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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배수빈 “사랑, 존재 대 존재의 충돌 그리고 욕망”

[人더컬처]철썩같던 환상이 깨지자 사랑은 절규가 되었다!

입력 2024-04-19 18:00 | 신문게재 2024-04-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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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빈추가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

 

“극 중 ‘사랑은 판단력을 흐리고 두 눈을 감기고 얼굴마저 바꿔 놓습니다’라는 르네 대사가 저는 너무 좋아요. 어떻게 보면 사랑도 우리가 막연하게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켜주는 판타지가 아닌가 싶거든요. 누구라도 그걸 깨지 않고 그냥 계속 가져가고 싶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그렇고.”

배수빈은 자신이 연기하는 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 5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의 르네 갈리마르(배수빈·이동하·이재균, 이하 가나다 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배수빈추가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1964년 문화대혁명을 앞두고 전운이 감도는, 동서양 간의 식민의식과 우월주의 등이 팽배하던 때의 중국 베이징을 배경으로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가 신비로운 중국의 경극배우 송릴링(이하 송, 김바다·정재환·최정우)에 빠져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ry Hwang)이 프랑스 외교관 버나드 브루시코와 경극배우 쉬 페이푸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본을 집필해 1988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지난해 11월까지 공연되며 꾸준히 사랑받았던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12년 첫 선을 보인 후 2014년, 2015년, 2017년에 이은 다섯 번째 시즌이다.

송이 자신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을 철썩같이 믿는 르네와 살기 위해 연인을 속이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는 송.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늘 꿈꿔왔던 순종적이고 완벽한 연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고 무례하고 지옥 같은 이 체제에서 구원해줄 사람을 갈구하며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이야기이자 욕망에 대한 비극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환상과 욕망, 그걸 지키고 싶었던 이들의 이야기

엠 버터플라이1
연극 ‘엠. 버터플라이’ 공연장면. 르네 역의 배수빈(왼쪽)과 송 릴링 김바다(사진제공=연극열전)

 

“그렇게 원하는 대로 끌고 가고 싶어하는 게 르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르네는 사실 알았을 수도 있어요. 송이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당신이 (내가 원하는 완벽한 연인의 역할) 그걸 해준다면 나는 그걸 당신으로 인정하겠어’라면서 계속 그 생활을 유지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이잖아요. 챙길 거 챙겨가면서 꿈을 꾸고 싶었던 건 르네나 송이나 다 똑같았던 것 같아요.”

이어 배수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어느 때는 비즈니스가 우선이다가 스스로의 꿈을 쫓기도 하면서 밸런스를 맞추면서 가려고 하는 게 인간”이라며 “그래서 이 극이 힘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배수빈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

 

“그렇게 이해도 됐다가 안타깝기도 했다가 바보 같기도 했다가…이런 지점들이 좀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작품이 그저 단순한 사랑 얘기라고만 하기 어려운 게 그 지점 같아요.”

배수빈 역시 “처음 연습실에서는 배우들하고 사랑에 집중해서 좀 찾아가 보려고 했다”며 “하지만 결국엔 마지막에 르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를 찾다 보니 오롯이 사랑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사랑은 밑바닥에 깔려 있어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었을 뿐이죠. (20여년이라는) 그들의 세월이 사랑을 증명해 주기도 하잖아요. 결국 저마다의 욕망, 니즈, 환상을 쫓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죠. (저마다가 쫓는) 그것의 부서짐들이 결국 르네도 송도 파국으로, 급기야 죽음으로까지 가게 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렇게 저렇게 사랑만 해보려고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이더라고요.”


배수빈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

◇르네의 모든 것 송, 존재 대 존재의 격돌

 

“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뼈대는 권력에 대한 욕망 같아요. 당시 서양인들이 동양을,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강화됐을 때 그 시대에 맞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관계의 전복에 대한 희열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집안 좋은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승진’을 미끼로 쥐락펴락하는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늘 우위에 서지만은 못했던 르네에게 송은 배수빈의 말처럼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도 르네였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은 합니다. 꿈에 그리던 누군가를 만났잖아요. 내 모든 것들을 받아주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최대한 유지하고 싶었을 거예요.”

이어 배수빈은 “르네는 굉장히 센스티브한 사람”라며 “어릴 때부터도 이성에 대한 두려움 등이 대본에 좀 있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은 마크처럼 일반적인 남자의 이유와는 달리 분위기나 에티튜드, 느낌, 정서, 취향 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부연했다.

“그걸 억누르고 살아야 하다 보니 생기는 그반대급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극 중 정육점집 아들이 오페라를 보고 느낀 희열은 신분 상승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이 작품은 존재 자체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죠. 르네와 송이 존재 대 존재로 부딪혀 욕망과 환상, 그것을 실현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인정하거나 밝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문제요.”

배수빈
연극 ‘엠. 버터플라이’ 르네 역의 배수빈(사진=이철준 기자)

 

이어 “결국 꿈에 그리던 완벽한 존재를 취하고 싶고 마음대로 누리고 싶은 권력욕이나 욕심에 집중했다”는 배수빈은 “그거까지 건드리지 못한다면 이 공연은 겉핥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것을 뚫고 들어갔을 때야만 마지막에 내(르네)가 스스로 나비부인이 돼 갈 수 있는 힘이 좀 생긴다는 걸 느꼈습니다. 르네와 송은 시대적 상황, 정치적·외교적 문제들이 맞물린 큰 사건의 인물들처럼 보이죠. 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걸 취하고 싶고 마음대로 누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될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엠 버터플라이’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 같아요. 옛날 작품이고 이야기지만 지금 사람들에게 잘 맞는 주제를 가지고 있달까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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