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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리뷰+무대] 어쩌면 우리 모두는 기울어진 배 위에 서 있다! 연극 ‘만선’

입력 2021-09-1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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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un쁘띠_MusicalSHAO

 

배우도, 서사도, 동작도 없는 텅 빈 무대만으로도 불확실성, 불안, 위태로움의 시대, ‘돈’ ‘계급’ ‘권력’ 등에 따라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 등을 연상케 한다. 연극 ‘만선’의 무대 이야기다.

있는 자들의 횡포와 부조리, 자신의 잇속만을 좇는 행보, 저마다를 물고 뜯는 정치판 등이 매일 뉴스의 메인을 장식하는 2021년 대한민국 역시 그렇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1964년 쓰여진 희곡이다. 지난해 11월 7일 세상을 떠난 故천승세 작가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 ‘만선’은 3대째 어부 집안의 가장 곰치(김명수)와 이미 생떼같은 아들 셋을 잃은 그의 아내 구포댁(정경순), 이제 하나 남은, 장성한 곰치와 구포댁의 아들 도삼(이상홍), 딸 슬슬(김예림), 슬슬과 마음을 나누는 연철(송석근) 등이 풀어가는 이야기다. 

 

연극 만선
연극 ‘만선’(사진제공=국립극단)

 

선주 임제순(정상철)의 횡포에 중선배 만선에도 줄지 않는 빚, 바다 상황에 따라 생사를 오가는 어부의 삶, 그 상황을 이용해 딸 뻘의 슬슬을 노리는 또 다른 선주 범쇠(김재건)의 검은 속내 등은 몇 가지 설정을 보는 이의 상황에 맞춰 대입시키면 누구나의 이야기가 된다.

때 아니게 앞바다를 그득 메운 부서(보구치)떼, 이를 건져 올려 만선을 하면 남은 빚을 청산하고 내 배도 장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선주 임제순 영감이 배를 묶어버리는 통에 좌절을 맞는다.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계약서에 지장을 찍고서야 나설 수 있었던 바다가 그리 녹록할 리 없다. 남은 자식들마저 잃은 상황에서도 “곰치는 죽지 않어” “절대 안져!”를 외치며 ‘만선’을 자신하는 곰치와 정신줄을 놓은 구포댁의 마지막은 그야 말로 암흑이다. 

 

만선
연극 ‘만선’(사진제공=국립극단)

 

곰치의 고집과 세대갈등이 핵심 메시지로 보여졌던 ‘만선’은 2021년 국립극단에 의해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 ‘자본’이 잠식한 비인간적인 사회, 보이지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한 계급 등에 맞서 발버둥치지만 끝내 파국으로 치닫고 마는 민초들을 아우르는 사회부조리극으로 변주됐다.

그 누구도 안전과 만선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바다로 나가는 곰치와 도삼·연철 그들이 돌아올, 그나마 안전하다 믿는 ‘집’은 이미 기울어진 배와도 같다. 부서로 만선을 이뤄 돌아왔으나 선주의 배만 불린 채 여전히 빚을 떠안아야 하고 그 빚을 청산하기 위해 또 다시 불공정한 계약을 하고…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내몰린 비극은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연극 만선
연극 ‘만선’(사진제공=국립극단)

 

그렇게 현재 맞닿은 ‘만선’은 선주, 만선, 부서, 폭풍 등을 지금의 가상화폐, 부동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갑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인종차별 등으로 대체시키며 언제 무너질지 모를 삶에 대한 위태로움과 불안, 불확정성을 가진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된다.


극장 입장과 동시에 보이는 기울어진 배처럼 표현된 곰치와 구포댁의 집은 폭풍과 천둥, 빗줄기가 들이치는 마지막을 맞는다. 이미 막장 끝까지 내몰린 상황에서도 그물을 손질하는 곰치와 그에게 그물을 집어던지는 구포댁, 두 사람의 현실은 여전히 지속되며 끝나지 않을 절망으로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현재까지도 달라지지 않고 대물림된 그 불안과 위태로움을 알아도 발버둥칠 수밖에 없는, 어쩌면 먼 미래까지도 계속 될 수많은 이들의 비극적 의지가 쓸쓸하면서도 눈물겹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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