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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8년만의 시집 출간 안도현 “사람 못지않은 식물, 지금부터 새로 쓰는 유년”

11번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로 돌아온 안도현 시인

입력 2020-09-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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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
안도현 시인이 8년만에 11번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를 출간했다.(사진제공=창비)

 

“시를 쓰면서 행복한 것 중 하나는 여러 가지 일을 관찰하는 겁니다. 그 중 특히 식물을 좋아해요. 식물이라는 게 사람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 보다 시간도 더 빨리 알아채는 것 같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혼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2012년 ‘북항’ 이후 8년만에 11번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로 돌아온 안도현 시인은 22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9) 재확산 여파에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8년만의 시집 출간에 대해서는 “10권 넘게 냈는데 첫 시집을 낸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도 있다” 소감을 전하며 “내용보다는 형식에 매료됐다. 특히 짧은 시 형식이 우리에게 주는 장점들이 있는 것 같다. 관심대상인 식물들에 대해 5줄 이내의 짧은 시들을 여러 편 쓰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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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11번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사진제공=창비)

이어 “200편쯤 쓰려고 했는데 100편을 못채웠다”며 “저의 느낌과 체험을 시라는 이름으로 보여주고 소개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시집의 제목은 22글자로 식물에 관한 짧은 시를 엮은 연작 중 한 문장이다. 안 시인은 “한 문장이지만 ‘식물도감’이라는 연작 중 거의 시 한편”이라고 소개했다.

“변산반도에 있는 펜션엘 갔었는데 능소화가 2층 창가까지 올라와 꽃을 피우고 있었어요. 바다를 향해있는 능소화를 보며 제가 마치 작은 악기를 걸어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죠.”

11번째 시집을 내기까지 8년, 그 기간 중에는 그의 말대로 “시를 쓰지 않은 4년”도 포함돼 있다. 

 

그 세월에 대해 “20대 초반부터 시를 쓰면서 불의의 권력에 시로서 맞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세상에 바라던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데 혼자 조바심을 내고 시로 뭔가를 해보려고 했다”며 “4년 넘게 시를 안 써보니 그 시간이 시를 쓸 때보다 행복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저한테는 휴식이었고 저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돼서 좋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를 계기로 시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도 했다.

“시에 대해 욕심도 덜 부리게 되고 시 혹은 시 비슷한 게 나한테 오면 뭐든 쓸 수 있겠다 자신감도 들고 그랬어요. 시가 해야 할 일은 커다란 것보다는 작은 데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80년대의 제 머릿속에는 노동해방, 민주화, 통일 등으로 가득 찼었거든요. 이제는 좀더 작고 느린 것들의 가치를 시로 써보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이에 새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에는 어머니, 고모 등 여성 가족들의 역사를 복원한 시들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의 일생을 정리해둔 평전이나 전기 등을 보면서 내용 보다 그 사람의 일생을 연도별로 정리해둔 걸 보는 게 더 재밌을 때가 몇 번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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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안도현 시인은 11번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출간 기자간담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사진제공=창비)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제 어머니가 살아오신 시간을 기록해본 적이 있어요. 써놓고 보니 그 안에 시적인 게 들어 있더라고요. 시란 표현, 수사를 통해 꾸며내고 지어내고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는데…그게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온 우리 어머니, 고모님 같은 분들 삶 속에 수사 보다 더한 시적 표현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죠. 앞으로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오래 살아온 분들의 삶, 팩트 자체가 바로 시가 아닐까 싶어요. 비시적인 걸 시적으로 만드는 과정이죠.”

그는 40여년간의 타향살이를 정리하고 올 2월,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돌아왔다. 기자간담회에서 안도현 시인은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수록 시 중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 역시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 쓴 ‘연못을 들이다’와 ‘꽃밭의 경계’를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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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이 8년만에 11번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를 출간했다.(사진제공=창비)

“제가 이삿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가 코로나19 확산 시기였어요. 봄여름 내내 집에 있었죠. 마당에 돌담을 쌓고 돌을 주우러 다니고 나무와 꽃을 심고 텃밭을 일구고 하면서 시를 쓰는 게 몸으로 움직이는 것 보다 쉬운 일이구나 했어요.”


자신이 “손이 하얀 서생임을 느꼈다”고 털어놓은 안도현 시인은 귀향하면서 “다양한 일을 계획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경북 예천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에요. 그래서 시를 썼던 경험들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고 싶었죠. 예천의 고등학생 몇을 모아서 문예반 선생 비슷한 걸 하고 있어요. 시에 대한 지식 전달보다는 사물을 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죠. 저한테 시를 배우는 친구들이 시인이 되지 않더라도 세상을 보는 밝은 눈을 가지게 된다면 그게 그 사람의 삶에 보탬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더불어 고향 예천을 알리기 위한 계간지 ‘예찬산천’을 창간하기도 했다. 고향에 대해 안 시인은 “제가 태어났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4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몇년 전만해도 은모래가 반짝이던 백사장이었다”며 “하지만 4대강 사업의 하나로 상류에 영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은모래가 반짝이던 강변은 풀과 나무들이 무성해지는 곳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보통 유년의 공간으로 돌아가면 과거로 회귀하거나 회상하는 관점으로 보기 쉽죠. 하지만 저는 가능한 그러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과거 유년의 공간은 내 속에 있는 거잖아요. 현재 제가 발 딛고 있는 고향이 변해야 하고 어떤 점을 강조해야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싶어요. 널리 알려진 것 보다는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을 찾아가는 재미, 그걸 시로 쓰는 재미가 있거든요. 유년으로 돌아가기보다 지금부터 새로 유년을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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