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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가 먼저다

입력 2021-05-27 14:19 | 신문게재 2021-05-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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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문자 메시지에 속아 돈을 보냈는데 어떤 경우는 바로 피해구제 절차가 진행되어 돈을 받은 계좌가 지급정지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상 그렇다.


지난해 말 직장인 A씨는 문자를 통해 자신을 유명 자산관리사로 소개한 남성에게 3억 원을 투자목적으로 건넸으나 사기였음을 알고 경찰에 신고하자 은행에 ‘계좌지급정지’를 신청하라고 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정지가 안 된다는 답변이었다.

현행법에서는 계좌지급정지 대상인 통신사기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전기통신을 이용하여 타인을 기망·공갈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게 하는 행위. 다만,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하되, 대출의 제공·알선·중개를 가장한 행위는 포함한다.”

문자나 전화 등 전기통신을 통해 남을 속여 돈을 가로채는 행위 중에 그 수법이 기관을 사칭하거나 자녀납치 협박 또는 대출을 가장하는 것 외에 물건판매를 가장하거나 투자사기의 경우는 통신사기에서 제외된다.

통신사기에 해당하면 사기계좌의 지급정지 뿐 아니라 재판 없이도 피해금을 신속하게 돌려받을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 현행법이다. 일반 사기의 피해회복을 위한 법적 절차에 비해서는 ‘KTX급 초고속’이다.

그러나 사기꾼이 자신을 검찰인 것처럼 속여 돈을 편취하는 것과 물건 판매나 투자를 가장하여 편취하는 것 모두 피해자 입장에서는 똑같이 억울한 것인데, 사기꾼이 어떤 수법을 쓰느냐에 따라 피해자는 KTX를 타기도 하고 완행열차를 타기도 하는 것이 현행법이다.

물론 입법자 입장에서는 진정한 물품판매자나 용역제공자가 그 대금을 바로 지급받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점을 고려했다고는 하나 이는 방법이 틀렸다고 본다. 전기통신망을 통한 사기의 경우는 모두 같은 방법의 피해구제절차를 진행하되 선의의 피해자를 막는 장치를 두어 부작용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피해구제뿐 아니라 정책수립의 근간이 되는 통계의 ‘부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현행법이 이러한 거래사칭형 보이스피싱을 통신사기 개념에서 제외하다 보니 금융당국의 통계에 잡히지 않고, 결국 이런 유형의 보이스피싱에 대한 실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최근 서민금융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7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거래사칭형의 경우 타 유형에 비해 피해발생 가능성이 5배 이상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사기방지법(Fraud Act)은 ‘허위 표현에 의한 사기’로 규정하여 피싱사기뿐 아니라 전자상거래사기까지도 적용하고 있고, 미국은 인터넷사기에 대해 연방정부 산하에 피해금원 회수 센터(RAT)를 두고 계좌동결 등 범죄피해액 환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처럼 ‘차 떼고 포 떼고’가 없다.

조그만 틈도 비집고 날아다니는 범죄수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상 파악과 더불어 촘촘한 제도를 통해 ‘누수’를 막아야 할 것이다. 거대한 댐도 작은 구멍에서 터지는 법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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