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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 헤이트 Hate > 최인철 외

입력 2021-10-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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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보편화되고 있다. 자의적으로 혐오의 대상을 정하고 집단 공격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때로는 그 혐오의 대상이 혐오의 주체가 되어 또 다른 혐오를 낳기도 한다. 저자들은 인간이 자기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타 집단에 대한 배타와 혐오를 자양분으로 삼아 안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른바 ‘비뚤어진 공감’이다.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의 예처럼, 불안과 공포가 팽배하던 시대마다 어김없이 차별과 원망의 대상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 근원적인 감정은 내집단이 입은 혹은 입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방어적 공감’이었다는 저자들의 설명에 공감이 간다.


* 생존과 공감의 파편 ‘혐오’ -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생존이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이 잘못 작동되어 생긴 파편이 혐오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감의 부재 혹은 결핍의 결과물로 혐오가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가 선하다고 믿는 그 공감이 과잉되거나 특정한 집단에게만 편향된 결과로 혐오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혐오는 다른 집단에 대한 아주 강력한 미움의 감정인데, 그 이면에는 자기 집단에 대한 강한 집착과 연결의식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집단은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이 혐오받아 마땅하다는 인식 아래 종국에는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에 까지 이른다고 지적한다.

* 지나친 자존감이 만드는 혐오 - 혐오가 생기는 원인을 최 교수는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우리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집단생활 속에서 어떤 역풍으로 생겨나는 경우다. 우리를 위협하는 다른 집단에 대한 미움과 배제와 배척, 나 자신과 내 집단에 대한 애착이 오작동하는 결과일 수 있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공감이 내 집단에만 한정되어 일어나는 경우다. 그 부작용으로 내집단이 아닌 사람들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무관심해지고 혐오를 정당화해 더 큰 혐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 혐오와 공감은 동전의 양 면 - 최 교수는 혐오가 가진 은밀한 속성들에 눈을 떠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생존에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집단이나, 이타적인 행위를 위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감이 동전의 앞 면과 뒷 면 일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만이 이타적 행위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가 원치 않는 혐오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신의 내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자성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혐오 피라미드와 혐오의 역사 -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혐오의 피라미드’를 설명한다. 편견과 혐오를 말로 표출하거나 글로 쓰면 혐오표현이 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고용이나 교육 영역에서 부당한 대우를 하면 차별이 되며, 혐오와 차별이 어떤 집단에 대한 물리적 공격으로 나타나는 것을 증오범죄라 하고, 이것이 더 극단적인 경우 홀로코스트 같은 집단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 혐오가 일상화된 한국사회 - 홍 교수는 예전에는 국가나 지배권력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문제였는데 지금은 일반대중이 혐오에 동참하는 양상인 것이 다르다고 말한다. 2010년 이주자나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거나 반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갑자기 늘었고 특히 2012년 ‘일간베스트’가 등장하면서 소수자 혐오를 놀이화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일부 보수 개신교에서 동성애자 이주자 난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어느 덧 우리 사회에도 혐오가 일상화된 게 아니냐”며 우려를 표한다.

* 혐오가 싹 트는 배경 - 홍 교수는 우리 사회에 혐오가 만연한 첫 번째 이유로 경제사회적 요인을 든다.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재난 전쟁 감염병 등 공동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누군가에 책임을 지우려 혐오가 확산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미디어 환경이다. 가짜뉴스나 음모론이 빠른 속도로 퍼진다. 정치 지형도 원인이다. 정치가 취약하면 포퓰리즘이 득세해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으로는 집단주의 문화나 민족중심주의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 혐오가 확산되기 쉽다고 말한다. 그는 혐오가 윤리적으로도 문제지만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말한다. 혐오의 핑계거리와 희생양을 찾기 보다는 해결해야 할 원인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 원초적 혐오와 투사적 혐오 -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혐오의 전염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한다. 그는 ‘감정 전염’은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어 집단성을 띄는데다 부정적 감정의 전염력이 긍정적 감정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법철학자 나마 누스바움의 ‘원초적 혐오와 투사적 혐오’를 소개한다. 직관적인 반응에 기초하는 원초적 혐오를 근절하기는 힘들지만, 이를 특정 집단에 투사하는 투사적 혐오는 언제든 소수자 집단을 향함으로써 공정한 사회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계한다.

