 것을 방지하는 ‘현재 채팅방 입력창 잠금’ 기능에 큰 관심을 보인 것. 괜한 동지의식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대부분 연령대가 채팅 에티켓과 조용한 채팅 기능에 관심을 보인 데 비해 50대는 새 카카오톡 친구를 추가하고 관리하는 것을 선호했다.

지난해 추가된 ‘조용히 나가기 기능’은 회사원들의 열띤 반응을 얻었다. 단체 채팅방에서 퇴장할 때 ‘조용히 나가기’ 옵션을 체크하면 ‘OOO님이 나갔습니다’라는 문구가 표시되지 않도록한 기능이다. 채팅방 다른 참여자에게 퇴장을 알리지 않고 나갈 수 있어 인기를 얻었는데 되려 그 기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 졸업 후 만난 엄마들 모임에서 “그때 왜 나갔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받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에 남겨 보는 모교
아이와 관련된 학부모들의 단톡방은 워킹맘들이 결코 간과해선 안돼는 눈치게임의 장이다.(연합)

 

기억을 거슬러 보니 학기 초 반대표 엄마에게 초대를 받은 단톡방에서 별 다른 인사없이 나왔는데 거기서 여름 물놀이, 책 읽어주는 엄마 선정 등 각종 행사까지 정해진 모양이었다. 학기초반에 당당히 나가버리자 다들 당황했고 친분이 쌓이면서 여러 행사와 모임에 나오지 않는 존재를 짐짓 궁금해 했다고 했다. 

대부분이 전업주부인 그들 앞에서 “회사에서 만든 각종 단톡방도 충분히 지겹다” “일적으로 만들어지는 단톡방에 피로도가 너무 높다”는 말은 재수없음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냥 미소만 지었다. 그러자 한 엄마가 “많이 불편하시면 제가 만나자고 한 이 방도 나갈게요”라며 눈 앞에서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나중에 이 이야길 아는 워킹맘 선배에게 들려줬더니 현실적인 조언이 돌아왔다. 아이들이 저학년일수록 그리고 교육과 관련된 단톡방은 절대 나가면 안된다고 했다. 이모티콘을 많이 남기거나 줄임말을 하는 것도 금물. 되도록 프로필 사진은 반려동물이나 꽃 등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너무 자주 의견을 올려도 욕을 먹지만 눈팅만 해도 말이 나오는 곳이 학부모의 단톡방이라고 했다.

앞서 밝힌 운동 커뮤니티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겪은 일종의 웃픈 에피소드가 넘쳐났다. 여러 운동 관련 커뮤니티에 ‘친분’ ‘회식’ ‘단톡방’만 쳐도 비슷한 사례가 무수히 드러난다. 살을 빼려고 수영을 등록했는데 회원들끼리 돌아가며 간식을 준비하는 분위기라 한달만에 그만뒀다는 사연, 서킷 모임에 들었다가 자꾸 소개팅을 권하는 엄마 뻘 회원의 오지랖이 괴롭다는 글도 있었다. 

쓰레기와 조깅을 동시에 하는 폴로깅을 즐긴다는 한 남성은 “그냥 수줍은 성격일 뿐인데 너무 철벽을 친다고 말이 나오더라. 나중엔 게이 아니냐는 소리를 다 들었다”면서 “친목금지, 존대 필수라는 공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소통을 위해 탄생한 존재가 되려 진정한 소통을 방해하는 세상이다. 카카오톡 넘어 휴대폰이 있었고, 휴대폰 저 너머에 인터넷이 있었겠지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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