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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사과가 사라진다

입력 2024-03-05 14:23 | 신문게재 2024-03-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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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생활경제부장

조만간 한국에서 붉은 사과를 찾아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사과 껍질이 붉게 변하는 건 9월 중순 이후 더위가 가시고 기온이 내려가며 사과껍질에 천연 색소인 안토시아닌 성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과의 안토시아닌은 낮기온이 20~25℃, 밤기온이 15~18℃ 가량으로 떨어졌을 때 가장 잘 생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온난화로 밤 기온이 올라가면서 빨간색으로 변하지 않고 녹색인 채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런데 최근 기후 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착색이 지연되고 껍질 색이 선명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촌진흥청은 최근 들어 ‘빨간 사과’가 아닌 황옥, 골든볼 등 ‘노란 사과’ 보급에 나서고 있다.

나아가 온난화가 지금 같은 추세로 계속된다면 2100년에는 한반도에서 사과 재배가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환경부가 지난 2020년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현재 수준으로 배출이 지속됐을 때 80년 후인 2100년 한국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750년) 대비 4.7℃나 상승한다.

이렇게 되면 2100년에는 한반도에서 사과 재배에 적합한 지역은 전체 농경지의 0%가 될 것으로 환경부는 예상했다. 재배 가능한 지역도 0.2%에 그친다. 국내산 ‘붉은 사과’는 말 그대로 씨가 말라 버리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지난 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 전망 2024’ 보고서에 따르면 사과 재배면적은 지난해 3만3800헥타르(㏊)에서 2033년 3만900ha로 연평균 1%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2033년까지 9년 동안 사과 재배면적 2900㏊(8.6%)가 줄어드는 것으로 축구장(0.714㏊) 4000개가 사라지는 셈이다.

재배 면적 감소 탓에 사과 생산량은 올해 50만2000톤(t)에서 2033년 48만5000t 내외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했다. 생산량 감소로 사과 소비도 줄어 1인당 사과(후지 상품) 소비량은 올해 9.7㎏에서 2033년 9.5㎏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사과뿐만이 아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9489㏊이던 배 재배면적은 2032년엔 8700㏊까지 줄어들 전망이며, 배 생산량도 2023년 20만t에서 2032년엔 19만4000t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제주 감귤’은 ‘강원도 감귤’로 대체된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 귤(온주밀감)의 재배 적지는 제주지만, 2090년이 되면 제주는 한라산 산간을 빼곤 재배가 불가능해지고 대신 2030년대 전남 해안가를 시작으로 경남, 강원도 해안으로 재배지가 확대되면서 경북, 충북, 전북도 감귤 재배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2020년 기준 제주지역 노지감귤 재배 면적은 1만1234㏊로 2010년 1만8190㏊ 대비 38.2% 감소했지만, 제주를 제외한 타 지역 노지감귤 재배 면적은 2010년 63㏊에서 2020년 들어서는 109㏊로 10년 새 73% 늘었다.

우리 후손들은 장차 차례상에 붉은 사과 대신에 감귤을 놓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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