* 혐오의 온상이 된 인터넷 - 김 교수는 인터넷이 혐오의 온상이 된 이유를 ‘침묵의 나선모델’로 소개한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 지배적 사회 여론과 일치한다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게 되는데, 그 결과 소수의견은 점차 묵살되는 ‘침묵의 나선’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쇄하강’ 효과도 언급한다. 앞선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하는 것을 말한다. 온라인상에서 거짓 소문을 쉽게 받아들이고 거짓 소문이 사실로 되고 극단적인 잘못된 정보들이 확산되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온라인 혐오에 맞서는 대안 ‘대항표현’ - 온라인상에서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필터 버블 이나 확증 편향이 강화된다. 그래서 혐오표현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소수의견에 불과했던 혐오 메시지가 지배적 의견처럼 영향을 미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김 교수는 혐오에 대항하는 표현으로 ‘대항표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객관적 사실을 주장하고, 상호 주관적 규범 및 가치의 정당성을 말하고, 말하는 이의 주관성에 대한 진정성을 알리고, 차별적 혐오표현의 부당함을 드러내고 되돌려주는 대항표현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개개인보다는 영향력이 큰 기관이나 인물이 대항표현의 발화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온라인 댓글을 통한 ‘혐오 번식’ -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온라인상의 과격한 표현이나 욕설, 인신공격, 증오발언 등은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상대방이 인격체라는 것을 잊고 비 인간화하기 때문에 반 규범적 행동들도 거침이 없다고 말한다. 아울러 혐오에 대한 둔감화를 지적한다. 어느 순간 혐오를 당연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뉴스 댓글이나 소셜 미디어의 다양한 포스팅 혹은 댓글들이 우리 현실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특히 인지욕구가 높든 낮든 모두 댓글을 통해 여론을 판단한다고 전한다. 인지욕구가 높은 사람은 나아가 본인 의견을 댓글 방향으로 수정하는 경향이 크다고 말한다.

* 혐오발언과 사회적 신뢰 붕괴 - 이 교수는 자기 의견이 소수라고 생각해 입을 다물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의견은 실제 소수의견으로 전락한다고 강조한다. ‘침묵의 나선모델’이다. 그래서 이제는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공개적인 연대와 지지 표현이 중요해 졌다고 강조한다. 혐오와 증오발언에 동의하지 않으며, 적극 반대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해야 혐오발언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잖은’ 댓글을 사람들이 읽게 되면 사회적 신뢰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혐오발언의 피해자는 그 직접 대상에만 국한되지 않는 만큼, 자기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사회적 피해 회피노력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 ‘숨겨진 홀로코스트’ 집시와 장애인들 - 최호근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가 모르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얘기한다. 나치 시기에 죽은 집시가 22만 명이며 이 가운데 독일 내 희생자만도 4만 명에 이른다고 전한다. 유대인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이어졌지만 집시들은 배제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목숨을 잃은 7만 명이 더 있다. 장애인들이다.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면서 이들이 전국 병상의 80%를 차지한 바람에 부상병을 위한 병상이 없다며 정리한 것이다. 유대인과 집시 장애인을 포함해 나치 시기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110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는 미개하고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희생된 북슬라브인과 남슬라브인 500만 명이 포함된다.

