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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품위있게 해고하러 다니다 인생 종치게 된 그때… 영화 '인 디 에어'

[#OTT] 조지 클루니의 숨겨진 인생 역작, 티빙·웨이브 영화 '인 디 에어'
온라인 해고 시스템 봇물처럼 터지던 시기 시의적절한 주제 던지며 화제작 등극

입력 2024-02-21 18:30 | 신문게재 2024-02-2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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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 디 에어’는 ‘고스트 버스터즈’로 유명한 아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아들이자 화제작 ‘주노’를 내놓은 제이슨 라이트만이 연출을 맡았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남자는 늘 공허하다. 돌이켜 보면 성인이 된 후로 3분의 1 이상을 비행기 안에서 살았다. 그에게 공항은 또 하나의 집이나 다름없을 정도. 미국 전역을 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게 직업적 특성이다. 영화 ‘인 디 에어’ 속 조지 클루니는 해고전문가로 명성이 높다. 유일한 목표는 1000만 마일리지를 모아 세계 7번째로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 것. 1000만 마일리지에 성공하고 승무원들이 축하 속에 기장이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말에 당당히 “난 여기 출신”이라며 비행기 안을 가르킬 정도다. 

실제 삶 속에서는 전용기를 탔을 조지 클루니지만 극 중 라이언은 좁은 좌석 안에 몸을 구겨 넣는다. 아마도 회사 중역은 아닌 모양이다. 1년의 322일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며 평온을 얻는다. 답답한 공기와 운이 좋아야 옆 좌석이 비는 이코노미 좌석이여도 그는 그 곳에서 평온을 얻는다.

당연하게도 옆자리는 늘 바뀐다. 코 고는 할머니도 있고 유난히 수다스러운 남자도 있다. 그 와중에 알렉스(베라 파미가)를 만난다. 혼자인 게 익숙한 또다른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당연한 듯 서로의 살갗을 비빈다. 어쩌면 늘 붙어있는 사이보다 행운일지도 모르는 관계다. 불꽃처럼 만나 다음을 기약하며 사라진다. 길고 지루한 비행기 안이 이렇게 설레기도 오랜만이다.

‘인 디 에어’의 커플은 이제 막 시작했지만 연륜이 있다.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치기어림을 벗어나 30대와 40대에 겪는 농염함 어딘가에서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관계’에서 오는 솔직함으로 두 사람은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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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척이지 않고 마일리지에 열광하는 모습이 흡사 자신의 모습을 보는듯 했던 라이언. 제대로 뒤통수 맞는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처음에는 대충 둘러댔을지언정 남자는 용기를 낸다. 이 삶을 끝내고 여자에게 정착하기로. 그리고 한 순간 진심이었던 그 감정은 여자가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이자 한 남자의 성실한 아내로 살고 있다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 깨진다.

“이렇지 않기로 했잖아요”라며 배신당한 표정을 짓는 여자의 모습에서 라이언은 진실을 깨닫는다. 안정적인 삶을 갈구하지만 정작 사회적으로 가장 보편화된 삶 속에서 인간은 또다시 자신에게 결핍된 뭔가를 찾아나선다는 것을.

‘인 디 에어’는 조지 클루니가 가진 돈 많은 싱글남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영화다. 유명세로 따지면 변호사 세계에서 자신과 동급이었던 미모의 인권전문가를 만나 쌍둥이 남매를 둔 유부남이지만 그는 한때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가장 결혼하고픈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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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최소한의 것들로 가방을 챙기는 라이언.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한번의 결혼을 빠르게 정리한 후 미국 드라마 ‘ER’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통장 잔고였다. 자신의 에이전시에게 “돈 때문에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면 알려달라”고 했고 그 목표를 이루자 직접 제작과 작품을 골라 출연하기로 유명하다. 

그 시작점에 만난 ‘인 디 에어’는 할리우드에서 치환된 공항이란 공간에서 자신이 느낀 외로움과 인간의 양면성을 작정하고 표출한 느낌이 강하다. 극 중 열린 배낭에 넣을 인생론 강연을 하는 그는 집, 차, 인간관계, 빚 등 현대인들이 갈구하거나 잠식된 채 모르고 사는 모든 존재를 일갈한다. 

“배낭 하나에 친구의 친구부터 가족까지 원하는 사람을 넣는다고 쳐요. 그 안에 수많은 비밀과 타협,논쟁이 가득하겠죠. 그 어깨끈이 느껴져요? 다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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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의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있을 줄 알았을 인생을 살아왔다. 그에게 던지는 선배들의 대답은 과연 무엇일까.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동시에 풋풋한 모습의 안나 캔드릭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온라인 해고 시스템 개발자인 나탈리는 직접 만나서 회사가 당신을 왜 원하지 않는지를 대면하지 않고 처리하는 걸 제안한 당돌한 캐릭터다. 무엇보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막 도약하기 시작한 시기에 대선배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내뿜는다. 

신입직원의 제안에 쌍수들고 환영한 회사도 어이없지만 그간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며 품위있게 해고를 해왔던 라이언은 뭔가 밀리는 느낌이다. 이에 나탈리에게 직접 발로 뛰며 비극을 전하는 존재이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직원에게 마지막 예의를 차리는 대행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자신의 삶을 가르쳐 주기로 결심한다.

‘인 디 에어’는 한국에서는 크게 히트치지 못했지만 그해 리틱스 초이스 영화상에서 7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돼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다. 골든 글로브상에서 5개 부문에 후보 지명되어, 최우수 각본상을 거머쥐며 변화하는 시대의 아쉬움을 극명히 전했다. 이 영화의 개봉을 시작으로 해고의 칼날이 더없이 팍팍해졌음은 외면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이다. 현재 티빙과 웨이브에서만 볼 수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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