* 유대인에 대한 공포가 대학살의 원인 -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이 땀을 흘리지 않는 종자, 고리대금이나 투기를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모든 강제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독일어 글귀가 크게 걸려 있었다. 최 교수는 한편으로 유대인에 대한 깊은 공포와 두려움이 홀로코스트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을 봐도 그런 부분이 느껴진다고 전한다. 그런데 마침 1차 대전 패배 후 1929년 대공황이 와 독일 국민의 3분의 1이 실업자가 되자 누군가에게 책임을 뒤집어 쓰워야 했기에 눈에 가시같던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 홀로코스트는 독일 국민 모두의 책임 - 최 교수는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당시 독일 국민 모두가 져야 한다고 말한다. 1932년 총선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에 44%를 몰아주어 제1당을 만들어 준 것도 국민들이고, 1935년 뉘른베르크 나치당 전당대회에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유대인이면 유대인이라고 구분하는 ‘인종차별법’을 통과시킨 것도 그들이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하지만 지금은 기념물로, 법으로, 배상과 보상으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 자신들의 과오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1957년 홀로코스트 때 아무 대가 없이 유대인들을 구하려 위험을 감수했던 ‘열방의 의인들’을 포상하며 화해와 치유의 길을 걷고 있다.

* 십자군전쟁과 ‘이슬람포비아’ -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의 대표적 예로 십자군 전쟁을 지적한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으로 인한 분노의 전쟁으로 각인된 이 전쟁이 사실은 서로 다른 종교인 그리스 정교를 공격하고 비잔틴 제국 내 유럽 국가들끼리의 약탈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 탈환을 위한 종교적 목적의 전쟁은 1차에 국한되었을 뿐이란 얘기다. 실제로 1차 십자군 전쟁으로 빼앗긴 예루살렘을 아랍 장군 살라딘이 재정복했을 때, 그는 기독교인들과 심지어 영국의 리처드 왕에게도 배려와 관용을 베풀어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이 전쟁이 ‘한 문화권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고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고자 저질렀던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단언한다.

* 유럽이 이슬람에 갖고 있는 ‘공포’의 뿌리 - 전 세계 이슬람 인구는 19억 명 정도다. 이슬람 국가로 유엔에 가입된 나라는 57개국으로 회원국 전체의 4분의 1에 이른다. 그런 이슬람 문화권을 서구 나라들이 적대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1200년에 걸친 지배-피지배의 트라우마와 역사적 기억 탓이다. 650년경 북아프리카에 상륙해 파죽지세로 이슬람화 시킨 아랍인들은 711년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했고 이후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남부를 포함해 오스만 터키와 그리스 불가리아 보스니아 등이 수백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중세 서슬퍼런 기독교 유럽세계가 전쟁과 위협의 공포에 떨었던 것이다. 참고로 한번 이슬람화된 지역은 1000년이 지나도 그대로 이슬람으로 남아 있다.

*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 ‘영국과 UN’ - 유대인들은 19세기 말에 대공황과 러시아 알렉산더 2세 암살사건, 유대계 드레퓌스 대위의 프랑스 기밀유출 사건 등의 원흉으로 몰려 온갖 박해를 받았다. 결국 유대인들은 1897년 8월 스위스 바젤에서 세계최초의 시온주의 대회를 열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나라를 갖자’고 결의하기에 이른다. 이후 1차 세계대전 때 아랍국가 독립을 보장해 주겠다는 영국과 후세인-맥마흔 선언을 맺고 희망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영국은 아랍에게는 아랍국가 독립을, 유대인에게는 유대 민족 국가의 창설을 따로 약속했다. 그리고 1947년 UN은 팔레스타인의 위임통치를 결정했고 이곳의 분할안까지 통과시켰다. 이것이 오늘날 중동 분쟁과 팔레스타인 비극의 근원이자 아랍의 분노 시대를 연 시작이었다.

*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유대인들 - 이스라엘이 1948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내쫒고 나라를 세우면서 비극이 잉태되기 시작했다. 조국을 되찾겠다며 극단적인 무장 테러 조직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스라엘은 지금 높이 8m가 넘는 712km의 분리장벽을 쌓아 팔레스타인들의 이동과 거주 이전을 막는 또 다른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 중이다. 유엔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강제 점령하고 있던 땅을 팔레스타인에게 돌려주라고 만장일치 결의했지만 이스라엘은 거부했다. 1993년 오슬로에서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와 이슬라엘의 라빈 총리가 극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과 이스라엘 국가 인정을 상호 인정하고 불가침조약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이 집권 야욕을 위해 협정을 휴지조각처럼 버렸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분노 세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 남아공화국, 차별과 학대에서 치유와 회복으로 - 한건수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아프리카의 민족 갈등 사례를 통해 인종주의 문제를 조망한다. 그는 전체 인류가 99.8%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며, 인종 차이를 만드는 유전자는 0.18%에 불과하다고 전한다. 그런 면에서 남아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부당한 인종차별이었다. 박해 받던 넬슨 만델라가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인종차별 역사의 고리를 끊자며 1996년에 투투 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고백-용서-배상 원칙 아래 자신의 과거 진실을 고백한 이들을 처벌 않고 용서했다. 대신 가해자에게 최대한 자신의 힘으로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했다.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회복적 정의’에 둔 것이다. 부인 위니 만델라도 자신이 저항 과정에서 저질렀던 일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 비극적 내란과 학살을 통합의 계기로 만든 르완다 - 동아프리카의 르완다는 투치와 후투 두 민족이 어울려 살던 나라였다. 하지만 식민제국시대에 프랑스는 후투족을, 우간다 등 인접 나라들은 투치족을 지원하면서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대학살 피해자인 투치족 무장세력 ‘르완다 애국전선’은 그러나 보복 대신 화해를 택했다. 주요 범죄인들은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겼지만 국내 관련자들은 전통관습법정에 회부해 고백과 최대한의 배상 원칙으로 ‘공동체 회복’을 꾀했다. 한 마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사는 노력을 경주했다. 이들은 학살이 자행됐던 4월~7월을 추모기간을 정해 역사적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다짐한다. 현재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정보통신 기술을 가장 강력하게 도입한 나라이며, 정부와 공무원 부패를 가장 열심히 해결한 나라가 되었다. 여성의원 비중도 60% 이상이다.

* 비극의 역사에서 배우는 기억과 성찰의 중요성 -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는 유일신의 그리스도교를 다신교 문화였던 로마가 박해한 것, 종교 전쟁이 아닌 정치적 전쟁이었던 십자군 전쟁 등을 예로 들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혐오’가 얼마나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설명한다. 그는 억울한 희생양을 보호하거나 돕지 않는다면 그 혐오가 자신에게 되돌아 올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5차 십자군 전쟁 때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겁도 없이 단신으로 당시 이슬람 지도자였던 술탄을 만난 그는 그리스도교가 잔혹한 종교가 아니라 사랑과 평화의 종교임을 이해시켰고, 이에 술탄은 ‘이 사람은 평화를 추구하려 왔으니 누구도 해치지 말라’는 교지를 내린다. 순교당하지 않고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처음으로 이슬람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평화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였다. 문화 공감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 독일 반유대주의의 지성사 - 전진성 부산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인종주의는 근대 유럽 식민주의 산물”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야심가 빌헬름 2세가 독일 제국을 세계 으뜸의 열강으로 만들겠다며 식민지 쟁탈전에 나선 이후 서아프리카 나라들의 봉기를 대학살로 정리한 것에서 나치 대학살의 전조가 보였다고 말한다. 또 당초 유대인에 개방적이었던 독일이 유대인들을 별안간 다른 인종으로, 사회를 좀먹는 쥐 같은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은 ‘반공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1차 대전의 전쟁 배상금에 세계적 공황이 맞물려 어려움을 겪던 독일 기득권 층에게 러시아에서 시작된 공산주의는 끔찍한 미래였기에 차라리 나치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란 얘기다. 결국 독일의 반 유대주의는 인공주의와 반공주의의 교묘한 결합이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인간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동등하다”는 말로 강연을 맺는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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